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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토스머프 Oct 02. 2021

일본 목욕탕의 특징 3

일본 사람들은 때를 밀지 않는다


 한국 목욕의 핵심은 ‘때'다. 따뜻한 탕에 들어가는 것도 때를 불리기 위한 사전작업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목욕탕과 관련된 모습을 떠 올리면 대부분 때 미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중 하나가 때를 둘러싸고 어린 아들과 아빠가 실랑이하는 모습이다. 때 밀기 싫다고 도망가는 아이, 너무 세게 밀어 아프다고 우는 아이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때가 수월하게 잘 밀린다는 이유로 뜨거운 열탕에 아이들을 억지로 밀어 넣는 어른들도 본 적이 있는데, 요즘에는 때를 잘 안 미는지 이런 부자간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이제는 목욕탕의 정겨웠던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등을 밀어달라며 모르는 사람에게 때밀이 수건을 건네는 모습도, 내 고향 부산을 비롯한 경남권에만 주로 있다던 자동때밀이기계에서 등을 밀던 모습도 과거의 목욕탕 풍경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요즘은 전문 직업인에게 때를 맡기는 사람이 늘었다. 목욕탕 선택 기준으로 세신사분들을 꼽는 사람도 자주 보게 된다. 욕실의 구석에 자리 잡은 세신 침대는 한국의 목욕탕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いい湯だな~~”, 일본의 목욕탕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물 참 조오타~~” 정도일 듯하다. 사람마다 좋은 물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일본 사람들은 목욕탕의 물을 중요시한다. 한국 목욕의 핵심이 “때”라면, 일본 목욕의 핵심은 ‘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러 간다는 인식이 강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 하루의 피로를 풀고, 몸을 충분히 데워 편안하게 잠들기 위해 목욕탕을 찾는다. 


 일본 목욕탕의 간판을 보면 목욕탕 이름 밑에 약탕, 제트탕, 초음파탕, 라돈탕, 전기탕 등 탕의 종류를 적어 둔 곳이 많다. 그리고 기름이나 가스가 아닌 목재를 이용해 물을 끓이는 곳이 아직 제법 남아있는데, 이들 목욕탕은 목재 사용이라는 단어를 큼지막하게 입구에 적어둔다. 목재를 태워 데운 물이 좋다고 찾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탕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유의 발명품인 때밀이 수건을 볼 수 없다. 만약 일본의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있다면 주위의 뜨거운 시선을 받거나, 누시ぬし라고 불리는 목욕탕 단골 중 규율반장이 주의를 줄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국의 '때 미는 문화'가 전파돼 우리의 찜질방과 같은 일본의 슈퍼센토スーパ銭湯에서는 한국식 때밀이韓国式あかすり라는 공간을 마련한 곳도 제법 생겼다. 

 교토에서는 슈퍼센토인 텐잔노유天山の湯, 미부온센 하나노유壬生温泉はなの湯 등에서 한국식 때밀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남녀 욕실을 구분하는 벽의 위가 뚫려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 목욕탕이 대부분 층을 달리하고 있다. 여탕이 2층이면 남탕은 3층 이런 식이다. 일본에서는 대부분 목욕 전용으로 지어진 건물 1층에 남탕, 여탕이 같이 있다. 욕실에 들어가면 천장이 매우 높은 것에 놀란다. 3층 높이 정도의 천장이 성당 건물처럼 뾰족하게 생겼는데, 그 높은 곳에  죠-키누키蒸気抜き라고 하는 환기구 같은 것이 있다. 탕 속에서 편안히 누워 천장을 보면서 증기가 실내에 머물지 않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쉽게 그리고 물방울 맺히더라도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고안된 게 아닐까 하고 추축 하곤 했다. 


 이런 이유로 남탕, 여탕을 구분하는 벽과 천장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가끔 여탕 쪽에서 “아빠 이제 나가요~, 여보 나갑시다”라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리고 페인트그림 또는 타일그림이 있는 목욕탕에서는 이 열린 공간을 통해 여탕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도 볼 수 있다.  


 이런 위가 트인 구조로 인해 제일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느긋하게 목욕을 즐긴 곳이 카고시마의 목욕탕인 나메카와온센이었다. 남탕과 여탕을 가르는 벽 위에 스피커가 놓여 있고 거기서 일본 엔카가 흘러나왔다. 온탕의 내 옆에서 아저씨가 그 노래에 맞춰 흥얼거렸는데, 조금 있다가 건너편 여탕에서도 어떤 여자분이 무의식적으로 그랬는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발가벗은 남녀가 탕 속에 몸을 담근 채 벽을 사이에 두고 노랫가락에 맞추어 흥얼거리는 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조금 있으니 오히려 편안한 기분도 들었다. 그 노래를 알았다면 나도 멋지게 콧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 분위기에 취해.



일본의 목욕탕은 훌륭한 광고매체다

     

 텔레비전, 라디오가 없던 20세기 초에는 변변한 광고수단이 없었다. 이때 목욕탕 욕실의 한쪽 벽면에 그려진 페인트 그림을 광고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목욕탕은 훌륭한 광고매체가 되었다. 페인트 그림 구석에 회사, 가게의 이름을 넣는 곳들이 생겨났고 홍보수단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본격적으로 광고대행업체가 나서서 아예 페인트 그림 아래에 광고판을 만들어 광고주를 모으고, 광고수입으로 페인트 그림 비용을 대어 주었다. 목욕탕 주인장으로서는 페인트 그림 유지보수 비용이 들지 않아 좋았고, 사업자들은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광고수단을 확보할 수 있어 좋았고, 광고대행업체는 새로운 광고매체를 확보할 수 있어 좋았다. 이런 이유로 페인트 그림을 그리는 도쿄의 목욕탕이 늘어났고, 이제는 도쿄 목욕탕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되었다.  


 종전 후에는 대기업들이 목욕탕을 광고매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목욕탕에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면서 회사 이름이나 상품 이름을 넣어서 무료로 목욕탕에 배포하였다. 목욕탕 입구에 거는 포렴이나 목욕탕 안내간판을 보면 화장품 회사, 음료수 회사, 제약회사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익숙한 노란색의 목욕탕 바가지는 케로린ケロリン이라는 진통제를 만든 회사가 1963년 만든 것인데, 빅 히트를 친 광고 상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후 다른 회사도 신상품 발매 시 바닥에 상품명을 새겨놓은 목욕탕 바가지를 제작하여 대중목욕탕에 배포하곤 한다. 


 목욕탕에는 거울이 많다. 그 거울마다 가장 아래 부분에 주변의 식당, 미용실 등 광고가 있다. 오래된 목욕탕에서 목욕하다가 식당 광고를 발견하면 눈여겨보고 찾아가는 것도 맛집을 고르는 한 방법이다. 만약 오래된 광고의 그 식당이 아직 있다면 그만큼 맛은 있다는 방증이므로..


이 이외에도 캔맥주 자판기가 있는 목욕탕이 많다든지, 매일 또는 한 주마다 남탕, 여탕을 바꾸는 곳이 있다든지, 매월 유자탕, 커피탕, 사과탕 등 이벤트탕이 있다든지, 사우나실 이용요금을 따로 받는 곳이 있다든지 세세하게 보면 우리 목욕문화와 다른 것이 제법 많다. 그런 소소한 차이를 찾아보며 일본의 목욕탕을 순례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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