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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언니의 말맛 Oct 24. 2021

#4.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성격 참 이상해 너

새로운 시장 새로운 틈새를 열다. 

첫 직장부터 여자가 많은 곳에서 시작했다. 마지막 일까지 여자가 많았다. 넌더리가 나다 못해 지쳤다. 다시는 여자가 많은 곳을 다니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직장, 워크숍에서 마술을 접목했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7년 전, 마술을 접목한 교육이 얼마나 생소한 일이었는지 교육담당자로써 '메시지 전달이 잘 돼야 할 텐데......' 하며 조바심을 탔다. 마술계에 몸담고 있던 지인이 있어서, 도움을 받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마술사는 규칙을 설명한다. 


"들고 있는 동전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땡그랑~ 데구르르르~


"어쩌면 좋아, 헉..."


난리부르스였다. 그 상황은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었는지 박장대소와 함께 마술사의 지시에 따라 체험이 진행되었다. 다행히 프로그램은 성공이었다. 이 워크숍이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쉬면서 여기저기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친구를 만났다. 그만뒀다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왔지만 그쪽 세계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지인들과 마술 동호회 모임에서 마술을 하는 모습을 보며 촉이 심장을 어찌나 찔러대던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징조는 나의 진취적인 성격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마술계에 발을 내딛는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맡아 지인의 일을 돕기 시작한다. 교육이었다. 마술을 접목한 교육.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마술의 신기함과 해법보다는 마술의 가치에 집중했다. 마술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예감했고 시장조사와 함께 빈틈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 바닥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술사도 아닌 생뚱맞은 여자 하나가 마술계를 뒤집어 놓을 만큼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서른 중반. 내게 배어있는 서비스 정신과 진취적인 성격으로 마술학원을 오픈했다. 그렇게 시작한 마술학원은 그 지역에 오직 한 개였다. 지금은 사업장에서 주변에 25개가 넘는 마술학원이 등록되어 있다. 


맨땅에 헤딩하듯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학부모 상담을 통해 상처도 받는다.


"마술은 사기 아니에요?"


"마술 하면 먹고살 수 있어요?"


내겐 재밌을 것 같은 세계였는데 남들은 딴따라로 보고 있었다. 하다못해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 마술 해"라고 말하니 의외의 반응을 보고 대중의 시선을 느꼈다. 이 부분이 큰 힌트였다. 대중의 인식 개선이 시급한 문제였다. 지금의 마술사들로는 마술학원을 끌고 갈 수가 없었다. 양성과정을 밟고 커온 사람들도 아니고 1년 중 긴 비수기와 짧은 성수기로 돈벌이마저 불규칙했다. 이때만큼은 마술 공연료가 높았다. 잘 버는 사람들은 엄청 잘 벌었지만 짧은 시간에 번 돈은 탕진으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마술은 마술사만 할 수 있다. 마술을 무기로 마술사에게 회사가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마술사가 나가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했다. 음식점 사장님 대신 주방장이 힘이 강한 것도 이해가 갔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마술사를 키우자."


인성지도를 시작으로 마술사 양성에 필요한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상황에 맞게 그 눈높이에 맞춰 직업에 대한 전문성에 내 미래와 전부를 걸었을 만큼 성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내가 마술사가 아니라는 걸로 오래된 선배들에게 미움을 사야 했다. 양성 과정을 하다 보니 어린 친구들의 유치한 신경전에 늘 감정소비를 해야 했고 앞에서는 강한나였지만 속에서는 자책과 함께 고해성사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았다. 

수강생들과 학부형 관리로 외부에 눈 돌릴 새도 없었다. 버티다 보니 드디어 실력들로 검증되기 시작했다. 주니어를 대상으로 교육체계를 잡아갔다. 국내 방송사와 기사, 잡지 연재 등 매스컴을 타기 시작했고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아이템들을 접목했던 덕분이었을까? 어린이 프로그램부터, 스타킹 방송, 세상에 이런 일이, 각종 드라마, 배우, 개그맨, 뮤지컬 연출 지도, mbc 사극 드라마 전서구 협찬은 우리가 도맡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인천을 본점으로 두고 강남점을 오픈도 하게 되었다. 수강생들은 배우고자 열의를 가지고 전국, 부산, 합천, 대구, 대전, 평택, 성남, 분당, 광주, 강원도 등 전국에서 왔다. 그들의 발걸음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해 지도했고, 그 결과 경기도 수원점도 오픈했다. 열정과 목표가 있던 수강생들은 방송 출연과 함께 대회 출전까지 특별한 일상들을 보내며 제2의 인생을 열어가신 분들도 많았다.



이들에게 마술을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는 교육방식이 아니었다. 수강생이 등록한 이유는 천차만별이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없지만, 그들로 인해 배우고 가끔은 상담사가 되기도 했다.


마술이란 장르와의 만남은 '틈새'를 보고 이 길을 선택했다. 마술로 성격 개선, 자존감, 자신감, 성취감, 마인드 셋, 자기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고 믿었다. 진정으로 소통하는 수업방식을 채택했다. 정적인 아이에게는 움직임이 동반되는 수업을, 산만한 아이에게는 집중력을 기를 수 있는 수업이 병행되었다. 상처를 이기고자 마술을 시작하는 아이들, 특기가 없어 오는 친구들, ADHD 진단을 받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오는 친구들부터 다양한 증후군을 앓고 있는 친구들도 많았다. 마술로 이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무궁무진했다. 



이런 수업 방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선생님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까지 전문가 과정을 꾸려오는 과정은 그야말로 뜨겁다 못해 새까맣게 타버릴 정도로 내 심장이 버텨준 덕분이기도 했다. 



생소한 직업이었기에 마음이 전달이 되어 인정받기까지는 참으로 오래 걸리고 힘든 여정이었다. 그 힘든 과정은 사명과 보람으로 이어지는 행복한 날들이었다. 점점 영역이 넓어졌고 국내를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로 향하는 글로벌 회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렇게 외관은 나날이 발전했지만 너는...... 괜찮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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