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시장

by 이수현


시장에 가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볼 수 있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치고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말과 표정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역시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과 관심을 갖는 화제, 그리고 현재 경제상황까지 엿볼 수 있었다.


중앙시장 전경



알리칸테에는 중앙시장(Mercado Central), 길거리 시장 그리고 프랜차이즈 마트 이렇게 3가지 종류의 시장이 있다. 이름처럼 알리칸테 중앙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했는데 Luceros거리에서 산타 바르바라 성 쪽으로 직진하면 보이는 큰 건물이 바로 시장이었다. 중심지에 위치해 어디서든 접근이 쉽고 깨끗한 외관에 지나가다 한번 쯤 들러볼만한 관광지였다. 다만 시장이 오후 2시면 문을 닫아서 학교에 가야하는 주중에는 방문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시장에는 늘 사람들이 붐볐던 것 같다.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엔 주로 야채와 과일, 생선을 취급하고 2층에선 고기류를 팔고 있었다. 시장으로 보이지 않는 깔끔하고 전통적인 외관에 건물 안 역시 구획이 깔끔하게 나누어져 재래시장이라기보다는 최신식 시장 같았다. 과일이나 생선이 좌판 위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가게마다 상품 진열 기술을 선보이듯 화초나 근사한 나무바구니로 진열대를 꾸며놓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거기에 약간의 시끄러움과 지나가는 사람을 이끄는 호객소리,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비싸다"란 소리에 가격흥정이 이어지는 평범한 시장이었다. 상점 중간에 간단한 샌드위치를 파는 식당이 있고 그 식당에 앉아 맥주 하나를 시키고 이야기를 나누는 스페인 사람들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시장처럼 관광지로서의 화려하고 볼것 많은 시장이 아닌 현지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시장 상인들이 대부분 50대 이상인 우리나라와 달리 2~30대의 젊은 상인들이 꽤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가게 외관처럼 본인의 복장도 신경을 쓴 게 눈에 보였다. 다들 깔끔한 하얀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생선가게 젊은 여성 상인은 빨간 민소매티를 입고 열정적으로 생선을 손질했다. 젊은 사장님이어서 였을까, 차림새에서도 생선을 손질하는 몸짓에서도 왜인지 모를 자부심이 느껴졌다.



가게마다 간판에 빨간색 글씨로 상점 이름이 표기되어 있었다. 평범한 상호도 있었지만 대부분 가게 주인의 이름을 그대로 딴 간판이 많았다. 한국 시장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가 많았는데 대대로 운영을 해오고 있는 듯했다.

1층 과일가게


2층 정육점


2층 카페테리아

1층에서 과일과 야채를 구경하고 2층에 올라오면 돼지 뒷다리 햄 하몽(jamón)을 볼 수 있었다. 하몽의 본고장답게 직접 하몽을 만들어 파는 정육점이 많았는데 가게마다 하몽 종류도 천차만별이었고 시장에 오래 다닌 노인들은 저마다 하몽 단골집이 있는 듯 했다. 몇 번 직접 만든 하몽 구입에 도전을 시도해봤지만 익숙지 않은 생고기의 냄새에 대한 거부감에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가게마다 돼지 뒷다리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광경을 제외하면 정육점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유리로 내부가 보이는 냉장 쇼케이스 안에 부위별로 고기를 나눠놓고 그램 수를 달아 고기를 팔았다. 그램을 재고 나서 덤을 더 얹어주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서늘한 2층까지 구경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시장 뒤편에는 작은 레스토랑과 함께 꽃집들이 모여 있었다.



시장 외부 꽃가게



꽃 가게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다. 시장에 있는 꽃집이라 그런지 조금은 투박한 꽃과 화분들이 또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손님을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꽃다발을 구매해 알제리 친구 샤이네즈의 집 초대에 선물로 들고 갔다.

