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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ul 08. 2023

철학이 피고로 법정에 섰다

법은 신의 대체재인가?

  철학이 드디어 법정에 섰다. 그동안 빈집털이 수법으로 근근이 버티 도피생활을 해 오던 철학을 소도시 변두리 어딘가에서 체포하여 다음과 같은 기소의견을 제시하며 법정에 세웠다.

  철학은 교조적 은폐의 잔혹행위 및 방임하듯 자행 억압의 질서를 임의로 행사하여온 바, 인간적 사유의 선택에 관한 권한을 제 멋대로 편집하고 행사하여 왔으며, 수천 년의 특권과 기만을 일삼아 왔음은 물론이고, 다음의 항목과 같은 잔악한 소행을 일삼아 왔기에, 이제 학문으로서의 수명을 삭탈함이 타당하다.

이하, 기소이유.


1. 신화적 오류와 신탁의 거짓말을 지적한 소크라거시기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인간을 신격화하는 멍청한 수단을 동원한 아우구거시기까지 그들만의 리그를 정당화하여 정치와 종교의 시녀로 군림해오며, 무려 수억 명의 무고한 인명을 잔인하게 살상해 온 역사적 증거가 있고,


2. 타당치도 아니증거를 제시하며, 그동안 인간들을 장난감 다루듯 지배해 오던 신은 비로소 죽었다고 언급자연인 니체를 미친놈 헛소리라는 비아냥으로 거들먹 거렸을 뿐만 아니라, 칸트라는 작자의 인식론은 생판 거짓말투성이의 사고실험으로 기 증명이 된 바, 존재함의 가벼움을 제시한 흄과 실존의 지저분함을 제시한 후설까지 오도했던 추한 사실 역시 죄 없다 아니할 수 없는 바,


3.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학을 빙자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현상학적 말놀이니 어쩌고 편을 갈라 싸움박질을 해오다가, 근래에는 모든 학문의 근본임을 주장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제 스스로 인수분해를 시도하여 교육철학, 수리철학, 과학철학, 심리철학, 언어철학, 사회철학, 정치철학, 종교철학, 예술철학... 등등의 말도 안되는 괴이한 용어를 엿장수 가위 두들기듯 함부로 남발하여, 무릇 지식인 다수를 기만해온 악랄한 사기 행각을 설계하여 왔음이 자명하다.


4. 수천년 동안 철학에서 문제를 삼았던 현상들은 과학의 힘으로 대부분이 해결되었고, 이제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가장 보편적이며 추상적인 주제들 뿐이기에, 그나마 올바른 사상을 추구해 오던 철학은 제 꼬리를 잘라먹는 처지로 전락하여 학문적인 폭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므로, 이 모든 사실을 인용하여 사형을 언도하는 바이다.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선 프리네, 배심원들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저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로 받아들여야만 할 정도로 완벽하다. 따라서 사람이 만들어낸 법은 무효하다!"

여기에 대응하고 있는 법정대리인(변호인)의 항변은 다음과 같다.


1. 검사의 기소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고, 법리적 오류가 의견의 전부이기에 본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한다. 첫째, 철학의 학문적 지위에 관한 한 형법상 구체적 범죄의 소명 사실이 애매하여 확실치 아니하고,


2. 둘째, 철학이 선량한 인간들을 학살하였다는 주장 역시 사실에 근거한 증거가 불충분하며, 혹세무민을 근거로 사기를 쳤다는 직, 간접 증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3. 마지막으로, 철학의 부조리나 결함이 유죄라면 법의 무결성은 법리를 포괄하여 논리적으로 무결성의 증명이 가능한가? 그런즉, 철학을 유죄로 판단하는 법이란 과연 무죄인가?


4. 덧붙여, 본 변호인은 원고측의 무식함을 꾸짓는 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같이 무모순의 체계 안에서 완전한 무모순의 입증은 모순된 명제가 있어야만 가능하므로 증명이 불가하다는 역설은 논리상 결함이 없다. 피의자의 혐의를 증거로 구체화하지 않고, 엉터리 증거를 생산하여 기소를 일삼는 제도기관의 행태는, 형법의 근본 원칙인 형벌요건과 대항요건을 죄다 부정하는 짓이다!


  모든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던 철학자 데카르트는 심지어 자신 스스로의 사상마저 의심했다. 불후의 명저인 방법서설의 맺음말에는 과연 갈대스러운 고뇌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에, 어떠한 나의 추론도 확신하지 않는다.”


  유전무죄나 무전유죄는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유서가 깊다. 부당함이나 분노의 차원을 배제하고라도 법리란 법치의 시녀라는 논란은, 부분의 집합이 과연 전체의 집합인가?라는 아직도 풀리지 아니한 수학적 명제와 동일하다.

  논리적 오류는 모순이 아니라 이치에 반하는 부조리다. 철학의 불용성을 비꼬는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첫 문장은 충격적이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Il n'y a qu'un problème philosophique vraiment sérieux: c'est le suicide.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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