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다닐 시절만 해도 김수근에 대한 이야기가 크지 않았다. 유명한 건축가 정도? 사실 중학교가 공간사옥을 지나야 있던 덕에 검정벽돌의 공간사옥앞 골목길은 낮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본 일본 잡지에 그의 작품이 실린 것을 보고 신기했고, 대단했다. 그덕에 관심이 시작......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회 또는 성당건축을 처음 할 때는 천주교신자가 아니었다가 그가 말년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보면 굳이 신자에게 성당이나 교회를 맡길 이유는 없는듯 했다. 오히려 비신자가 신자가 되는 계기가 되니 말이다.
아무튼 나중에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보면 그의 종교건축이 일찍부터 품고 있던 내적 방향을 조용히 확인해주는 사건 같다. 그의 유명한 3개의 건축을 보면 김수근에게서 ‘성(聖)’은 비상한 형식의 과시가 아니라 물성과 빛, 경계와 전이(轉移)로 짜인 느린 여정으로 보인다. 1970년대 그가 심취했던 붉은 벽돌은 그래서 단순한 외장재가 아니다.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를 인간의 체온 쪽으로 되돌려놓는 얇은 가죽, 고통과 위로 사이의 떨림을 표면에 남기는 그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범 기독교 건축의 한국 정착은 여러가지 건축 형식으로 등장했다. 서구 고전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필연적이나, 일부 교회들은 교회 건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보여주었다. 영국 성공회의 지역문화와 동화된 형태로 한옥이 스며든 경우가 있었다. 강화도가 대표적이다.
김수근의 종교건축을 보면 몇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재료의 솔직함, 경계의 구축, 빛의 상징성, 인간주의—가 나타난다. 예수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사랑을 건축으로 표현한 듯한 그의 건축에서, 노출 콘크리트와 거친 벽돌은 아름답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진실하다’. 칠하고 감추기보다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지극히 신앙적이다. 그런 거침은 곧 브루탈리즘의 에토스가 그의 성전(聖殿)에서는 인간의 불완전과 신의 완전 사이를 매개하는 상징이된다. 레벨 변화와 계단, 좁고 어두운 전실은 곧장 성소로 이끌지 않고 망설이게 만들며, 이런 은유적 표현은 문학적이고 시적이며 신학적이다. 그리고 정점에서 쏟아지는 빛—천창에서 사선으로 떨어지는 한 줌의 광선은—계시를 설명하지 않고도 그 현존을 체감시키는 ‘경험의 문법’을 이룬다. 한때 경동교회 신자로서 일요일마다 마주하는 그 빛은 정말 성경적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공간에서 신학은 교리보다 동선으로, 해석보다 명암으로, 담론보다 재료의 투박함으로 표현되었다.
마산성당(양덕성당)은 이 문법의 초안에 가깝다. 르 코르뷔지에의 후기작을 연상시켰던 김수근의 자유센터나 워커힐, 홍릉의 건축에서 보여진 거친 부르탈 건축에서 학습한 빛과 조형의 구성을 보여준다. 어둠과 빛의 대비 속에서, 파벽돌의 거친 살결은 예수의 거친 손과 고난한 성경의 여정을 드러낸다. 여기서 붉은 벽돌은 구조가 아니라 치장재로서, 콘크리트의 냉기를 감싸는 따뜻한 피부가 된다. 어쩌면 이후 그가 설계한 교회나 성당에 사용한 붉은 벽돌은 십자가의 붉은 피를 은유한 것은 아니었을지.
진입부에서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높낮이가 신앙 여정을 ‘단계’로 번역하고, 좌석의 경사와 단 차이는 기도를 수평의 집합이 아니라 수직의 상승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예배실을 감싸는 상부 채광은 성상(聖像)의 표면을 밝히기보다 공기 자체에 광휘를 입혀, 신자와 하느님의 만남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 모든 것은 교회를 “훌륭한 화해의 장”이자 “영적 기쁨의 공간”으로 이해한 그의 해석은 여러가지 요소들의 대비로 차가움과 따뜻함, 인간과 신의 간극을 건축적으로 봉합하려는 의지—를 이야기한다.
경동교회로 오면 이 여정은 성채이자 방주를 닮은 단단한 몸체 안에서 절정에 이른다. 외피의 파벽돌과 내부의 콘크리트는 서로를 의지하며 브루탈리즘의 진실성을 밀고 나가되, 위계화된 레벨과 장대한 상부 채광으로 평면의 기능주의를 넘어선 영적 구성을 짜 올린다. 경동교회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1층), 인간과 하나님(2층), 하나님과 하나님(3층)”으로 단면적 관계를 묘사한다. 이는 유럽의 여러 벽화나 신앙적 표현에서도 나타난 상징구성이다. 또한 삼위일체와 신앙적 세계관을 건축적 질서로 표현했고, 강단을 둘러싼 다양한 레벨은 회중의 시선과 몸을 자연스레 집중시키며, 빛은 설교의 언어와 경쟁하지 않고 그 언어가 머물 ‘기류’를 만든다. 외부에서 보면 침묵의 덩어리, 내부에서는 공동체가 호흡하는 대공간—경동교회는 이 이중성으로 도시 속 성전의 존재 이유를 새긴다. 경동교회의 구성이 어떤 교회보다 탁월한 점은 도시를 향해서 문을 두지 않고, 돌아올라가는 틈새길을 만들어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관념적 건축의 배치를 한 것이다.
