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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ul 18. 2022

쓸모없는 쓸모 있음의 변증적 추론

영악스러운 공학의 차용에 대하여

  아지(ASME)코드 실무과정을(B 31.x)강의하던 도중, 설계 규준 항목의 컨텍스트(Context)를 설명하며 수업을 진행하던 당시, 학생으로부터 뜬금없이 예리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규정에서 뜻하는 설계의 정의가 애매합니다. 여기에서 설계란 뭡니까..?"
  
  마치 공기의 정의에 관하여 설명을 해달라는 내용과 흡사하게, 설계의 정의에 관하여 묻는 원초적 질의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를 곰곰이 정리한 내가 답하기를,


  "그건 규정이 아니라, 마땅히 밟아야 할 범례나 규칙에 근거한 규준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설계의 정의는 '선량한 책략'을 의미합니다. 이를테면, 조폭은 악랄한 계획을 수립하지만, 적어도 엔지니어는 법에 근거한 공중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선량한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설계란 엔지니어만 하는 게 아닙니다. 식당 아줌마나 미용사, 농부나 어부도 하고, 하물며 사기꾼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법에서 규정한 별도의 설계 규칙과 규준이 없지요. 아직도 이해가 안 되시나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표준이란 바람직한 기준에 해당하는 비강제 규칙이지만, 규준은 강제 규칙이기에 이를 어기면 민형사상 책임이 따른다는 얘깁니다. 여기에서 선량함이란, 어질고 착하다는 사전적 뜻만이 아니라, 알고 하였느냐 모르고 하였느냐를 정확히 조준하기에 알고있는 규준을 어기거나 또는 모르고 설계를 진행하였다면 악랄함을 의미합니다. 즉, 모르고 진행한 설계의 결과로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민사 소추를 당하거나 형법에 의거 수갑을 찰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건 엄포가 아니라 실제 그런 사례가 부지기수고 판례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설계 출력물과 그 성과물이 규준에 위배될 수는 없다? 그렇게 정의하면 되나요? 생각보다 공포스럽군요."


  "덧붙여 강조하자면, 규준이란 이미 검증된 사실이기에 더 이상 공부하거나 연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제규정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또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어팬딕스(Appendix)에 수록 각종 재료의 품질 계수(Quality factor) 산출 근거가 궁금합니다!"


  "답변을 드리지요,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려면 휘발성이 강한 휴식시간이 허공에 날아갑니다. 10분간 휴식 이후 다음 시간에 답변토록 하지요."


  신약 시대의 갈리아 지방(로마 제국 당시 프랑스 지역)에서 유행하던, 아래의 라틴어 경구는 2,000년 이상을 경유하는 시공간을 공명하여 현재인 지금까지도 묘한 여운을 멈추지 않는다.

죽은 사자는 토끼마저 깔보고, 쓸모없는 그릇은 깨질 일이 없다.
Mortuo leoni et lepores insultant, Malum vas non frangitur.


  예수 그리스도와 동시대를 살았고, 제 자신을 호위하던 근위대로부터 목에 칼을 맞아 어이없이 암살당한 구제불능의 폭군이던 로마 황제 '칼리굴라'나 로마 시내에 불을 질러 그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사치를 위해 죄 없는 황족과 장군, 또는 측근 등을 죽인 '네로'와 그에게 죽임을 당한 그의 스승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세네카' 등을 통렬히 빗대어 조롱한 경구로 추정한다.
  이 격언은 살아생전 제 아무리 공포스러운 명성을 지녔다 한들, 설계수명이 다하면 기껏해야 허명에 불과하고, 잘난체 하지 아니하는 무용한 어떤 것들이 그 잘난 유용함을 지배하고 있노라는 패러독스를 담담히 은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기사, 쓸모없는 그릇이 깨졌다 한들 누가 어떤 의미를 부여 하겠는가?
  이 라틴어 격언이 갈리아 지방으로부터 엄청나게 머나먼 동쪽으로부터 날아온 철새가 전해 왔는지 어쩐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신약 시대보다 이미 수백 년 앞서 동방의 문헌에도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장자(莊子)의 인간세(人間世) 편에 수록된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쓸모없음이 곧 쓸모있음 이라는 '무용지용' 지론이다.

