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바치는 싸구려 사탕 한 줌
1.
중지 손톱 끝이 부러졌다.
요즘 정신이 없던 탓에 강화제 바르는 것을 까먹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티가 날 줄은 몰랐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잠은 지나치게 많이 자도 눈 밑이 꺼진다는 것을 알게 된 몇달이었다. 따뜻한 끼니에 연연하지 않은 이래로, 나는 길을 걷다가 주저앉기 일쑤였다. 울렁거리는 땅바닥에는 면역이 생기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연석에 걸터앉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곤 했다. 그 상태로 닫힌 눈꺼풀 안쪽에 그려지는 어떠한 상像을 곱씹다보면, 지나가던 어느 상냥한 누군가가 내게 괜찮냐고 물어오거나, 주차 공간을 발견해서 매섭게 달려오는 차가 클랙슨을 울린다. 그럼 나는 어기적어기적 다시 길 중간에 들어선다. 그리고 계속 걷지. 계속.
볼품없는 손톱에 온 신경이 쏠린 나머지, 잔 손잡이를 쥐고 있던 내 왼손에 뜨거운 찻물을 부어버렸다. 화들짝 놀라며 짜증을 낼 법도 한데 나는 찬 물을 틀고 그 아래 손을 가져다 댔다. 안에 들어찬 것들만 멀쩡하다면 유약한 껍데기쯤은 문제없지 않을까. 나는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른 손등을 보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은 올가을 들어서 가장 쌀쌀할 예정입니다. 환절기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흐르는 물의 수압이 너무 셌다. 중지에 낀 반지가 덜그럭거리기에 얼른 주먹을 쥐어 반지를 사수했다. 모르는 새에 반지가 커져 내 손가락은 더 이상 반지와 밀착해있지 않았다. 부푼 손등과 억센 물살, 그리고 위태로운 반지. 나는 물을 껐다. 무섭도록 고요한 적막 속에서 기상캐스터만이 행복했다. 일교차가 심하니 얇은 외투를 여러 겹 챙기는 것이 좋겠다는 친절한 조언이 이어진다.
나는 중지에서 조심스럽게 반지를 빼내 약지에 옮겨 끼웠다. 이 반지가 여기 맞았더라면 내 세상은 조금 더 늦게 무너졌을까. 반지를 낀 손을 거꾸로 들어 그 아래에 다른 손을 받치고 있으니 반지가 굴러 떨어져 안착했다. 약지는 욕심이다. 어쩌면 중지도 그렇겠지. 나는 엄지로 반지를 옮겨 끼운다.
2.
그 애는 끝내주는 날씨 아래서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더니 내게 반지를 내밀었다. 내 손가락 굵기를 몰라서 평균치로 가져왔다는 그 반지는 예쁜 상자도 없이 낱알뿐이었다. 야, 손가락 10개면 당연히 한 군데는 맞겠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중얼거리며 그 애의 손에서 반지를 낚아챘다 이제와 말하지만 나는 그때 사실, 반지가 나에게 너무 크거나 작아서 그 애가좌절할까봐 심장이 목젖에서 뛰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큐빅 하나 없이도 눈이 시리게 반짝거리는 그 은반지는 내 중지에 딱 맞았다. 나는 멋쩍은 표정을 숨기기 위해 그 애를 등지고 서서 하늘에 손을 쳐들었다.
“봐줄 만은 하네.”
예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고질병, 그런 내 곁에 머무는 것은 그 애의 업보였다. 나는 끔찍이도 낯간지러운 ‘고마워’ 대신 그 애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 애가 엉거주춤하게 상체를 숙여 주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 애인데, 등이 야위어서 그런지 이럴 때면 내가 그 애를 품 안에 우겨넣는 것 같은 우스운 꼴이 펼쳐진다.
“오늘은 수박 맛이지?”
“맨날 얘기하지만, 니가 윗집 개새끼보다 개코일 거다.”
어깨 쪽에서 들려오는 질문에 틱틱거린 나는 그 애를 떼어내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다. 몰래 빼오는 불량품이라 포장 봉지도 없는데, 그 애는 늘 그 한 알을 소중하게 챙긴다. 먹지도 않을 거면 나 돌려주던가. 그럼 그 애는 들은 체 만 체 하고 가버린다. 내 말이면 불바다에 뛰어들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질 녀석이, 사탕에 있어서는 네 살배기 고집불통이 따로 없다. 나는 먼저 가는 그 애의 뒷모습, 그 중에서도 사탕 때문에 아래가 불룩 튀어나온 바지 뒷주머니를 쳐다본다. 저렇게 모아온 사탕만 한 무더기 되려나. 나는 그것에 공사판 먼지가 뽀얗게 끼얹어지는 것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애는 한 무더기의 사탕과 꼭 같은 양의 재가 되었다. 나에게 온 상자 두개는 크기가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탕들을 그 애와 함께 태울 걸 싶었다. 그러면 키 하나는 확실히 컸던 그 애가 조금이라도 저다운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물끄러미 내려다 본 상자는 하찮을 만큼 작아서, 이번에도 역시 내 품이 그 애를 삼키는 모습이 이어진다.
