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우회 끝에 선 자리
광주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통장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고, 하루를 버티는 데 드는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열어 이력서를 작성하고, 눈에 띄는 공고에 하나씩 지원했다. 예상보다 외식업 자리가 있었고 나는 그 일이 하고 싶어서 주방 쪽으로 거의 지원했다.
이력서를 확인한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기억나는 건, 면접 자리에서 사장님이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내 손을 오래 바라봤던 일이다.
체격이 왜소하고 손이 작아서였을까.
면접이 끝나고 나서 “다른 곳 알아보세요. 이쪽 일 말고 사무 일 쪽이나 하시는 게 어때요?”라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면접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왜소해서는 생산직도 못하실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며칠 뒤 연락 주겠다고 했지만 소식이 없었던 곳도 있었다.
이런 경험은 그 시기에 거의 일상이었다.
아니, 나만 그랬나?
생활은 점점 빠듯해졌다.
자취방 한쪽에는 유통기한이 1년 이상 지난 라면과 가공식품들이 쌓여 있었다.
수중에 돈이 얼마 남지 않으니, 그거라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오래된 라면을 끓여 먹다 배탈이 난 날도 있었다.
배를 움켜쥔 채 화장실에 앉아 있으니, 이 상황이 우습고 서글펐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20살 시절이랑 변한 게 없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카페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경력 무관, 자격증 무관’ 모든 게 무관이었다.
나는 커피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바로 지원했다.
보잘것없는 이력서가 통과되고 면접 일정 연락을 받아을 때 너무 기뻤다.
면접 당일 분위기는 좋았다. 단지 사장님이 매니저와 포스 담당 아르바이트생이 서로 오래된 사이라며, 두 사람만큼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나를 보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겠냐"라는 뉘앙스를 풍겼을 때
순간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애써 무시했다.
문자로 합격 연락을 받았고 금요일에 첫 출근을 했다.
첫날 기계 사용하는 법과 주문받는 방법을 간단히 알려주고,
음료 제조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눈에 뜨는 게 있다면 사장님이 매니저와 포스 담당 직원을 엄청 챙기는 거고 지나가는 말속에는 한 명이 그만두면서 내가 이력서 통과 후 면접을 보고 들어오게 된 자리라고 말한 것이다.
나는 찜찜한 기분을 뒤로한 채 서투르지만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면서, 마치 20살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이 말한 ‘주말 동안 레시피 전부 외워서 와요’라는 숙제도 있었다.
다음 출근일은 월요일이었다.
금요일과 월요일, 합산 10시간 정도 일했을 뿐인데, 그날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생각했던 이미지랑 다르네요. 하루 만에 능숙하게 할 줄 알았는데, 여기 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요 미안해요.”
그 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초보여도 괜찮다고 했던 말은 어디로 간 걸까.
해고 사유를 듣고도 얼떨떨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일당은 당일 밤 10시 전까지 입금해 주겠다는 말에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나왔다.
그러나 입금은 되지 않았다.
다음날 이유를 묻자, 매니저 우산이 내 것과 바뀌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가방에는 레시피북도 있었다.
우산보다 레시피북이 훨씬 중요한 게 아닐까.
결국 우산과 레시피북을 돌려주러 다시 카페에 갔다.
바쁜 시간이라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매니저 우산, 레시피북, 그리고 내 5천 원짜리 우산까지 두고 나왔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틀, 총 10시간 동안 대체 무엇을 파악한 건지,
우산보다 레시피북이 중요한 게 아닌지, 속으로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애써 무시하고 있던 카운터 공고를 클릭했고, 바로 연락을 드렸다.
면접을 본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이 결정됐다.
어지간히 일할 사람이 급했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이 30분 정도 계산과 매대 정리 요령을 알려주더니,
다음 날 출근 시간을 알려주고 돌아갔다.
면접 본 그날, 매장 분위기와 포스기를 파악할 겸 3시간 정도 근무했다.
3시간 일이 끝나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은 순간, 참 허무했다.
‘또 카운터야? 나는 여기서 못 벗어나는 건가.’
고등학교 시절 첫 알바부터 시작해, 횟수로 거의 12년째 계산대에 서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지하게 ‘이쪽 일을 차라리 창업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때문에 또 잘리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도 돈은 벌 수 있었고, 정신 차리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자격증을 취득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또한 2024년으로 미뤄졌다.
다음 날부터 정식 출근을 시작했고,
상황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은
“차라리 편의점이나 작은 마트 하나 오픈하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렇게 광주에서의 새로운 날들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계산대 너머에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