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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Mar 11. 2024

몬트리올... 참 많이도 걸었다.

 이제 몬트리올로 가니까 몬트리올에서 돌아다녔던 곳들을 뇌의 해마 속을 해 집어 보았다. 그런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도 몬트리올? 저것도 몬트리올?이라고???


 우리가 갔던 곳이 진짜 몬트리올인지 확인해 보려고 인터넷 서칭을 해보았더니 진짜 다 몬트리올이었다. 캐나다 여행에서 몬트리올의 기억의 양이 이렇게나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을 줄을 생각도 못했다. 기억의 질적인 부분에서는 크나큰 감동이 있었던 곳들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소소하게나마 내 해마 속의 저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기억의 순서는 맞춰지지 않았다. 지도를 펼쳐두고 갔던 곳을 다 표시해서, 나름 계획적인 우리라면 어떻게 효율적으로 움직였을까? 추론해서 기억을 맞춰볼까 하다가 일이다 싶어 그건 그만두기로 했다.


 화창한 날씨의 퀘벡을 뒤로하고 우리는 그레이하운드 시외버스를 타고 몬트리올로 향했다. 3-4시간 정도 걸렸을 텐데, 다행히 멀미를 하지는 않았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곧장 숙소로 향해 우선 짐을 풀었다. 버스터미널과 그리 멀지 않아서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다. 예약할 땐 분명 방이 넓어 보였는데, 이렇게 좁을 수도 없었다. A와 나는 둘 다 덩치가 작았으니 망정이지 한 명이라도 덩치가 컸다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은 바닥에서 자기 했지 싶다.


 일단 밥을 먹으러 움직였다. 'schwartz's'라고 하는 샌드위치 맛집으로 향했다. 스모크 미트 샌드위치가 유명하다는 곳이었다. 밖에서 보면 훈제햄들이 걸려있는데 벌써부터 고기향이 찐하게 전해져 왔다. 유명한 맛집이라길래 줄을 서야 할 줄 알았는데, 대기줄은 없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먹었고 A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굉장히 찐한 스모키향이었다. 그리고 짰다.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느낀 건 생각보다 음식들이 짰다는 것이다. 김치가 정말 짠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못지않게 짰다. 입가심을 하려고 피클을 썰었다. 여기는 절여진 피클이 통으로 나왔다. 조금씩 잘라먹었는데, 피클도 짰다. 시큼하게 입가심이 되긴 했지만, 고기의 맛도 강했고 피클의 맛도 강했다. 평소에 워낙 간을 잘 안 해 먹고 삼삼하게 먹는 편이라 상대적으로 더 짜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유명하다는 맛집을 한 번쯤은 가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계산을 할 때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나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직원분을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돈을 내밀었다. 성격 급한 나를 알기에 A는 가만히 있으라고 또 잔소리를 했다. 다행히 직원분이 이런 내 성격을 이해해 주신 듯 웃으셨기에 뻘쭘하지 않고 무사히 계산을 마무리했다.


 든든히 배를 채웠으니 일단 걷기로 했다. 박물관이나 전시회 같은 곳을 둘 다 좋아해서 항구 쪽으로 가는 길에 무료로 갈 수 있는 곳들을 찾았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참 분위기 차분하고 좋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원이 보여 잠시 쉬었다가기로 했다. 


(출처:픽사베이)


 큼직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는 곳에서는 다람쥐들이 먹이를 찾아 뛰어다녔고, 개들과 산책하는 사람들, 나무 밴치에 앉아 햇살을 받고 있는 어르신들, 다양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일분일초가 괜히 아쉽게만 느껴져 바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여행에서 잠시나마 이런 여유를 즐기는 것도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은 아니지만, 마치 이곳의 여유를 한 껏 즐기면서 마치 내 집인 양 느껴지는 평안함은 여행으로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이 마음을 차분하게는 해주지만 계속해서 보다 보면 피곤해진다. 너무 좋은 자극을 받는 것도 한계는 있다. 이런 여유로운 공간에서의 힐링도 계속 있다 보면 심심해지고는 하겠지만 결코 자극적이지는 않아서 피로를 풀기에 딱 좋았다.


 다람쥐와 놀다가 우리는 다시 항구 쪽으로 길을 걸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시의 건물들 틈에 간판도 없는 조그마한 건물들 속에서 겨우겨우 무료 박물관을 찾았지만, 하필 문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다. 큰 도시적인 건물들이 있는 거리를 걷다 보면 도시가 엄청 커서 걸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도 싶지만, 충분히 걸어 다닐만했다.


