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과 맥락 사이에서 길을 잃은 건축

8,90년대 대학로와 강남, 홍대앞의 상당수 벽돌 건축은 그의 작품이었다

by 홍진

2010년 이후 건축매체에 사라진 건축가 김기석. 나는 기억한다. 그가 설계한 주택을 지나고, 그가 설계한 논현동 맥주집에서 친구들과 한잔했던 기억으로.

도시의 표면이 균질하게 매끈해질수록, 우리는 그 속에서 단 하나의 주름을 찾아내게 된다. 그 주름이 비정형이라면 놀라움을 주고, 정형이라면 위안을 준다. 그러나 김기석의 ‘아람광장’ 건축은 안정적인 정형건축으로 자기만의 질서를 구축했고, 한시절 우리나라 건축의 한 부분을 담당했다.

김기석 건축가가 일련의 '마당'시리즈로 주목 받았다. 1980년대 서울 서교동의 골목 한복판에서 선보인 일련의 프로젝트로, 총 세 동의 소형 건축물이 서로 느슨하게 맞물려 하나의 마당과 공간 연속체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 연속은 단순한 배열이 아니라, 각각의 건축이 고유의 표정을 지닌 채로 공존하는 관계의 구조다. 이 건물들은 하나같이 붉은 벽돌을 기본 재료로 삼고 있으며, 사각 모임지붕과 반복되는 아치, 다층적인 창의 구성이 기본적인 디자인 어휘를 이룬다. 정형성과 관련하여 이 건축이 주는 첫 인상은, 그것이 마치 ‘기하학을 재료 삼아 감성을 엮은 집합체’ 같다는 점이다.

이렇게 한명의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들이 연작을 이루면서 가로이미지를 좌우하는 경우는 한국에서 매우 드물며 이는 주목할 만한 공간이다. 다만 한국의 자본주의시장에서 얼마나 이 공간이 지속될지는 알 수 없는 위태로움도 있다.

김기석은 형태의 기본 단위로 사각형을 고수한다. 그의 평면은 대부분 직사각형이나 정방형에 가까우며, 그 위에 얹혀지는 지붕은 사방으로 경사진 사각 모임지붕 형태를 지닌다. 이는 기능적이면서도 시각적으로는 피라미드형의 안정된 구도를 만들어낸다. 각 건물은 이러한 정형성을 토대로 구축되며, 그 속에 삽입된 장치들은 반복과 변화, 통일과 일탈을 통해 일종의 음악적 리듬을 생성한다. 그러나 김기석의 정형은 무기교의 복제나 보수주의적 고전주의와는 다르다. 그의 정형은 철저히 사람의 눈높이, 손의 결, 삶의 동선에 기반한 감각적 정형이다. 붉은 벽돌이라는 고유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벽면을 채우되, 그 표면은 절대 평탄하지 않다. 벽돌을 쌓아 만든 입면은 때로 움푹 파이거나 돌출되고, 일부는 아치로 연결되며, 어떤 부분은 작은 창으로 가볍게 찔려 있다. 이러한 조형은 고전적 정형성의 틀 위에 손끝의 변주를 올려놓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사각 모임지붕은 아람광장 건축의 가장 시각적으로 특징적인 요소다.


실제로 그가 8,90년대 얼마나 많은 건축설계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건축 잡지를 보면 거의 매호 거르지 않고 등장한 것을 보면 상당히 대중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알 수 있다. 현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지붕 대신, 네 방향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이 지붕들은 각 건물을 독립적인 주체로 만들며, 동시에 주변 골목과 하늘을 향해 열린 인상마저 부여한다. 이 지붕은 단순한 형태의 수사가 아니라, 김기석이 지향하는 ‘집’의 상징적 형상화다. 집은 결국 사람을 덮고, 감싸고, 보호하는 구조이기에, 이 부드러운 정형의 지붕은 건물 전체를 하나의 품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반복적인 지붕선들이 아람광장 단지 전체에서 소리 없이 서로 호응하며 작지만 확고한 건축 언어를 만들어낸다.