수박 맛 사탕은 사실 아주 역겹다. 본연의 수박에서 날 수 없는 단내가 진동을 한다. 공정 과정에서 수박이 가진 싱그러운 풋내는 모조리 죽고 수 천 개의 튜브가 이름 모를 약품을 짜넣는다. 그 후 컨베이어벨트 위에서도 변모는 계속된다. 허공에 설치된 펌프는 빨간색 색소를 끼얹고, 그 위에 검은 방울들을 지저분하게 튀긴 후, 겉을 초록색으로 덮는다. 수박 맛 사탕만큼 못생긴 게 또 없다. 차라리 공사판 먼지가 그것을 덮는 것이 나았다. 조악한 색깔이 그 아래에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도록.
그 애가 묻혀오는 먼지는 사실 아주 깨끗했을 것이다. 아마 사라진 수박 풋내가 그곳에서 났을 수도 있겠지.
3.
중간이 좋았다. 그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만 잊힐 수 있다. 인간은 단순해서 천국과 지옥만 알지, 지천을 떠도는 귀신에게는 영 관심이 없다. 끝내주게 잘 산 나머지 천년만년 존경 받나 추악하게 막 살아재껴서 두고두고 욕을 먹나, 자꾸만 회자된다는 것은 똑같다. 양극단은 이렇게 성가시다. 내가 죽은 날, 딱 그날 하루만 근사한 잔칫상을 받고, 남은 364일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존재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4월에 들어서면 교실에는 동복과 하복이 뒤섞인 요상한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뒷문 바로 뒤에 앉은 시끄러운 녀석은 두꺼운 마이를 입고도 제 짝의 담요까지 뺏어 둘렀고, 교실 한 중간에 앉아 교과서를 뒤적거리던 녀석은 반팔 셔츠 차림이었다. 낮에는 볕이 제법 뜨거워 창문을 열어놓다가도 해가 진 자습시간에는 외풍 때문에 커튼 까지 쳐야했다. 나는 그 애매함을 사랑했다. 긴팔 셔츠 아래에는 하복 치마를 입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 말이다.
아니, 잠깐. 그 애를 만난 게 그 즈음이어서 중간을 사랑했나?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요한의 집>에서 고작 몇 골목 떨어진 작은 국밥집에서였다. 어른들이 모르는 게 있다면, 국밥집 할매들이 담배를 팔기도 한다는 거다. 시장 곳곳의 허름한 국밥집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똑 떨어져 나온 국밥집도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어린 애들에게 담배를 내어주는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싶다. 하지만 담배를 사려는 건 나였고, 그 애는 야간반으로 현장에 나가기 전에 국밥 한 그릇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커먼 아저씨들 사이에서 말간 얼굴로 국밥을 후루룩 먹는 모습은 중간과 거리가멀었다. 날 좀 봐달라고 발악을 하는 수준의 존재라서, 나는 국밥집 문간에 서서 그 애를 흘끗거렸다. 그때, 할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늦었네!”
주방에 있던 할매가 나를 그제서야 본 것 같았다. 할매의 목청은 큰 편이라서 자연스럽게 그 애도 시선을 이쪽으로 옮겼다. 손의 물기를 옷에 슥슥 문질러 닦으며 나온 할매가 옷 속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더니 내 품에 급하게 밀어 넣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 꺼냈고, 할매는 그걸 받아들고 국밥을 먹고 있는 그 애 쪽으로 다가갔다.
“돈 있으면 5천원만 줘봐 그래. 오늘 거스름돈이 없어.”
거스름돈이라면 저렇게 어린 애보다는 주변 어른들에게 있을 가능성이 더 높은데도, 할매가 굳이 그 애에게 찾아간 것은 등쳐먹기 위해서 일거다. 그 애가 바보천치처럼 어, 어, 하며 5천원을 뜯기는 동안 아저씨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국밥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을 뿐이었다. 저 등신. 나는 그때부터 그 애를 그렇게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할매가 준 그 애의 5천원을 받아 주머니에 넣을 때 그 애는 나를 빤히 바라만보고 있었다. 등신 같은 놈. 등신 같은 놈. 나는 결국 그 눈 때문에 내내 체한 것 같은 답답함에 고생하다가 그 다음 주에 국밥집 앞에서 2시간을 넘게 기다려 그 애를 만났다.
“새끼야, 너 그렇게 살다가….”
나는 그 애에게 5천원을 그대로 돌려주며 더 상스러운 말을 덧붙이려다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걸 만지작거리는 그 애가 온 얼굴 표정으로 고마워하고 있길래. 나는 그날 담배를 끊었다.
그 뒤로 그 애를 자주 만나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그 애를 기다리거나, 그 애가 나를 기다리거나, 뭐 그랬다. 그러니 내가 보호종료아동이 되었을 때 그 애가 제 작은 반지하방으로 나를 거둬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담임은 눈치가 빨라서 내가 필사적으로 중간에 편입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덕에 나는 뒤에서 자잘한 장학 지원금을 받아 그 애와 배곯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시켜 쌀 10키로 한 포대를 사온 그 애는 처음으로 나에게 돈이 좋다고 했다.
그러니 공장 풀타임 근무를 하겠다는 나를 뜯어 말린 게 담임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 애는 연말에 제멋대로 현장 출근 날을 늘리더니 2년제 전문대학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중간을 동경하여 중간인 척하는 것일 뿐인데, 그 애는 내가 정말 중간에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전부 헛짓거리라는 걸 알면 그 애가 절망할까 두려워서, 나는 현실 감각이 부족한 사람처럼 붕 뜬 채로 살기로 했다. 그 애가 백번 양보해 사탕 공장 알바는 허락해준 것에 나는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