불광동 성당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김수근의 건축 작품이다. 지금이라도 한번 가보면 좋을 듯 하다. 타오르는 촛불 또는 모아 쥔 두 손의 실루엣을 닮은 외관은 경동교회나 마산성당에 비해서 정제되어 있고 단순하다. 좀 더 이성적 접근으로 다듬어진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동교회나 마산성당처럼 붉은 벽돌로 감싼 폐쇄적 외피는 안쪽의 노출 콘크리트와 만나 ‘따뜻한 견고함’이라는 역설을 빚어낸다. 본당과 부속 공간 사이에 의도된 레벨 차는 경계와 만남을 동시에 연출하며, 계단과 램프의 완만한 흐름이 ‘오르는’ 동선에 체력보다 마음을 싣게 한다. 불광동 성당에서도 빛과 동선은 영적 리듬감을 연출하면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벽돌은 단지 1970년대의 스타일이 아니라, ‘불타는 마음’의 은유로 다시 읽힌다. 불광동 성당은 그렇게, 경제성과 효율위 물질적 건축을 구해내어, 절제 속 정서의 풍부함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오늘날 물질이 중심을 차지한 듯한 종교계에서 나타나지 않은 형태적 구현인 것 같기도 하다.
김수근이 표현한 종교건축을 바라보면 ‘경계의 미학’으로 이해하게 된다. 세상속의 교회를 나누지 않고, 전이로 겹치게 한다. 어두운 현관, 낮은 천장, 살짝 돌아앉은 벽, 소리의 반향—이 모든 작은 전략들이 종교적 영적 공간의 시작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영적 감흥 또는 공간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고, 다가오며, 예비되며, 결국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그의 교회에서 신앙은 앉는 행위라기보다 ‘스며들어가는’ 현상이다.
물성은 이 영적 스며듬의 윤리와 직결된다. 거친 벽돌과 노출 콘크리트는 흠결을 숨기지 않는다. 흠집과 얼룩, 온도와 습도에 반응하는 표면의 변색은, 시간을 적으로 보지 않는 태도를 가르친다. 가난한 재료를 고요하게 겹쳐 올리는 손길—그 절제는 눈부신 장식보다 더 깊은 풍요를 낳는다. 벽돌은 쌓은 만큼만 말하고, 콘크리트는 굳은 만큼만 버틴다. 이 최소한의 정직에서 공동체는 최대한의 상징을 수확한다. 교회가 사회적 약속이자 공적 장소여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가성(假性)의 화려함’이 아니라 ‘진성(眞性)의 질감’에서 시민적 신뢰를 다시 세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주일이 아닌 날은 문들 닫고 그들의 '안전'에 집중하는 현실에서 대중들과 호흡하지 못하는 것은 새삼 고민해 봐야 한다.
빛의 신학 역시 일관된다. 그의 성전에서 빛은 장엄한 연출의 주인공이기보다, 길잡이로서의 조연이다. 벽과 천정, 루버와 슬릿 사이로 들어온 빛은 표면을 과장하지 않고 부피를 드러내며, 깊이를 만든다. 명암의 리듬은 시선을 몰아치지 않고 붙잡아 둔다. 사실 많은 종교건축, 교회나 성당은 오래전 부터 빛이 갖는 심리적 작용에 대해서 고민하고 반영해 왔다.
그럼에도 김수근의 종교건축은 교리의 조형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의식(儀式)의 건축’의 하나로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가? 시간과 동선, 재료와 빛이 서로의 역할을 나누어 수행하는 가운데, 회중은 관람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성당과 교회는 기능적 건물이 아니라 ‘사건의 장소’가 되고, 그 사건은 화해—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간과 신 사이의—로 귀결된다. 그래서 그의 건물들은 오늘의 눈으로 보아도 낡지 않는다. 도시가 어지러울수록, 과잉의 이미지가 넘칠수록, 그는 오히려 절제를 통해 충만을, 거칠기를 통해 따뜻함을, 경계를 통해 만남을 설득한다.
나는 그가 생전에 어떤 종교관과 신앙관을 가졌는지 모른다. 다만 그가 설계한 교회를 잠시 다녔던 경험으로그의 종교건축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성사적(sacramental) 건축감성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나는 교회건축을 실제화 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마음을 흔들고 기도하게 만드는 교회를 한번 즘을 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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