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밤 Mar 21. 2024

화분이 깨졌다

'와장창’

사무실 책상 한편에 놓여있던 화분이 깨졌습니다. 수개월 전, 아내가 생일선물로 보내준 이름 모름 관상화가 심겨 있던 화분입니다. 깨진 화분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봅니다. 그런데 어떤 충격의 흔적도 없습니다.

널브러진 파편을 치우고 급하게 다른 화분을 찾아 조심스레 꽃을 옮겨 심습니다. 그런데 그제야 까닭 없이 화분이 깨진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뿌리째 꽃을 꺼내기 위해 화분 안을 살피자, 자랄 대로 자라다 수십 번의 똬리를 튼 뿌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러니 화분이 버티질 못하지.’

빈틈없이 꽉 채워진 화분 속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움직임 없이 고요하게만 보였던 꽃이 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 꽃은 쉼 없이 뿌리를 뻗어가며 내면의 힘을 응축시켜 결국은 단단한 화분을 깨뜨렸습니다.

특별해 보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 큰일을 해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들은 정말 ‘평범한 사람’일까요? 겉보기엔 고요해 보여도 아마도 내면의 수양이 쌓일 대로 쌓인 사람일 겁니다. 단단한 화분을 안으로부터 깨뜨린 식물의 뿌리처럼 말이죠.

삶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겉을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것이 아닌 내면을 가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남들의 평가는 대부분 보여지는 모습에서 나오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내면을 가꾸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책상 한편에 놓여있던 화분 속 관상화가 은은한 향을 풍기며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 안에 응축된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면, 거울 속 자신을 단장하기보다 그 어떤 시련이 와도 굳건히 버텨낼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지난번 화분보다 넉넉한 크기의 화분에 관상화를 옮겨 심었습니다. 꽃에 물을 주고 햇볕을 잘 쐬어준다면 이 화분도 언젠가는 응축된 힘의 압박을 받게 될 테죠.


오늘은 화분에 물을 주며 내 마음에도 큰 한술의 양분을 뿌려줍니다. 그 양분을 받아먹은 마음의 뿌리는 묵묵히 뻗어 나가며 나의 내면을 응축된 힘으로 채워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힘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 모습은 깨어지고, 더 크고 아름다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봅니다.

이전 06화 어쩌면, 당신은 이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