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생활 중 가장 고생스러운 것은 바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아닐까, 스페인은 쌀을 먹는 문화권이고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쌀이나 마늘, 대파 비슷한 야채들을 팔고 있어 요리를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한국에서 미리 고추장이나 간장 같은 기본적인 양념은 챙긴 탓에 얼추 한국에서 먹던 밥상과 비슷한 식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생활이 길어지며 슈퍼마켓에서 공수해서 할 수 있는 요리의 패턴이 매번 비슷했기에 좀 더 업그레이드된 한식이 먹고 싶어 졌다. 몇 달 동안 매일 밥을 해 먹고 산 덕에 요리 실력이 향상되었던 것이다. 자연히 좀 더 업그레이드된 한식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마트를 찾게 되었다.
이탈리아 거리는 알리칸테의 중심지인 루세 로스(Loceros) 광장에서 알리칸테 최고의 관광지인 포스티게(Postiguet) 해변까지 이어지는 대로의 중간에 위치한 거리로 살던 집에서 10분 정도 걸렸다. 루세로스 광장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알리칸테 유일한 백화점인 코르테 잉글레스(el corte ingles)가 보이고 코르테 잉글레스에서 두 블록 정도만 내려오면 바로 이탈리아 거리였다. 코르테 잉글레스를 지나는 대로는 항상 쇼핑 가방을 든 여유로운 관광객과 주민들로 붐볐고 화려한 쇼윈도와 보석 가게를 볼 수 있는 번화가였다. 그래서 그곳을 나는 알리칸테의 청담동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에 반해 몇 블록 떨어진 이탈리아 거리는 그 이름에 맞지 않게 저렴한 식료품 가게나 제법 껄렁해 보이는 청년들이 서성이는 그런 거리였다.
그 일대는 왜인지 모르게 나라 이름이 붙은 거리가 많았다. Calle Portugal(포르투갈 거리), calle allemania(독일거리)처럼. 하지만 그 거리에서 나라의 특성을 찾아볼 수는 없어서 왜 그 주변에 나라 이름이 붙은 거리가 많은지 도무지 추측이 불가능했다. 이탈리아 거리든지 프랑스 거리든지 상관없어 보이는 거리의 중앙에 내 식생활의 근원이 될 중국인 마트가 있었다. 이름은 Alimetacion, 특별한 상호는 없고 스페인어로 그냥 슈퍼, 공급소의 뜻을 가진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이곳은 중국어로 따로 상호가 있는 듯했지만 이름이 무엇이든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변에 중국인이 많이 사는지 그 거리 일대에 저렴한 옷가게며 천 원 샵 같은 생필품을 가게도 있어 자주 들렀다. 그 주위에서 홈스테이나 룸 셰어를 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는데 다른 지역보다 방세가 조금 더 쌌다.
마트는 제법 큰 도시인 알리칸테에 유일하게 있는 동양 식재료 마트였다. 가게에 들어서면 특유의 중국 향료 냄새가 머리를 아찔하게 했고 늘 채소가 썩은 듯한 냄새가 났다. 중국식 만두나 당면 같은 냉동식품부터 중국 라면, 소스, 과자, 낫또, 일본식 간장, 된장, 한국의 고추장, 된장, 과자까지 웬만한 식료품은 다 구할 수 있었다. 한중일에서만 먹는 야채(청경채, 배추, 숙주 등)도 항시 구비해 두었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현지인들도 자주 찾았다. 수업이 끝나면 중국, 일본 친구들과 함께 마트에 와서 장을 보기도 했다. 중국 향료 냄새를 유독 못 견디는 나였지만 그곳에서만 한국식 라면, 고추장을 구할 수 있었기에 냄새쯤은 참을 수 있었다. 시험이 끝나거나 기분이 울적한 날은 꼭 이 마트에 들러 한국 라면이나 새우깡 따위를 잔뜩 사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라면이 한 봉지에 2유로가 조금 안되고 새우깡은 3유로 정도여서 만원 내외에서 마음껏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알리칸테에는 중식당과 일식집, 중식 뷔페가 여럿 있었지만 한식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한식을 먹으려면 직접 요리해야만 했다. 마트에서 주로 샀던 한국 식재료는 고추장과 참기름, 간장이나 라면처럼 공장에서 만들어진 식품들이었다. 누가 봐도 중국에서 만든 것 같은 김치가 유리병에 담겨 진열장에 있었고 가게 입구에 한글로 ‘직접 담근 김치 팝니다.’라고 안내문이 붙어있었지만 한 번도 김치를 그곳에서 사 먹어 본 적은 없다. 여름방학에 북유럽에 갔다가 마트에서 예쁜 진열대에 놓인 유리병 김치를 캐리어에 담아오려다 세관에게 걸릴 정도로 김치가 고팠지만 왠지 그곳에서는 김치를 사 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마트 깊숙이 짙게 배어있던 그 야채 썩은 냄새 탓이었을지 유리병에 조악하게 적혀있던 한글이 탓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김치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가끔 큰 마트에 가면 배추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김치를 담글만한 크기는 아니고 샐러드에 넣어먹을 만한 봄동 수준의 배추였다. 그 배추를 사다 소금을 치고 절여둔 다음 액젓 대신 중국인 마트에서 구입한 피시 오일을 두르고 고춧가루와 파, 마늘 등을 넣고 버무리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겉절이가 되었다. 그 겉절이에 마트에서 삼겹살을 조금 사다가 고추장과 마늘, 후추, 참기름 등을 넣고 고기를 버무려 프라이팬에 볶은 제육볶음과 함께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부족한 재료는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간도 역시 그때그때에 맞게 비율을 바꿔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엔 요리 실력이 꽤 향상되어 있었다.
제육볶음은 파티 음식이나 손님 초대용 음식으로도 제격이었는데 거기에 한국에 비해 작고 조금 더 연한 유럽식 상추(Lectuga)를 곁들이고 흰쌀밥과 함께 내면 누구든 만족하는 음식 접대를 할 수 있었다. 제육볶음은 특히 일본인 친구들이 좋아해서 일본 친구들 집들이나 홈 파티에서 자주 솜씨를 선보이곤 했다. 태어나서 처음 한 제육볶음 요리가 스페인에서였고 제법 먹을 만해서 파티마다 외국인 친구에게 대접했으니 나름 성공적인 제육볶음 데뷔인 셈이다.
그렇게 나는 스페인 ‘알리칸테’에 있는 ‘이탈리아’ 거리의 ‘중국인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 ‘일본인’ 친구의 홈 파티에서 한식을 제육볶음으로 전파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탈리아’라는 단어에서 제육볶음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