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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언니의 말맛 Oct 24. 2021

#09. 야속하다. 정말

알츠하이머! 엄마는 기다려줄까? 대답해줘.

엄마의 하루는 "오늘이 며칠이냐?"로 시작된다. 


중간중간 쉴 새 없이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지금 몇 시냐?"


난 최대한 엄마와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젊은 엄마에 대한 기억은 고생하며 가족을 지켜냈던 모습이다. 엄마의 기억은 서러웠던 순간에 멈춰있다. 손자에 대한 기억, 자식에 대한 기억, 아빠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다. 오로직 20년 전 과거에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현재로 데려왔다. 외출하기를 귀찮아 해서 집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를 가졌다. 쉬지 않고 대화 속에 당신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었고 이야기는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대체 이 병을 어찌해야 할까. 요양시설부터 요양병원 다양한 정보를 얻기까지 수개월이 걸렸고 의사의 처방을 기다리는 건 가족들에겐 고통이었다.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약효과가 없는 건지 면역이 된 건지 별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 엄마의 입에서 불쑥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야~~ 갈비탕 참 오랜만에 먹는다."


아니었다. 바로 몇 일 전에도 엄마와 갈비탕을 먹었다. 


'아니야 엄마.... 나랑 몇 일 전에....' 


목까지 올라오는 말을 물과 함께 마셔버렸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한참을 어울린 후 집에 도착할 때 내 눈을 의심했다. 너무도 놀란 나와 언니는 서둘러 엄마에게는 바지에 뭐가 묻었다고 옷을 갈아입자고 했다. 방으로 들어간 엄마는 그 상황에 눈치를 챘는지 부끄러워했다.


"이게 웬일이냐 주책이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는 다시 밝아졌다.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함께 모인 자리가 즐거웠는지 기분이 업 되어 있었다. 다음 진료는 나만 의사를 만났다. 그리고 최근의 일을 심각하게 말씀드렸다.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다고 하셨다. 조만간 집을 못 찾아오는 증상도 있을 거란 말에 할 말이 잃었다. 환자를 데려오지 않아서 약은 절대로 처방해 줄 수 없다는 말에 힘이 빠졌다.



꾸역꾸역 시간을 내서 엄마를 집으로 초대했다. 엄마는 내가 손수 만든 오리백숙을 맛있게 드셨다. 엄마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조심스럽게 증상을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를 설득해서 요양원으로 모셔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노인 돌봄 서비스에 등록해야 했지만 실패했다. 엄마의 완곡한 거절 의사로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당분간 큰오빠네 집에 가있자는 것도 거부했다. 이러다 혼자 외출했다가 집도 못 찾아올까봐 걱정이 앞섰다. 동네 주민을 도둑으로 모는 일이 여러 번 발생하면서 경찰에 신고도 당했다. 도둑으로 몰린 어르신 가족 중에 아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기도 했다. 두세 차례는 엎드려 절하듯 죄송하다고 했다. 마지막 전화엔 악담을 퍼부었다. 그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아프셔서 그런 거 아니겠냐며 가족들도 방법을 찾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니 이해 좀 해달라며 사정을 해도 그 사람의 태도는 우리 엄마를 나쁜사람으로 몰아갔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 엄마를 설득했지만 엄마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화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4시간 넘게 온갖 욕설과 과거 조상과 아빠의 원망까지 합세해 쉬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당황한 나는 엄마를 달래기도 했고 울어도 보고 사과도 했다. 급히 엄마에게 약을 먹여야 할 것 같아 엄마를 달랬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당장 집으로 가겠다며 때를 쓰기 시작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난 이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 형제들에게 보냈고 모두들 엄마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엄마는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끝도 없는 말을 이어갔고 쉬지 않는 모습에 이 병의 무서움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의사 지시를 따르며 기다리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도 엄마도 지쳤을무렵 멀리서 부리나케 큰오빠가 와주었다. 아무래도 오빠가 오지 않으면 이 상황은 끝이 날 것 같지 않을 것 같았다. 오빠가 와서 엄마 역성을 들어주며 달래주자 엄마는 집에 데려다 달라며 오빠에게 꼭 붙었다. 엄마는 그렇게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에게 그 수많은 욕설을 남기고 돌아갔다.



엄마가 그렇게 모질게 당신 하고픈 말을 다하고 가고 나서, 난 현관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엄마가 아파...'


'엄마가 아파서 그런거야...'


'별 거 아니야. 아파서 그런거야.......'


'엄마 본심이 아니야. 병이야. 병 때문이야......'


엄마가 쏟아부은 말이 왜 그렇게 서럽고 야속한지 너무 서러웠다. 알츠하이머는 내가 듣던 거랑은 너무 달랐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가족이 더 힘들고 고생한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렇게 20분쯤 시간이 흘렀다. 


"막내야 큰오빠가 데려다줘서 집에 잘 왔어." 


라며 엄마가 안부전화를 준다. 눈을 감고 뜨면 아무일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꼈지만, 엄마가 떠난 현관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알츠하이머! 너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구나 내가 그리 만만해 보였니?'


엄마를 위해서라도 알츠하이머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 며칠 후에 시니어교육센터에 등록했다.



엄마는 기다려줄까? 대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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