또 하나의 핵심은 아치 구조의 반복이다. 이 아치들은 측면의 개구부에서, 출입구의 프레임에서, 벽체의 구조에서 마치 악보의 리듬처럼 반복되며 건축의 흐름을 조절한다. 그러나 이 아치들은 고전건축의 장엄함이나 구조적 과시가 아니라, 작은 서정의 통로처럼 작동한다. 일례로, 건물 측면에 나란히 배치된 세 개의 아치 구조는 무게감을 주는 대신, 진입로의 공간감을 연속적으로 열어주며 사용자에게 시각적 깊이를 선사한다. 아람광장 내 ‘성채’라 불리는 세 번째 건물은 이러한 아치 표현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예로, 삼연 아치가 마치 중세의 성문처럼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정형의 틀 안에서 유희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치는 김기석 건축에서 정형성과 낭만이 교차하는 조형적 전환점이다.


공간 구성 또한 특기할 만하다. 건축 내부는 겉에서 보는 단단한 정형성과 달리, 다층적이고 유기적인 흐름으로 구성된다. 계단이 외부에서 실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중정과 발코니, 다락 같은 요소들이 한 평면 위에 단순히 병렬되는 것이 아니라, 수직·수평으로 얽히고설키는 입체적 구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공간의 감각은 한옥의 ‘마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평면구성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김기석은 현대 재료를 사용하되, 한국적 공간감 — 즉, 안과 밖, 공적과 사적, 밝음과 어두움의 리듬감 — 을 유지한다. 그는 마당과 복도, 틈과 계단을 통해 공간의 정형을 사람의 리듬에 맞추어 변조한다. 이처럼 그의 건축은 일정한 틀을 갖되, 그 안에서 사용자의 경험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게 하는 열린 구조로 되어 있다.

정형성을 더 구체적으로 보면, 김기석은 대칭보다는 균형감을 추구한다. 각 건물의 입면은 비례에 따라 정돈되어 있지만, 대칭 구조는 드물다. 대신, 작은 창이나 입면 돌출부, 아치의 위치는 전체 볼륨 속에서 질서를 구성하며, 시각적 긴장을 완화하고 부드러운 비례감을 이끌어낸다. 이는 르 코르뷔지에가 추구한 기하학적 황금비의 정형성과는 다른 의미의 정형이다. 김기석의 정형은 감각과 인지, 그리고 인간의 체험에 근거한 ‘심리적 비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재료의 사용에서도 정형성은 표현된다. 아람광장의 대부분 건물은 동일한 재료 — 붉은 벽돌 — 을 사용하며, 재료의 변화를 통한 시각적 효과보다는, 같은 재료의 배열과 깊이, 텍스처의 변주를 통해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는 고정된 언어 안에서 다양한 시를 써내는 방식과도 같다. 김기석은 콘크리트와 유리를 조합하기보다, 벽돌이라는 정직한 재료를 손으로 빚듯 다루며 건축을 ‘조적’이 아니라 ‘조형’의 대상으로 끌어올린다.

결국 아람광장은 작은 건물들의 정형적 조화 속에 내면적 깊이를 담아낸 건축적 합창이다. 그것은 질서정연하지만 지루하지 않으며, 반복되지만 개성이 있고, 전통적이지만 진부하지 않다. 김기석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정형이라는 고전적 개념을 현대 도시의 삶과 감각, 인간 중심의 공간 체험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건축은 우리에게 익숙한 ‘정형성’을 다르게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권위나 강제의 언어가 아닌, 생활의 틀로서의 정형, 기억이 쌓일 수 있는 틀로서의 건축이다.

이렇게 조용하고 단정한 정형의 언어가, 오히려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더욱 독립적인 발언으로 들리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아름답다. 결국 김기석의 건축은 외치는 대신 속삭인다. 대칭과 대립, 전면성과 과시가 아닌, 감각과 균형, 여백과 서사의 언어로 공간을 구축하며, 정형이라는 고전적 틀 속에 시대의 감성과 개인의 이야기를 녹여낸다. 아쉬운 점의 그의 이런 건축에 대한 확신보다는 흔들림으로 좌절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도 스스로. 서교동의 마당 연작으로 불리는 가로의 스케일과 재료등에 의한 이른바 "거리 정취"가 생뚱맞은 그가 설계한 "화강석 오브제"로 멈춰버린 것이다. 많이 아쉬운 현장이고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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