삐딱하고 뭉툭한 못생긴 나무는 목수가 욕심내지 않는다.

  공학은 과학을 바탕으로 하지만, 공학에서 수립한 대부분의 설계 인자인 계수는(Coefficient) 무용지용론을 함부로 묵살하기 힘들다. 족보로 따지자면 적자(嫡子)는 공학이 아니라 기술이기 때문이다. 공학은 책임의 범위를 교묘하게 회피할 수 있어도 기술은 절대로 책임의 회피가 불가능하다. 왜 그럴까?

  열유체공학 전공자들은  거의 다 인지하고 있는 설계인자 중 하나인 '총괄전열계수'라는 것이 있다. 이는 열에너지를 전달함에 있어 복사, 전도, 대류의 모든 열유동과정 총괄 사건을 합한 계수로 계산 결과 값의 상수이다. 그러나 현장의 기술자에게 이 계수는 쓰지 않음이  쓰는 것보다 상위에 있는 제대로 낙인이 찍힌 무용지용의 대표적 설계 인자이다. 이것은 공학적 차원의 이론적 배경이 실제 경험치나 실험 결과치와 워낙 들숙날숙하여, 현품으로 계량된 값만 못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경과가 그렇다 한들, 무용지용의 대표 격인 '총괄전열계수' 값을 가정하여 참조하지 않으면 열유동 에너지의 설계나 해석은 근접한 해답의 추적이 요원 해진다는 점이다. 언뜻보기에 쓸모가 막연하던 것이 사실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으니 닭과 달걀의 우선권 주장 같기만 한 공학과 기술의 콜라보인 샘이다.


 "이전 시간의 질의에 관한 답변을 드립니다. 재료의 품질 계수란 지금쯤은 이미 흙이 되어있을 여러분과 저를 포함한 우리선배 엔지니어들께서, 수많은 착오법으로 고독하게 얻어낸 실제 경험치와 실험치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검증된 값을 꾸준히 기록하여 다듬고 수치화한 데이터 입니다. 따라서 코드에 등장하는 모든 인자(Factor)와 계수(Coefficient)는 연구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공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선량한 책략'을 뜻하는 설계(Design)이다. 공학 설계란 결국 제조의 구체화를 전제하지만, 계획의 무결성 여부를 판단하거나 타당성의 검증과정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생산기술이나 제조기술은 공학(Engineering)이 아닌 기술(Technology)로 구분을 하지만, 아무튼 경계는 모호하기만 하다.

  메스컴에 종종 등장하는 '정치공학'이라는 생뚱맞은 용어의 뜻은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적 지식들을 정교하게 동원하여 타인(혹은 대중)의 심리를 교란 내지는 유도하고 전적으로 자신의 통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적 설계를 의미한다. 행위적 설계라...? 바로 이 대목에서 이른바 설계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설계를 포괄하고 있는 공학이 억울하게 납치 된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한다. 정치라는 분야에 공학적 개념을 적용하여 다루어지던 시기는 공작(설계)정치가 판을치던 20세기 초엽 사회주의 체제에서 나왔다는 탄생설이 유력하지만 이를 뒷바침 할만한 문헌과 증거가 불충분하다.

  영악스럽게 공학의 개념도 모르는 처지에서 함부로 공학을 정치에 삽입시켜 제멋대로 차용하여 남발하고 는 판국이니, 과연 공학은 산을 지키는 못생긴 나무라서 무용지용의 진수인가? 내키면 아무나 치고 박는 동네북인가? 만만한 홍어x 인가?


  악랄한 질문일지는 모르되, 그대는 과학자인가? 공학자인가? 기술자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똘똘말이 과학기술자인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할리 만무하지만) 평생 그대의 자존심을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그까짓 자존심을 버린다면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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