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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언니의 말맛 Oct 24. 2021

#6. 난 그저 담쟁이가 되어주고 싶었다

대리만족! 그것도 병이 되더라.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에게 힘이 되어준 '도종환의 담쟁이' 



처음에는 사업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젊음과 열정 그리고 도전이 전부였다. 이제는 사업이 뭔지 느낌이 온다. 다시 시작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No'라고 말할 것이다. 모르니까 가능했던 용기였다. 돌이켜보면 주제넘은 짓임을 알았을 땐 자존감이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느꼈다.



담쟁이는 모두가 좌절할 때 말없이 담을 오른다. 절망을 딛고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나아간다. 손에 손을 잡고 절망을 푸르게 덮는다. 모두가 포기할 때 잎들을 이끌고 결국 벽을 넘는 담쟁이는 나에게 희망의 존재였고 꿈이었다.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없고, 자기 효능감이 바닥인 아이들에게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 그들은 빨리 가기 위해 혼자가 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빨리 그리고 멀리 가려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라.
빨리, 멀리 그리고 우직하게 가려면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가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벽은 늘 넘을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낀다. 무능력함을 느끼게 하려는 듯 회색 벽은 높기만 하다.



한 뼘이라도, 손톱만큼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 잡고 벽을 오르는 담쟁이가 좋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외롭지 않을 테니 말이다.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도왔다. 그 안에서 우린 사랑, 협동, 이해와 가장 중요한 배려를 배웠다. 그렇게 고난과 한계를 극복한 우리는 불가능하기만 했던 세계적인 무대에 오르며 모든 것을 뽐낼 수 있는 기회도 열렸다. 



수년간의 노력과 결실은 모두에게 당당하게 돌려주었다. 이날은 평생 두고도 잊지 못할 날이고, 잊고 싶지 않다. 뼛속까지 한 땀 한 땀 녹아있는 오프닝 무대에서 모든 것을 작품 안에 담았으니 말이다.


"너희들도 가장 열심히 살았고 전성기였던 시절이겠지. 보고 싶다. 그때의 기억들이 가슴 먹먹해지는 오늘을 만들 줄이야."



수년이 지난 지금, 너 안에 너란 존재는 있니? 이쁘고 사랑스럽게 크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하고 있지는 않았니? 마치 네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지금, 이 시간...... 대리만족이 혹시 병은 아닌지 너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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