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화에서 이어집니다.)
교통카드를 반으로 찢었습니다. 그걸로 자해를 했죠. 그것도 정신병원 안에서요. 왼팔뚝은 젖었습니다. 붉은 소나기가 꽤 강하게 내렸으니까요. 피가 맺히고 따가움이 느껴지자 미소를 지었었습니다. “피가 도는 느낌이야”라고 했었죠. 이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황이 터지면 기억을 잃어버리곤 했으니, 역시 같은 이유였겠지요. 이제 와서 더듬거리며 기억을 되짚어봐도 몇몇 장면밖엔 떠오르지 않습니다. 자해를 한 날이었나, 그다음 날이었나 또다시 자해를 하고 말았다는 게 병원에 알려졌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죠. 수화기를 붙잡고 주저앉아 울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토록 바랬던 걸 소리쳐 외쳤었습니다. 죽고 싶다고, 죽을 거 같다고, 죽여달라고, 그만하고 싶다고, 제발 죽게 해달라고. 그랬었네요.
그러자 병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바삐 움직이셨었습니다. 진정제 주사를 준비하시고, 저를 다시 폐쇄병동으로 보내기 위해 제 짐을 챙기시는 등 말이죠. 얼마 안 가 저는 다시 폐쇄병동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본래 일주일 정도 살았던 곳이라 어색할 건 없었는데, 다른 점은 독방에 들어가게 됐었다는 거였죠. 한 평 남짓, 누런 벽지와 뚫린 천장, 낡은 침대 말고는 그 무엇도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본 독방 그 자체였죠. 저는 그곳에 갇혔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갇혔던 게, 못 나갔었거든요. 독방 문은 잠겨있었고, 안에 갇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공간에 홀로 버려졌다는 느낌은 또 새롭게 두렵더군요. 한 편으로는 이대로 죽어버리면 아무도 못 막지 않나 싶기도 했었고요.
독방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금방 전화를 받은 아버지에게 저는 울며 말했죠. 공황이 터졌다고, 또 자해를 해버렸고 나 지금 독방에 있다고. 죽을 거 같고 죽고 싶다고. 전화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제가 독방에서 전화를 하는 걸 본 간호사분이 휴대폰을 뺏으러 오셨었으니까요. 그렇게 휴대폰을 빼앗기고, 저는 온전히 혼자로 독방에 갇혔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더군요. 비록 시간을 확인할 수단은 그 무엇도 없었지만 말이죠. 그저 작은 창으로 보이는 간호사실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었네요.
그렇게 저는 곧바로 모든 짐을 들고서 병원을 뜨게 됩니다. 이유는 경고를 무시하고 한 번 더 발생한 자해 때문이었죠. 병원 측 입장은 이랬습니다. 자해를 계속하는 환자는 우리도 관리하기 힘들다. 제가 소속됐던 군부대의 입장은 이랬죠. 주말까지만이라도 병원에 있을 순 없겠냐. 그 사이에 껴서 저는 사형수라도 된 기분이더군요.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모두에게 죄송해서, 그저 짐짝이 되어버린 거 같아서였죠. 정말 최대로 참다가 끝내 공황이 터져버렸던 거지만 더 버틸 수 있었을 거라고, 병신같이 더 참지도 못했다면서 스스로를 자책했었습니다. 그런 제가 죄송한 모두에게 사과를 전하는 방법은 저의 죽음이 제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달리는 차 안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릴까 고민했었죠. 그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해답처럼 느껴졌었습니다. 자책하는 나에게 주는 벌이라고도 느꼈고요.
그렇게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러고 당장 시작됐죠, 부대 간부님들과의 면담이요. 이 역시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마 면담 중에 제가 또 공황에 빠졌었을 겁니다. 숨이 안 쉬어져서 가슴을 두드리고 짧은 호흡을 내뱉던 게 짧은 토막으로 기억에 남아있으니까요. 그렇게 증상이 찾아오자 병원에서 가져온 약을 급히 먹고 진정했을 겁니다. 상태가 말이 아니었죠. 그렇게 그날 밤은 끝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사고가 기다리고 있었죠. 저도 제가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실신하고 수술대 위에 눕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습니다. 그래요, 그랬죠.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