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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사소하지만 기억에 남는 일들

편의점 B에서는 소소한 이벤트가 많았다.

by 지화


진열대에 있는 상품을 정리하다 보면 먹고 남은 음식물이라든지, 쓰레기를 선물처럼 두고 가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한 번은 청소 중 쓰레기통을 정리하다가, 다 쓴 생리대가 들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화장실은 야외에 있었는데, 테이블 근처에서 하의를 벗고 생리대를 교체한 건가? 바깥은 통유리였고, 바로 옆은 아파트 후문이라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계속 의문이 맴돌았다.



술에 취한 손님들이 바닥에 술병을 깨뜨리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실수라는 걸 알기 때문에, 어차피 치우는 건 나니까. 계산만 하고 가주면 된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간혹 가다 그 실수가 싸움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너 때문이잖아", "네가 계산해" 하며 다투는가 하면, 어떤 날은 "이걸 왜 내가 계산해? 실수로 놓쳐서 깨졌는데 알바 네가 알아서 해, 난 몰라, 배 째"라는 손님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계산도 안 하고 그 자리에서 개봉해 먹으면서, 안주 찾아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일상처럼 반복되는 곳, 그게 바로 캐셔가 있는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명절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명절에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억이 많다.

그 시기에는 자식을 둔 부모님들이 많이 다녀갔고, 그분들은 쉬지도 못하고 고생한다고 하며 차례주나 명절 음식을 주고 가기도 했다. 덕분에 명절에 굶은 적은 없었다.


한 번은 중년의 아버님 손님이 1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셨다. "학생, 이거 받아." 처음 보는 외국 돈이라 깜짝 놀라며 사양했더니, 손님은 말했다.

"이건 그냥 돈이 아니야. 행운을 가져다주는 돈이야. 학생은 받을 자격이 있어. 아빠가 주는 어른의 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결국 웃으며 감사하다고 받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따뜻했다. 손님은 나가기 전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생은 성실해서 분명 잘될 거야. 나는 믿고 있어.

행운을 빈다."

그날, 처음 본 외국 돈이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그보다 더 뭉클했던 건, 처음 보는 나를 그렇게 응원해 주는 마음이었다.


그 1달러는 지금도 보관 중이고, 돈 때문에 울적할 때마다 꺼내 본다.



빼빼로데이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이면 단골손님들이 간식을 챙겨주기도 했다. 그런 날은 피로가 조금은 풀리고, "그래, 조금만 더 버티자" 마음을 다잡곤 했다.

편의점 B는 원룸촌과 가까워 단골이 많았다. 낮에 추가 근무를 하면 자주 보던 얼굴들이 찾아왔고, 수다를 떠는 젊은 손님들, 정이 많은 아파트 주민들, 건너편 상가에서 일하는 이웃들까지 다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학생 손님들이었다. 야식을 사러 밤에 자주 왔던 분들인데, 어느 날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금 밤이에요? 퇴근을 도대체 언제 하시는 거예요?" "또 이따 밤에 출근하시는 거예요? 잠은 언제 자요?"

옆 친구는 "여기 사장님이랑 가족이세요? 최저시급은 받고 일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으며, 다다다 질문을 쏟아냈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자 이러더라.

"그러다 금방 죽어요. 그러지 말고 차라리 편의점을 하나 오픈하세요. 저희가 단골 해드릴게요."

그 말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웃기던지, 한참 동안 웃었다.

나는 말투나 목소리에 뭔가 특색이 있는 건지, 내가 기억 못 하는 손님들이 나를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먼 훗날, 전주에서 일하던 시절의 손님을 시골 휴게소 근무 중에 만난 적도 있다.

"어떻게 저를 기억하세요?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목소리랑 말투요."

편의점 B에는 오래전 손님들이 종종 찾아왔다.

"언니,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야? 수다 떠는 언니가 없어서 얼마나 심심했는데, 여기서 보니까 너무 반가워." "누나 오랜만이에요. 한동안 안 보였는데 여기 편의점으로 옮긴 거예요? 제 친구들도 누나 안 보여서 서운해하던데, 다음엔 친구들도 데리고 올게요."

지금은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과연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상대방도 나에게 말을 걸어올 정도였고, 그 시절의 나는 서슴없이 말하는 걸 즐겼다.

그저 나눈 짧은 말 한마디가, 계산대 너머의 인연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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