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도 언젠가는 홀로서야 한다구요

by 뇌팔이

이제는 너무 흔해진 키오스크 앞에서 아직도 쩔쩔매고 계신 어르신을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머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같기도 하고 어딘가 익숙한 부모님 모습이 떠올라서이다. 아직 정정해도 너무나 정정하신 부모님은 여전히 왕복 여섯시간을 운전해서 통영까지 낚시여행을 다니고 동네 수영장 자유수영라인에서 젊은이들 못지않게 수영을 즐기는데 묘하게 신문물에는 한없이 약하다. 평소에는 아이패드로 게임도 하면서, 엄마가 새 스마트폰을 개통해도 예전에 쓰던 전화기가 켜진다고 아무리 얘길해도 못 알아듣고, 카카오톡에서 복사+붙여넣기를 백번 넘게 알려줘도 그냥 다시 치는 게 빠르고, 인터넷 주소창과 검색창의 차이는 궁금하지도 않다. 너무 기묘한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려면 가상세계 어딘가에는 적을 둬야하므로 이메일 주소가 몇개나 있다는 사실. 물론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매번 모르겠고 어디 적어뒀는데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도통 안 나는거다. 다행히 아직 폰뱅킹이 가능해서 인터넷뱅킹을 이해 못 해도 공과금 내는데에는 지장이 없단다.


속터지는 건 내 몫이다.

정작 본인들은 여행갈 때 호텔이며 기차표도 딸들이 끊어주고 날 더운날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킬 때도 딸래미한테 메뉴만 얘기하면 되니까. 게다가 정보력은 기가막히게 좋아서 인터넷에서 요즘 뭘 싸게 판다며 어느 쇼핑몰에서 주문할지도 콕 찍어 알려준다. 테무가 한창 유행할 때도 나보다 엄마가 먼저 알았다. 문제는 세상은 점점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는데, 과거도 미래도 아닌 곳에 갇혀버린 노인들은 여전히 젊다는 사실이다. 칠순 순이 넘어도 상당히 활발한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당연히 여가생활에 물리적 제약이 없는데도 일정부분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는 현대사회의 편의를 모두 누리기는 어렵다. 그런가하면 자식에게 폐끼치기 싫어하시는 시부모님은 여전히 재래시장에 직접 가서 손수 식재료를 장만하시고 전화로 식당을 예약하신다. 물론 지방에 계시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 역시 노인인 경우가 많고 여전히 예전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데 무리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식입장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처리하실 수 있는 일들을 고생스럽게 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니 이래도 저래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나서자니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고 그렇다고 손 놓고 지켜보자니 답답하기 짝이 없으니. 오랜 시간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어제까지 송금하려면 통장, 도장들고 은행가서 송금용지 쓰던 양반이 어느 날 큰 맘먹고 폰뱅킹에 도전해서 이체성공하고 송금 확인하기까지, 그리고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잘 알지도 못할테지. 머지 않은 과거에는 현금이체하려면 도장집에서 도장파고, 은행가서 통장개설해서 신분확인 받고 보안카드 받아서 폰뱅킹 이체할 때마다 보안카드에서 보안 번호를 찾아서 누르고 그랬단다. 입력하신 금액이 맞으면 1번, 틀리면 2번,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그 험한 세월을 보내면서 차근히 쌓아온 삶의 노하우들이 너무 빠르게 허물어지고 새롭고도 간편(?)한 방식들로 물갈이 되는 게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예전엔 서울에서 부산 가물치 시장까지 가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을 도로 번호를 줄줄 외면서 알려주던 아빠가 티맵한테 무시당하던 순간, 아빠가 알던 세상이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린 게 아닐까. 이제 겨우 네비게이션을 이해했는데 예전처럼 업그레이드가 필요없다고. 이제 스마트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하라고. 설명의 설명이 연쇄적으로 필요한 사건이라 차바꾸면 그냥 우리집에 들렀다 가는게 빠르다. 가끔 블루투스 안 잡혀서 연결이 잘 안 되면 전화하시라고.


언젠가 나에게 닥칠 일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절대 우리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는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노후 준비는 스스로 하는 의젓한 노인이 되어야지. 그런데 점점 또다른 걱정들이 스물스물 자라난다. 자고나면 달라져있는 세상에 나는 매일 조금씩 적응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걸까. 가끔 초등학생인 아이가 하는 말을 못 알아 듣는다. 요즘은 학교에서 AI솔루션을 활용한 수업을 한다는데 몇번이나 설명을 해줘도 도대체 어떻게 수업에 이용한다는 건지 도통 알아듣기가 어렵다. 코딩수업은 또 어떻고. 아이들이 곧잘 따라부르는 요즘 노래도 일단 자막없이는 가사도 못 알아듣는다. 아, 자막이 있어도 잘 모르겠다.


되짚어보면 몇년째 어제처럼 살고 있다.

