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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심찬가

by 뇌팔이


결혼 10년차.
한창 가슴이 두근거리고 볼때마다 설레고 애틋할 때다.

책상의자, 침대헤드, 화장대 의자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벗은 옷은 푹 퍼져있고 빨래통 앞에 골인에 실패한 속옷, 양말까지는 이해하는데 샤워하고 흠뻑 젖은 수건은 왜 빨래통 바로 옆에 널부러져있는지 모르겠는 오전 열시. 한동안 일부러 빨래통을 굳이 화장실 문앞에 떡하니 두고 통행장애를 유발해보지만 헛수고다. 거대한 빨래 바구니를 폴짝 넘어서 거울앞에 척척한 수건이 걸레처럼 구기적거리고 있다. 괜히 빨래통 들고 세탁기와 안방을 왕복운동하느니 그냥 없애는 게 맞나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잔소리 폭발 중년 아줌마가 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중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가슴이 쿵쾅거린다


하루종일 5성호텔 뺨치는 24시간 풀서비스에 지쳐서 화를 내면 아줌마 히스테리고 가사일을 분담하자고 꼬맹이를 불러세울 때 내는 내 목소리는 꼼짝없이 내가 어릴 때 듣던 엄마 잔소리 같다. 진저리나게 싫었던. 그래서 매우 노력중이다. 아직도 서방이 구여워했던 스물몇살 처녀 흉내라도 내려고. 아니 그 중 몇 가지라도 지켜보려고? 아니, 적어도 내 머릿속에 있는 우리엄마 모습이 안되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작게 말하고 적게 말하려고.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편안한 관계가 편리한 관계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상반기 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서방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근래 일이 많아서 혼자 쩔쩔매며 야근에 출장에 정신없이 몸을 쓰는데다 안 그래도 답답하고 요령없는 사람이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코감기 끝나면 목감기, 목감기 끝나면 몸살감기, 좀 살만하면 다시 코감기. 짬이 나는 주말에는 하루종일 몰아자느라 좀비가 따로없다.


중년의 삶은 모두 고단하다. 긴 연휴에도, 서방이 쉬는 주말에도 애들 밥챙기는 것은 엄마 몫이다. 엄마가 집에 있는데 아빠가 짜파게티를 끓여준다는 전설같은 광고를 우리 애들이 몰라서 다행이다. 만두도 내가 안 구워주면 전자렌지 돌려 먹는 사람이라 사실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여담이지만 도대체 전자레인지에서 말려나온 만두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모름지기 교자는 기름에 촉촉하게 구워서 김빠지기 전에 호호불어 초간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인데. 여튼 마치 태초에 정해놓은 것처럼 욕실앞 빨래더미, 건조기에서 길려나온 새 빨래더미, 미어터지는 싱크대, 버튼만 누르면 돌아가는 세탁기 등등 내 몫의 프로메테우스를 끝나면 파절이가 되어서 퇴근하는 남편과 소리도 액션도 없는 하이파이브라도 해야할 것 같은 하루가 끝난다. 각자 나는 아이와 한침대에 누워서, 서방은 아이방 작은 침대에 쪼그리고 누워서 현대인의 불멍타임을 가진다.



“Are we an effective team?”
영화 오블리비언의 클론부부가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며 묻는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작은 우주가 무탈하게 굴러가는 것에 만족한다. 매일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미래'라고 부르면서 끊임없이 애정을 쏟고 노력을 덧대면서 막연히 서로를 의지할 매개로 삼는다. 관계를 돈독히 할 구실로. 관계에는 애정만큼이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상당히 많은 연구에서 인간은 자기가 헌신한 상대에 더 많은 애정을 느끼고 자기의 희생이 더 요구되는 관계에 더 집착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는지 모르겠다. 서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한히 신뢰를 쌓고 애정을 확인하려고.


퇴근한 서방과 마주 않은 식탁에서 나는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쏟아내고 그는 불멍하듯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서로 한없이 편한 사이이므로 안부를 묻거나 눈빛을 교환하는 인사치레는 안 해도 된다는 듯이. 그저 의식없이 빛나는 화면을 바라볼 뿐 대화내용은 전부 전달되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가끔 의심스러워 되물으면 대부분 답을 하니까. 나는 식사가 끝날 때쯤 오늘은 음식물쓰레기를 버려달라고 말한다. 야근이 부쩍 많은 요즘 피곤하지는 않은지 못된 고객은 없는지 묻는 상냥함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듯이. 서로에 대한 짠한 마음과는 별게로 우리의 우주는 무탈하게 굴러가야 하니까.


요며칠 피곤했는지 대상포진으로 수포가 올라와서 낑낑거리며 소독하고 드레싱밴드를 붙이다가 혈압이 귀끝까지 차올랐다. 수포들이 돋아난 자리가 아주 번거로운 위치라 거울을 보면서 왼손 오른손 번갈아 몇번을 시도하다가 도무지 제자리에 갖다붙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서방을 불렀다. 혀끝을 차면서 병원에 빨리 가봐야겠다, 예방접종을 해야겠다, 크게 번지지 않아 다행이다 주절거리는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젊은 연인처럼 호들갑 떨며 과장하지 않아도 짠심은 서로 통하는가보다. 직장에서 사수로 만난 탓인지 서방은 동갑인데도 늘 오빠같은 자상함이 있다. 십년째 내가 해준 밥 먹으면서 아직도 내가 하는 요리마다 이젠 별 걸 다 할줄 안다고 치켜세우고 앞치마메고 돌아다니는 게 우습다며 영감처럼 웃는다.


십년쯤 전에 가수 박원이 노래했다.
사랑을 노력한다는게 말이 되니

사랑은 무한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 부부는 상대방에게 무던히 실망하고, 포기하고, 위로받으면서 마치 정원을 가꾸듯이 고요한 시간들에 헌신한다. 무심하게 건네는 일상적인 말에서 짠심을 읽어내고 왠지 내 어깨도 축 쳐지는 날 먼저 보듬어주는 여유를 짜내면서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최수종 아저씨처럼 예쁜 말을 숨쉬듯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헌신하면서 우주를 건설하는 중이다. 상대방이 언뜻 언뜻 보이는 서운한 모습은 사실은 그가 보고 있는 내 모습이다. 섭섭한 마음이 들 때, 내 감정을 그 길에 들이지 않고 반대 편에 놓으면 또 한편으로는 쭈뼛쭈뼛 그렇게 미안하다. 그 사람의 무던함이 너무 편안해서, 내가 편한대로 이용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염치가 고개를 드는 것이다.


앞으로도 인생 전체를 공유하는 반쪽을 날계란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은 분명하다. 내일 지구가 반쪽이 나도 오늘 누군가가 분리수거는 해야하니까. 그보다는 결혼 10년차, 가장 힘들다는 중년을 지내다 보니 나도 이렇게 힘든데 저 사람은 오죽할까 싶은 짠심이 짙어지고 어떻게 찾은 편한 사람인데, 불편한 사람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절대 편리한 사이가 되지 않을 거란 선언이다.

사랑을 노력 안한다는 게 말이 되니.


https://youtu.be/0cwZcqTh8IQ?si=KMgSR3J36eOhUn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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