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me, without me?
단연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는 톰크루즈가 세상을 멸망시킬 미모를 뽐내며 with me, without me?를 묻는 "나잇앤데이"이다. 겁에 질린 카메론디아즈에게 그와 함께 가면 살아남을 확률이 턱끝만큼이고, 그가 없이는 가슴 언저리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선의가 가득하다. 아마 누구라도 그 얼굴이 코앞에 있으면 살아남을 확률이 그 반대라고 해도 맨발로 따라나설 것이다. 그리고 물론, 현실이건 영화건 그가 없는 삶이 훨씬 안전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봄이라지만 연일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때문에 영 봄기분이 살아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센치해지기까지 하는 것 같다. 유럽인들이 왜 무표정인지 알 것같기도 하고. 오늘도 그런 기분을 어찌저찌 달래보려고 짬시간에 영화관에 들렀다. 아니, 작정하고 미션임파서블을 보려고 아침 일찍 서둘러 나섰다. 평이 아주 좋기도 하고 아이들 픽업하고 기다리고 집안 일하느라 조각보처럼 너덜너덜한 내 스케줄에 딱 들어맞기도 해서 운명이라고 믿으며 귀찮음을 떨쳐냈다.
예상대로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중력을 무시한 화면 편집도 신선했고 스토리도 짜임새 있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또 죽을똥 살똥 애간장을 태우는 톰아저씨는 여전했고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 더욱 돈독해진 우정도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톰아저씨가 그렇게 위대해보일 수가 없더라. 장장 35년을 성실하게 바쳐 완성한 단 하나의 역작을 보는 것 같아서 새삼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는듯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모두가 진심으로 톰아저씨의 자연사를 비는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다. 영화 속의 그는 철모르는 미소년 시절부터 첩보요원으로 살아오면서 개인적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연많은 보통 사람이다. 직업탓에 삶과 죽음을 오가며 인생의 스펙트럼이 넓다지만 그저 화려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미안할만큼 평탄하지 않은 인생인지라 보통사람이라기에 어색하다고?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인간적인지 모르겠다. 살면서 편안하게 단잠자는 날이 없는, 고단한 세월을 견뎌온 무던히도 복없는 사람. 절대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사람. 삶의 중요한 순간에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하는 사람. 헐리웃 영화 주인공치고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가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대의를 선택할 때 나는 톰아저씨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계획을 짜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도 매우 절실하게 인간적이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자기 인생은 영화로 만들어도 될마큼 드라마틱했노라며 사실인지 소설인지 모를 일대기를 들려준다. 더러는 과장이고 더러는 사실인데 절반만 믿어도 충분히 영화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장르가 조금씩 다르지만 플롯은 비슷하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어떤 일련의 선택들을 했고 결국 지금의 내가 되었노라는 고백이다. 모든 선택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며 때로는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야했고 때로는 더 큰 것을 얻었고 가끔 작은 것에 만족하기도 했지만 그것 그대로가 내 삶이었다고.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돌이켜 보면 한없이 아쉽고 아련한 날 중 하루겠지만 지금을 사는 나는 고단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또래보다 뒤쳐지는 것 같고 그들의 인생에서는 조연인 내가 뭘 대단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어찌 해보려고 아등바등 하다보면 한달, 일년이 쏜살같이 날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 앞에 앉아서 쪼그라든 얼굴을 마주하고 화들짝 놀란다. 잘 하고 있는걸까. 요즘은 은하루에도 수십번씩 아이를 하나만 낳았어야 한다고 후회한다. 능력도 안 되는데 둘이나 끌어 안고 어쩔 줄 모르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해서 서 아니 내 인생도 옳게 간수할 줄 모르는 미생이 어쩌자고 무모하게 저질렀을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둘이 아니라 하나도.. 책임있는 선택이었다고 확언하기 어렵다.
영화관을 나서니 기적처럼 첫째 하교시간이다. 점심은 포기해야할 것 같다. 헛개비처럼 차를 몰아 주차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왜 없어?"
아이가 벌써 집에 도착한 모양이다. 벌써 열한살인데 아직도 아기같아서 엄마가 없으면 빨간 눈이 되는 여린아이.
"미안, 주차장이야. 금방 올라갈께."
아이는 집에 와서 부엌, 안방, 화장실, 베란다 차례로 기웃거리며 엄마를 찾았을 거다. 소리내어 부르는 법도 없어서 여기 저기 빈 공간을 확인할 때마다 걸음이 빨라지고 불안감이 차올랐을지 모르겠다. 순하디 순한 내새끼.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 새끼가 그래도 방긋 웃으며 서있다. 벌써 내 턱밑까지 자란 아이가 신발도 벗기 전에 와서 안긴다.
그래. with you. 내가 너 없이 뭘 할 수 있겠어.
천사가 내 앞에 서서 묻는데 어떻게 감히 without you 겠어.
세상이 두쪽이 나도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