내가 아는 방식으로 익숙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산다. 어릴적 배운대로 아이를 가르치고, 익숙한 고전을 즐겨 읽으면서. 내가 아는 천문한 지식은 명왕성 퇴출이 마지막 업데이트이고 챗GPT 이후의 AI플랫폼들은 너무 한꺼번에 쏟아져서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식은 배당주가 좋다더니 또 세금정책이 바뀌어서 모를 일이란다. 그 와중에 로켓와우와 로켓프레시가 뭐가 다르냐고 묻는 엄마가 참 한심스러우면서도 한편 존경스럽다. 대충 넘어가고 포기할만도 한데 어떻게든 매일 한가지씩은 알아가고 있는 셈이니까. 사실 좁힐 수 없어진 격차는 이렇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나도 쿠팡에서 판매중인 상품중 로켓와우와 로켓프레시의 차이를 모른다. 아주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것만 모를까. 지금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 중 내 생활에 당장 영향을 끼치지 않은 상당히 많은 것들을 잘 모르고 지낸다. 그리고 크게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날 쾅. 하고 커다란 장벽이 되어 내 길을 가로막을 때 순간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모르는지 어디까지 아는지를 가늠할 수 없으니 속수무책 바라만 볼 수 밖에.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 전화, 아빠 전화 번갈아 받다 보면 이제 벨소리만 울려도 '또 뭐!' 부터 튀어나온다. 모르는 번호에서 문자가 왔는데 이걸 지워야 되느냐, 지우려면 일단 메시지를 열어야 되는데 열어도 되느냐, 나중에 모르고 실수로 열까봐 겁이 난다는 노인을 어쩌면 좋으냐 말이다. 이젠 '모르는 것들'이 '무서운 것들'이 되어가고 있다. 시니어를 위한 스마트폰 강의니, 코레일 티켓 현장 구매니 하는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배려들이 곳곳에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게 먼 훗날 노인이 된 나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방식대로 사는 것 뿐인데 모두가 나를 도태된 늙은이로 볼까 두렵다. 몇 년전 글을 쓰는 것이 유일한 낙인 아빠에게 노트북을 선물했다. 이제 취미삼아 타자연습도 하시고 글도 폼나게 쓰시라며. 노트북 전원을 켜고 워드파일을 열어서 저장하기를 설명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이걸 스마트 폰에 어떻게 옮기냐고 묻는데 하늘이 깜깜해져서 다음을 기약하고 덮었다.


언젠가 부모도 독립이 필요하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내 아이가 커서 독립하게 되면 나도 아이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한번씩 든다. 한없이 애정을 품고 아이만 바라보면서 나도 아이에게 조건없는 애정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어느날 아이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미련없이 떠나보낼 수 있을까 자문하는 것이다. 내가 아이를 키웠다고 해서 아이에게 보답을 바랄 수는 없다. 육아는 그 자체로서 계산이 끝난 거래와 같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부모로서 자식에게 쏟는 애정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아이로부터 받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아이가 다 자라서 독립하게 될 때 부모는 거래가 끝났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이가 장성했을 때에도 자식이 어떤 부채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온전하고 건강한 개인일 의무가 있다. 나는 어떤 관계든 서로 의존적이 아니라 대등할 때 건전한 우정과 애정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더욱. 무섭게 변해가는 세상을 보면서 어설프게나마 이 속도에 적응해가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 본다. 아니면, 혹시 따라가지 못 하게 되더라도 내가 노인이 되어 새로운 세상이 낯설어졌을 때 나는 아이의 어딘가 허전한 곳 하나쯤은 채워줄 수 있을까 하고.


거창하지 않더라도 노후를 준비해야한다.

경제적 준비뿐만 아니라 지적, 정서적으로도 준비되어 있어야 온전하다. 평생학습이 지금처럼 현실적으로 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매일 15분만 AI에 투자하면 한달이면 AI전문가가 된다고 광고하는 계정을 보고 솔깃했다. 몇몇 플랫폼을 다뤄봤었는데 그 광고가 아주 터무니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용이다. 일전에 아이가 유튜브 채널을 열어보고 싶다고 해서 채널 개설과 동영상 업로드를 알려주는데, 아이가 완전히 이해하고 실습적용까지 하는데 30분도 채 안 걸렸다. 그밖에도 내가 꽤 어렵게 습득했던 기술들을 아이는 아주 쉽게 채득했다. 물론 학습능력이 가장 좋을 시절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빨리 배운다. 반면 나는 새로운 기술들을 배우는데 오래 걸리기도 하고 일단 도전 자체에 상당히 인색하다. 왜냐하면, 이미 익숙하고 효율적인 솔루션들을 많이 알고있으니까. 이래서 예전에 유명한 판소리선생님들이 어디서 어줍짢게 배웠다고 하면 제자로 받아주지 않았었나보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이미 자질구레하게 구닥다리 기술들을 다양하게도 알고 있는데 다시 백지로 돌아가 문제를 다시 보고 새로운 방식들을 적용해보고 실패해보아야 한다. 매월 월급을 조금씩 떼어서 연금적금을 들고 청약을 붓듯이.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4화친절한 톰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