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오후에 문을 열고 밤늦게까지 영업을 한다.
우리는 아침에 목욕을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일본 사람들은 대개가 일과 후에 목욕을 한다. 그래서 한국의 목욕탕은 새벽 5~6시에 문을 여는 곳이 많다. 특히 명절이 되면 목욕을 하고 제사를 지내려는 이들을 위해 새벽 4시에 문을 여는 곳이 아직도 있다. 설날이나 추석이란 단어를 들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과 거진 물 반, 사람 반인 목욕탕을 간 기억을 떠올리는 이도 많을 것이다.
일본의 목욕탕들은 대개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문을 열고 자정까지 영업을 한다. 새벽 2시까지 하는 곳도 있다. 술을 마신 뒤 이런 곳을 찾아 꼭 목욕을 하고 집으로 귀가한다는 주당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아사부로朝風呂, 즉 아침 목욕이 가능한 목욕탕도 있는데 대부분 아사부로라고 입구에 써 놓는다. 아침 목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목욕탕 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한다. 아사부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일요일만 아사부로 영업을 하는 교토의 후나오카온센처럼 주말 등 특정일에만 아사부로를 하는 목욕탕도 요즘은 늘고 있다.
원래 일본도 에도시대에는 아침부터 목욕탕의 문을 열었다. 업소들이 잘 지키지는 않았지만 에도시대에는 목욕탕의 영업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정해져 있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는 대개 오전 7시에 문을 열었고 5시 30분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곳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연료비 급등으로 인해 목욕탕 조합에서 아사부로의 폐지를 합의한다든지, 전쟁으로 인해 물자절약 차원에서 정부가 아사부로를 금지한다든지 해서 종종 폐지되다가 다시 부활하는 과정을 몇 번 거쳤다.
도쿄의 경우 1919년 10월 연료비가 급등하자 아침부터 불을 때워 영업을 하는 것은 채산성이 맞지 않다고 목욕탕 조합이 합의하여 아사부로를 없앴다. 중일 전쟁이 발발한 1937년에도 도쿄 일부 지역의 목욕탕들이 아사부로 폐지를 합의하였다. 홋카이도 목욕탕 조합의 자료를 보면 1919년 1월 1일부터 목욕탕 조합원들이 사용하는 석탄의 절약을 위해 아사부로를 폐지하고 오후 2시부터 영업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1939년 8월 홋카이도청 보안과는 연료절감을 위해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영업시간을 결정하였다.
이렇듯 자의든 타의든 목욕탕 업주들이 아침 영업을 하지 않게 된 경우가 생기고, 결국 종전 후에는 오후에 문을 여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일본 여행 시 목욕탕을 경험하고 싶다면 오후에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꼭 가고 싶은 곳이라면 목욕탕 관련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영업시간을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동네 목욕탕이 아닌 호텔 사우나는 오전부터 영업을 한다.
반다이番台라고 하는 일본 목욕탕 특유의 요금 받는 곳이 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온천시설은 많이 이용했지만, 동네 목욕탕은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건 일본 목욕탕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인데, 영화 “썸머 타임머신 블루스”를 본 후에 생겼다. 이 영화는 2005년에 제작된 것으로 우에노 쥬리上野樹里와 에이타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욕탕이 중요한 배경으로도 나오는데 그 당시의 나에게는 믿기 힘든 장면이 제법 나왔다. 에이타 등 어느 대학의 SF연구회 선후배 5명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목욕용품을 담은 바가지(바구니가 아니다)를 들고 동네 목욕탕으로 간다. 부산 출신인 나로서는 남자가 목욕바구니를 챙겨가는 것은 모양새 빠진다고 빈손으로 가거나 파우치에 넣어 가는데 목욕 바가지를 들고 다니다니! 심지어 한 친구는 비달 사순 샴푸(영화에서는 중요한 소품이다)를 담은 목욕 바가지를 들고 간다. 그리고 놀라운 장면이 나오는데, 반다이에 앉아 있는 목욕탕 여주인장이 탈의실에서 옷을 벗으려는 이 청년들을 대놓고 쳐다보는 것이다. 심지어 욕실 안에서 소란을 피우자, 남자 욕실의 문을 열며 “소란을 피우면 앞으로 목욕탕에 못 오게 하겠다”며 소리까지 지른다. 벌거벗은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남탕에다가...
