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밤 Mar 11. 2024

듣기 싫은 말은 걸러라. 아니, 걸러진다.

오늘따라 왠지 몸이 찌뿌둥합니다. 어젯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 출근길에 나서자마자 졸음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 대신 짧은 낮잠을 청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겨우겨우 오전 일과를 끝내고 점심시간이 되자, 주차장에 세워진 차로 가서 누웠습니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진 터라 얇은 담요를 덮으니 잠자기에 적당한 온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막 달콤한 낮잠에 빠지려는데, 신경을 거스르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소음의 정체는 바로 ‘비행기 소리!’

한 대쯤 지나가겠거니 싶어 눈을 감고 기다려봅니다. 그런데 소리가 줄어들 즈음, 뒤이어 날아오는 비행기 소리가 다시 ‘슈웅’하고 공명음을 냅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비행기 소리가 10여 분간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비행기 소리에 문득 ‘전쟁 난 거 아닌가?’ 싶어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검색까지 해봅니다. 다행히 각종 포털은 별다른 사건 없이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차 안에서 시동을 켜지 않은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비행기 소리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 소음이 생각보다 다양하고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짐을 가득 싣고 방지턱을 넘는 트럭의 소리, 게양대에 걸려있는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심지어 사람의 발걸음 소리까지 소음의 발원지는 다양하다 못해 넘치고 넘칩니다.

순간, ‘그동안 이런 소음 속에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었던 거지?’라는 의문이 듭니다. 근무 시간에는 정신을 집중해 일을 하고, 휴일에는 산책 중 아기자기한 새소리에 기분이 상쾌해지곤 했는데 말이죠.

인간의 뇌는 듣기 싫은 소음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음 소거’를 하고, 듣고 싶은 소리는 더욱 증폭시켜서 들려줍니다. 


평소 비행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의 뇌가 비행기의 소리를 듣기 싫은 소리로 간주해 ‘음 소거’를 해버렸기 때문이죠. 한편,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가득한 콘서트장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 간 의사소통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이는 우리의 뇌가 듣고자 하는 상대의 말소리를 증폭시켜 들려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혹시 그렇다면, 일상 중 내 귀에 들어오는 말은 수많은 소리의 바다에서 거르고 거른 ‘중요한 정보’, 혹은 ‘소중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듣기 싫은 소리 혹은 잊어도 그만이라고 여겼던 말들이 실은 소중한 이야기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내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마음속에 고이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의 경중을 굳이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듣기 싫은 말은 알아서 걸러질 테니 말이죠.

이전 03화 분노에 찬물 끼얹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