5유로 남짓했는데 큼지막한 꽃들을 투박하게 포장한 꽃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받고 샤이네즈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시장 바로 앞 간이 매장에서는 알리칸테 특산품인 뚜론(turrón)을 팔았다. 직접 만든 듯한 뚜론은 한눈에 보기에도 참 고급스럽고 맛있어 보였는데 한국으로 돌아올때 기념품으로 사오고 싶었지만 2시면 문을 닫는 탓에 결국 맛도 보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알리칸테 길거리 시장은 거주증명서를 신청하러 외국인 경찰서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볼일을 마치고 걸어 나오니 경찰서 바로 옆 주차장에서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주로 야채나 과일을 파는 노점이 주를 이뤘는데 옷과 신발도 아주 싸게 팔아서 꼭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 같았다. 나중에 어학원 선생님 디에고에게 물어보니 주기적으로 여는 상설시장이라고 했다. 다만 이곳도 2시면 문을 닫아서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보통 이런 길거리의 작은 시장이나 벼룩시장을 스페인에서는 메르카디요(mercadillo)라고 부른다. 작은 시장이라는 뜻이다. 이름은 작은 시장인데 파는 품목은 중앙시장인 메르카도(mercado) 보다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장 상인들도 우리네 전통시장처럼 큰 목소리에 호객행위도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옷이나 신발, 장신구들이 많아서 메르카도보다 볼게 많았고 파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정말 없는 게 없는 시장이었다. 과일이나 야채는 기본이고 주방세제나 국자 같은 생활필수품부터 선글라스, 휴대폰 케이스, 화장품까지 필요한 품목은 모두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가격도 일반 마트에 비해 한없이 저렴해서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햇볕을 가릴 밀짚모자 하나와 참깨를 샀다. 모자 하나를 사는데도 이것저것 추천해주며 내게 어울릴만한 모자를 꺼내온다. 거울도 보여주며 친절을 베푸는 데 값까지 싸니 만족스럽다. 심지어 그 시장에서는 전기구이 통닭도 팔고 있었다. 통닭을 굽는 그릴과 구워 나오는 통닭 모양 모두 한국과 똑같았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갔다 전기구이 통닭을 한 마리 사 온 기억이 나 살며시 웃음이 났다. 군침이 흘렀지만 통닭을 사달라 조를 엄마가 그곳에 계시지 않아 빈손으로 돌아왔다.