반다이는 목욕탕 출입구 쪽에 남자와 여자 탈의실을 가르는 벽의 시작점에 있다. 반다이에 앉으면 남녀 탈의실 양쪽을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반다이에 앉아서 양쪽 탈의실을 보는 주인장의 모습을 여자 대 남자 배구시합의 심판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분도 있다. 도쿄 같은 곳은 반다이가 계단을 타고 올라갈 정도로 높은 위치에 만들어져 있어, 남녀 탈의실을 나누는 벽을 배구의 네트로 본다면 이 표현처럼 심판석으로 볼 수도 있다. (미야자와 리에와 오다기리 죠가 주연한 행복목욕탕에 나오는 반다이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이곳에서 주인장은 목욕 요금을 받고, 병우유, 라무네 등 음료수도 판다. 그리고 남녀 탈의실 쪽을 바라보며 불편한 게 있는지, 미끄러져 다치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고는 한다.
대체로 여자 주인장은 반다이에 앉아 남녀 탈의실 양쪽을 보며 응대를 하지만 남자 주인장이 반다이를 지킬 경우 남자 탈의실 쪽에 의자를 마련하고 거기에 앉아 여자 손님들이 건네주는 목욕 요금을 받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여자 쪽에는 대개 가림막이 있다고 하는데, 남자 쪽은 무방비다. 그래서 여자 주인장이 반다이에 앉아계시면 탈의실에서 옷을 벗을 때마다, 욕실에서 나올 때마다 흘깃흘깃 그쪽을 쳐다보게 된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옷을 입기 힘들어하면 반다이에서 내려와 도와주기도 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얼굴을 화끈거리며 등을 돌리곤 했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것이 익숙한지 팬티만 입은 상태로 여자 주인장과 신변잡기 이야기하는 아저씨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목욕탕은 대부분 가족경영이어서 목욕탕과 주거공간이 같은 건물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주거공간으로 가는 입구를 대개 남자 탈의실에 두는데, 가끔 주인아주머니가 남자 탈의실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제 나도 익숙해져 식사시간이 되었나 하고 시계를 쳐다보면서 시간을 확인하곤 한다.
젊은 여성들이 동네 목욕탕 가는데 있어서 장해물 같은 존재가 반다이다. 그래서 요즘은 반다이를 없애고 주인이 탈의실과 확실히 구분되는 별도의 공간에 앉아서 목욕탕 입구 방향으로 앉아 있는 프런트식으로 바꾸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비누 등 어매니티가 거의 없다.
한국의 동네 목욕탕에는 샤워부스마다 저렴하면서도 물에 잘 녹지 않는 알뜨랑 같은 비누를 비치해 놓는 곳이 대부분이다. 좀 좋은 곳은 샴푸까지 비치해 놓아둔다. 탈의실에는 목욕탕용 대용량 스킨이나 로션이 구비되어 있다. 그래서 목욕탕에서 때를 밀지 않는 나 같은 경우는 빈 손으로 가도 별 불편함을 못 느낀다.
일본의 목욕탕에는 샴푸는커녕 비누도 없다. 스킨이나 로션이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비누나 샴푸는 200~300원 사이의 가격에 판매를 한다. 빈손셋트手ぶらセット라고 해서 비누, 샴푸, 타월 등을 같이 파는 곳도 많다. 최근에는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료로 비누, 샴푸 등을 제공하고 그 질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목욕탕이 늘어나고 있는데, 대부분 젊은 사람이 경영하기 시작한 목욕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