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울이 이는 바다를 항해하기에는 ‘빈 배’가 적합하다
삶에서 가장 명쾌하지 않은 분야를 꼽으라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처세’가 빠지지 않습니다. 둘도 없이 친했던 사람과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는가 하면, 얼굴만 봐도 핏대를 세우기 일쑤던 사람과 절친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리송하기만 한 인간관계를 물처럼 유연하게 관리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장자』 산목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장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는데 아무도 없는 빈 배가 다가와 내 배에 부딪힌다면 비록 속이 좁고 너그럽지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한 사람이라도 그 배 위에 타고 있었다면 곧 소리치며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여 세 번을 소리칠 때는 반드시 욕설이 뒤따를 것이다. 배에 부딪힌 것은 같으나 앞에서는 화내지 않다가 지금 화내는 것은 앞의 배는 비었고 지금의 배는 찼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땅히 자기를 비우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장자는 남들의 시기와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빈 배’와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속 편한 마흔을 위해서는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적이 많은 사람을 살펴보면 단순히 재주가 뛰어나거나 부유해서 남들의 시기를 사는 게 아닙니다. 그 자랑거리를 틈만 나면 제 입으로 떠벌이기를 좋아해서 어딜 가나 미운털이 박힙니다.
때론 똑똑한 자식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때론 예쁘고 가정을 살뜰히 챙기는 아내를 자랑하고 싶습니다.
때론 연일 상한가를 치며 지갑을 불려주는 주식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때론 지난 연휴에 다녀온 멋진 휴양지의 풍경 사진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런 유혹들이 배를 비우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인생의 방향키를 이제 막 견고하게 틀어잡은 마흔은 더더욱 자랑거리가 넘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마흔은 삶 곳곳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가는 시기이기에, 노력에 따른 결실을 하나둘 얻을 때입니다. 그 열매의 크기가 크든 작든, 자기 손으로 일구어낸 결과물은 보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기에, 자랑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난 자식, 돈, 예쁜 아내, 좋은 집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랑을 떠벌이는 사람의 배는 욕망만 그득한 뱃사공을 태운 빈약하기 그지없는 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 그저 남이 인정하는 공적을 쌓아서 만든 배는 견고한 재질의 튼튼한 ‘빈 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견고한 빈 배’에 누군가가 다가와 부딪히더라도 되려 상대는 고래고래 소리치기보다 고급스러운 배의 자태를 넋 놓고 구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론 내 마음의 배를 비우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부딪히곤 합니다. 상대의 배가 비어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마주한 배에도 험상궂은 뱃사공이 타고 있다면 상황은 일촉즉발입니다. 어느 한쪽이 참지 않는 순간 서로의 배를 넘나들며 멱살잡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의 배를 비우는 것은 자신이 충돌 사고의 가해자가 되든 피해자가 되든 원만한 합의를 가능케 하는 만능 보험입니다.
어쩌면 삶에서 실패를 경험했을 때도 마음을 비운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럭키 장주'입니다. 적어도 이룬 공적이 없으니 마음의 배는 비워졌을 테고, 누군가의 배와 부딪히더라도 상대는 화를 내며 달려들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결코 서글픈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들인 노력에 비해 큰 결실이 따라올 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인정욕구가 발현되어 남에게 자랑을 늘어놓는 순간, 당신과 부딪힌 누군가는 어김없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해댈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론 공연히 자랑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는데도 악의적인 공격을 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배에는 평범한 뱃사공이 아닌,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 한 무리가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 평소 실력을 쌓고 그에 걸맞은 겸손함으로 ‘견고한 빈 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의 배를 비우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마흔은 평화롭습니다.
거기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은 마흔은 즐겁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빈 배가 견고해질수록 인생이라는 바다의 너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