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국물이 땡기는 계절~ 남편의 한 마디 "어묵탕 끓여줄 수 있어?"
"혹시 어묵탕 끓여줄 수 있어?"
"어묵탕 먹고 싶어요?"
"응. 뜨끈뜨끈하게..."
"어묵이 맨날 냉장고에 있나요? 장을 봐야 있지."
"그럼 지금 못해?"
"새벽 배송으로 받아서 내일 아침에 끓여줄게요."
남편의 주문으로, 남편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어묵탕]을 끓여보려 합니다.
'남편 사랑 어묵탕'
멸치육수, 어묵, 다진 마늘, 다진 파, 멸치액젓, 구운 소금, 후추 등
부산에서 살 때 깡통시장 어묵 골목으로 어묵을 사러 간 적이 있습니다. 수프도 따로 파는데 요즘 유행하는 동전 육수처럼 어묵 수프도 국물 맛을 내기 위한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서 맛을 더해줄 뿐 MSG 덩어리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버리지 말고 잘 활용하시면 맛있게 드실 수 있으실 듯합니다. 어묵 수프로 콩나물, 시금치나물 등을 만들 때 곁들이시면 감칠맛이 더해집니다.
끓는 물에 어묵을 한번 튀겨내면 유탕 처리된 기름이 빠져서 국물이 깔끔해지고 기름지지 않아서 좋습니다. 개인의 취향이니 이 과정은 생략하셔도 좋습니다. 기름기도 제하고 소독하는 과정으로 번거롭지만 어묵뿐 아니라 스팸, 비엔나소시지, 프랑크 소시지와 같은 가공식품을 한 번씩 튀겨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물용 수프가 없는 제품을 구입하셨거나, 멸치육수를 미리 준비하지 못하셨다면 동전 육수를 추천드립니다. 여러 회사에서 동전 육수 제품이 나오고 있으니 어느 것이든 구입하셔서 사용하시면 맛있는 육수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동전 육수는 시간이 지나면 공기를 머금어 변색되거나 축축해질 수 있으니 개별 포장된 것을 추천드립니다.
후루룩 끓여도, 저처럼 약간 번거롭게 끓여도 거의 비슷한 맛이 나는 어묵탕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는 꼬치어묵이 최고인 듯합니다. 대학시절 서울 당산역 근처에서 살았는데 역전에 병렬로 길게 늘어 선 포장마차가 생각이 나네요. 도시환경개선으로 길거리 포장마차가 다 사라졌지만 가족의 생계와 자식들 대학 학비를 벌어 낸 포장마차는 서민들의 삶 자체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그 모습이 그립습니다.
당산역 전에서 제가 과외를 하던 학생의 할머니께서 포장마차를 하셨었는데 어르신을 도와드리려고 자주 일손을 도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떡볶이, 야끼만두, 순대, 어묵 등을 포장마차에서 파셨는데 한 메뉴 당 10만 원씩 순이익이 났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10만 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30년 전 10만 원은 정말 큰돈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어르신을 도왔던 것은 아니고, 힘들어 보여서 일손을 도와드렸었는데 그 덕분인지 떡볶이와 어묵탕은 꽤 잘 만듭니다.
상가에 임대료와 세금을 내며 운영하시는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이지만, 보증금과 월세를 장만할 수 없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포장마차는 생계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산역 전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낮에는 벤츠를 몰고 다닌다는 후문이 그 당시에도 있었지만 믿거나 말거나죠. 매일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기에 하루도 쉼 없이 장사에 나서고, 어느 날 나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포장마차가 있으면 폭력이 오갈 만큼 다툼이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역전에 집이 있어서 밤새도록 오가는 사람 소리, 포장마차끼리 다투는 소리, 술에 취한 취객이 공중전화부스를 부수는 소리 등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제 방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면 사람 사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보여서 싸움이 나면 경찰에 신고하는 일 또한 제 일 중 하나였었죠. 아마도 연 중 신고 회수로 치면 제가 그 지역에서 단연 1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생계를 책임지며 어깨가 무겁도록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삶의 다양한 형태를 눈으로 보고 느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살아가는 데 어려움 없이 안정된 삶이 주어져 감사한 나날이 이어지지만 그 시절 당산역은 포장마차와 좌판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로 인도가 좁아져 자주 단속반이 출몰하는 곳이었습니다. 저 멀리 단속반의 트럭이 다가오면 포장마차 리어카를 밀며 눈썹이 휘날리도록 도망치던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너무하다 싶었지만 지나 놓고 보니 불법 영업을 단속하는 그분들의 노고도 만만치 않았을 듯싶습니다. 단속반에 걸리면 포장마차 리어카 째 트럭에 싣고 단속반이 해당 집합소로 가 버립니다. 망연자실 그 자리에 실랑이를 하다 지쳐 주저앉은 사람들과 구경꾼들의 표정들에는 삶의 애환이 서려있습니다. 한 번 리어카를 빼앗기면 짧게는 1주, 길게는 열흘 이상 장사를 하지 못하는 포장마차 주인들은 생업을 잃은 허망함으로 자리를 뜨지 못했었죠.
깨끗이 정돈된 신도시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살아보겠다고 아귀다툼하는 모습을 TV 속 남 얘기처럼 접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연민을 몸으로 체득하며 공감할 수 있는 경험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묵탕 한 그릇 끓여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민의 음식이고, 손쉽고 값싸게 배 채울 수 있는 음식에 사람마다 갖가지 추억이 깃들어있고, 향수가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서민 코스프레하느라 평소에는 우리네 아이들과 같이 TV 속 남의 일처럼 경험해 놓고서 그 마음을 다 아는 양 섣불리 이야기하는 이가 나라의 이끔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적어봅니다.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