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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언니의 말맛 Oct 24. 2021

#8. 어! 우리 엄마 맞아?

엄마 그 사람이랑은 친구 안 하면 안 돼?

2019년 뜨거운 여름날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


행복주민센터였다. 


"OOO님 따님이시죠? " 


엄마가 주민센터에 하루에 3~4번을 방문하셔서 민증 재발급을 하신단다. 그리고 당신의 통장을 맡기러 오기도 한다는 얘기였다. 이런 일들이 꽤나 오래 반복되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고 있냐며 전화를 주셨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그 뒤에 덧붙인 내용은 새마을금고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통장을 재발급받거나 돈을 찾았다 다시 넣었다 하기를 반복하고 계신다는 게 아닌가......



언제부터인지 통화를 할 때면 반복된 대화들로 짜증 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난 대수롭지 않게 나이 들어가나 보다 생각했었다. 


"엄마, 좀 전에 전화해서 말했잖아"


"아 내가 전화했어?" 아 그러네 생각난다. 알았어!"


가끔은 속상했던 소소한 일로 전화할 때면 영양가 없는 얘기들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었기에 핀잔을 주어 끊기도 했다. 바쁘다는 핑계가 가장 많았다. 경우가 밝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서 주민센터 담당자의 전화는 우리 형제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부터 난 엄마에게 전화를 자주 하며 엄마를 살폈다. 엄마의 감정 기복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좀 편하게 사시나 했더니 그것도 잠시였다. 



존중과 배려를 가르치고 있는 나로서는 정작 엄마에게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직업이 부끄럽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업무에도 지장이 생길 무렵 코로나19로부터 엄마를 지켜줘야만 했다. 엄마는 자식들의 말에 청개구리처럼 행동했다. 코로나19로 밖에 외출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여러 날이 되었다. 엄마는 마스크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을 못 할 때도 있었다. 당신의 집 비번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해서 일하다 말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당신은 계단에 앉아 있고 열쇠 수리하시는 분이 오셔서 힘들게 문을 열고 계셨다. 그 상황이 참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아이러니하게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는 낙심한 모습에 한없이 자신감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화도 낼 수가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계단에 앉아 세상 다 잃은 것 같은 엄마의 모습은 나를 불효자로 만들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 집에는 홈 CCTV 4개가 설치되었다. 엄마를 설득해서 병원에 가기는 쉽지 않았다. 엄마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된 이후로 엄마의 모든 상황은 우리가 짐작하는 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엄마는 당신이 중요 물품을 넣어두고 그걸 찾느라 두세 시간은 온 집안을 뒤지기 일수였고 새벽이면 주방 싱크대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엄마의 상태를 살폈고 전화로 단속하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엄마를 건강검진으로 속여 절차대로 1차 보건소 치매검사를 했다.



엄마의 눈치는 너무나 빨랐다. 1차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엄마는 마음이 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손녀딸을 앞세워 대학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엄마는 누가 봐도 정상인이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인지 적성검사에서 현저히 인지력이 떨어졌고 심리검사에서는 엄마는 극도로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다. 좀 서둘러 왔다면 약으로 늦출 수 있었다는 의사의 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미 엄마는 초기를 넘어 알츠하이머 중기에 들어서는 단계였다. 한 달 두 달 약을 복용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엄마는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급작스럽게 엄마에게 지목된 사람은 도둑놈이 되어야 했고 누군가는 엄마에게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 


"엄마! 엄마 왜 그래. 우리 엄마 맞아?"


코로나19 시국에 엄마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로 걱정이 배로 늘었다. 회사의 경영난과 엄마를 알츠하이머로부터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의 연속이었다.



엄마를 혼자 둘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낸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다. 엄마의 인지력은 리모컨도 켜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고 난 하루에도 몇 번씩 TV 재작동을 하기 위해 3~4번은 갔다 와야 했다. 약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당신이 약을 먹은 지도 금세 잊어버리고 3번 먹어야 하는 약을 하루 3시간 안에 다 먹기도 했다. 당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잠으로 활동을 멈추는 나날이 늘어갔다. 정작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 체 말이다.


"엄마! 오늘은 내가 다녀갈 수가 없어......"


"내일 내가 와서 약 먹었는지 다시 확인한다."


그렇게 엄마를 철석같이 믿는다. 믿고 싶었다. 바쁘다는 어쩔 수 없는 핑계를 대면서 실 같은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겠지.


잠시 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막내야! 엄마 티브이 또 안 나와. 전국 노래자랑 봐야 하는데"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엄마 막내딸이 오기만을......



너 보다 작아진 엄마, 너 보다 어려진 엄마, 너 보다 웃음이 많아진 엄마, 항상 너를 기다리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며 넌 어떤 생각이 들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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