경찰서 옆 주차장에 열린 시장





알리칸테에서 두 번째로 만났던 메르카디요는 알리칸테 기차역 한참 위 주택가에 있었다. 선생님 디에고(Diego)의 소개로 방문한 이곳은 동네에 있는 골목시장 분위기였다. 과일과 야채를 좌판에 가득 널어놓고 ‘떨이’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귤 한 봉지에 1유로’, ‘오렌지 한 봉지에 2유로’를 외치는 상인들 사이를 지나가면 야채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놓고 ‘1유로’라고 적어놓은 좌판이 보인다. 한참 더 들어가면 우리나라 김치 같은 저장식품을 파는 트럭들이 있다.피클과 올리브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소 절임들을 그램을 달아 팔고 있었다. 올리브를 사고 싶어 물어보니 집에서 직접 담근 거란다. 그 옆 트럭에서는 쿠키와 달콤한 간식들을 구워 팔고 있다. 파는 빵의 종류도 다양하다. 스페인은 빵을 뜨겁게 먹지 않는다. 뜨거운 빵을 먹으면 죽는다는 미신 때문이라는데 그래서 전문 빵집에서도 슈퍼마켓에서도 갓구운 빵을 식혔다가 가판대에 진열해놓았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로 식은 빵이 가판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골목시장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시장은 규모가 꽤 컸다 3블록 정도의 거리에서 과일, 야채, 먹을 것들을 팔았다. 디에고의 말로는 우리나라 5일장처럼 날짜를 정해서 열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같이 간 친구와 상품가치가 없는 못생긴 귤 한 봉지를 1유로에 사서 걸어가면서 까먹는데 정말 맛있다. 태어나서 먹어본 귤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다. 한 봉지지만 2Kg은 넘어 보이는 이 귤은 나중에 어학원에 가져와 친구들에게도 나누어줬다. 처음엔 못생겼다며 먹지 않겠다던 선생님 디에고도 먹어보더니 이렇게 맛있는 귤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나오는데 끝 골목에 옷을 파는 시장이 따로 모여 있다. 잠옷이나 반팔 티, 바지들을 파는 모습이 꼭 우리나라 시골장 같다. 이렇게 큰데 왜 이름은 작은 시장인지 궁금하다고 친구와 귤을 까먹으며 농담을 했다. 세계 어디나 시장의 분위기는 비슷한 것 같다. 값싸고 싱싱한 식재료들, 흥정하는 상인들과 구매자, 손 카트를 끌고 무엇으로 저녁을 하나 고민하는 주부들, ‘1유로와 천원’ 외치는 구호의 억양도 비슷하다. 그래서 시장에 오면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든다. 게다가 돌아올 때는 무언가를 두 손 가득히 들고 갈 수 있다. 시장에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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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칸테에서도 주로 장을 볼 때는 마트에 갔다. 재래시장이 아닌 마트도 스페인에서는 메르카도(mercado)라고 불렀다. 마트들은 보통 시에스타도 없이 밤 10시까지 운영해서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었다. 스페인에서도 마트는 체인점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알리칸테에서는 메르카도나(mercadona)와 대형마트인 알캄포(Al campo), UNIDE, 디아(dia) 등이 있었다. 이중에 메르카도나가 매장이 가장 많고 집과 가까워 자주 갔다. 메르카도나는 마트의 표준 같은 곳이었다. 해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마트 이용에는 불편할 것이 그다지 없다. 대부분 나라에서 상품의 진열과 계산대 구조는 비슷하고 언어를 잘 몰라도 진열되어 있는 상품의 그림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 계산대에 가져간 후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된다. 누구와 대화를 할 필요도 없다. 바나나를 구입하려면 과일이 모여 있는 코너에 가면 되고 요구르트를 사고 싶으면 냉장코너에 가면 된다. 가서 그림을 보고 적당한 가격의 품목을 집어서 장바구니에 넣기만 하면 물건 구입이 가능하다.

진열되어 있는 품목 위치도 대게 비슷하다. 샴푸 근처에 비누가 있고 그 근처에 욕실 세정제가 있다. 과일이나 야채의 무게를 재고 싶으면 가운데 올려진 저울에 올려놓고 버튼만 누르면 된다. 구매 시에 질문도 필요 없다. 가격이 다 붙어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잘 모르는 나라에서 사는 외국인에게는 마트라는 것이 인류 최대의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구경이 목적이 아니면 대부분의 품목을 마트에서 샀다. 물론 시장이 더 재미있고 물건이 신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어가 서툰 외국인에게 시장은 쉽지 않은 장벽이었다.


마트에서 팔던 호날두 쿠키



마트와 시장은 모든 생활의 기본이기도 했다. 먹고 사용하는 것들 모두를 마트에서 사야 했다. 과일의 이름이나 물건의 이름을 배운 곳도 마트였다. 책에서는 잘 외워지지 않던 단어들이 마트에 붙인 이름표에서는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마트에 가서 매주 먹던 것들을 장바구니에 던져 넣는 나를 발견하고는 스페인 현지 사람이 다 된 것 같아 즐거웠다. 그러다가도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레몬 맥주나 레몬 콜라, 이베리코 돼지고기, 샹그리아를 바구니에 담을 때는 스페인에 있는 것이 다시 한 번 실감이 나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봐서 냉장고에 채워 놓으면 일주일이 든든한 그 기분은 스페인과 한국이 똑같았다. 그렇게 마트와 시장은 내 스페인 생활 내내 나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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