 노트르담 성당에 다다르기 전에 화장실을 찾는다고 우연히도 큰 건물에 들어갔었다.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라 예스러운 기둥엔 크리스마스 조명들이 한껏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은행이었던 것 같았는데, 정말 우연히도 옆 사잇길로 들어가니 화폐 전시장 같은 곳이 있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서, 좀 전에 가보지 못한 박물관을 대신으로 잠깐이나마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원룸만 한 크기였기에 1분 만에 다 돌아봤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출처:픽사베이)


 노트르담 성당은 해 질 녘 즈음에 도착했다. 무교이지만, 절이나 교회 같은 종교적 장소에 가보는 것도 참 색다르고 좋았다.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우리도 분명 사진을 많이 찍고, 다른 사람들에게 찍어달라 하고 찍어주기도 했었다.


(출처:픽사베이)


 실내는 참 그렇듯 참 조용했다. 사람들의 움직이는 소리가 울리듯이 들릴 정도로 정숙한 분위기였다. 이런저런 성당을 보면서 느끼는 건 창은 있지만, 그림으로 채워진 창으로 내부로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내부의 촛불이나 등불로 밝혀진 이곳은 잠이 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해를 막아두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아무 이유 없을 수도 있을 테다) 개인적으로는 갑갑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와 열을 맞춰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나무 의자들, 좌우 대칭을 맞춘 듯한 조각품과 인테리어들, 웅장하고 위엄이 느껴짐으로써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려하지만 정교하고 바르게 배치된 환경과 은은한 조명의 이곳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가만히 조각상들을 응시하는 사람들도 있고 바쁘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다. 신성한 분위기에 압도될 정도는 아니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해졌었다. 인간의 아주 정교하고 화려한 예술작품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큰 피로감이 든다. 이해할 수 있는 지식도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눈에 밟히는 것들이 많아 어디에 눈길을 둬야 할지 모르겠는 이런 공간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기도가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은 죄가 많나 보다 생각하며 밖을 밖을 나섰다.


 A는 피곤했는지 숙소로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나도 잠시 숙소로 돌아갔다가 저녁쯤 다시 밖을 나섰다. 갑갑해진 마음을 밤공기로 한 번 씻어내줘야 했다.


 걸어가는데 한 여성이 말을 걸었다. 폰에 찍힌 주소를 보여주며 어떻게 가야 하나 물어보았다. 여행을 와서 누군가가 나에게 길을 물어볼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당황했다. 누가 봐도 여기 현지인으로 안 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어보니 답은 해줘야 했다.


"어... 나는 여기 처음 왔어. 여행 중이야."

"아! 그렇구나 미안해"

"행운을 빌어!"


 아주 짧은 대화를 영어로 했고, 무사히 내 말이 영어로 전달되었음이 뿌듯함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발 닿는 데로 걸었다. 그리고 대학으로 보이는 곳을 지날 때, 어떤 할머니 분이 또 말을 걸어왔다.


"너 프랑스어 할 수 있니?"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어.. 나 못해.. 미안."


 영어도 못하는데 불어라니... 대학교 근처라 나를 학생으로 본 것인가? 싶었지만 너무 당황해서 도망치듯 지나갔다. 완전히 타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여행지에서 나를 보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여행자로서의 지각을 무너뜨리고는 한다. 이 공간의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고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곳에 원래부터 있었던 내가 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항금히 도망쳤다.


'아니야.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고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여행자야.'

어디를 어떤 목적으로 가든, 대화를 하지는 않지만 마주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곳에 존재하는 한 행인일 뿐인 사실에서 후다닥 도망을 쳤다. 한 편으로는 적극적으로 현지 사람들에게 참여를 해볼까도 싶었지만 피곤한 일은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무엇을 물어보고 싶었던 걸까? 아마도 길을 물어보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불어는 못하지만 길은 찾아줄 수 있다고 해볼걸 그랬나 싶다. 그 할머니도 가족을 만나러 이곳으로 온 타지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아무튼 참 이상하게도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도 여행을 다니면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여행자인데...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길을 물어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도를 믿는 종교인들이 나에게 말을 많이 걸어온다. 분명히 그들이 영업을 위해 공부하는 교제에 '말 걸기 좋은 인상'을 주제로 내 사진이 있지 않을까 상상도 해보았다. 말을 걸기에 편안한 인상이겠지 하는 위로를 하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A는 배가 고팠는지 자기가 찾아둔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자고 했다. 밤길을 나서며, 혼자 걸을 때 길을 물어본 사람들에 대해 얘기를 하니 A는 사기는 당하지 말라 했다. (가게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치킨집은 점심때 먹었던 샌드위치 집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줄은 쭉 서 있었고 굉장히 빠른 회전율로 움직였다. 우리 차례가 되어 주문을 하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도저히 직원과 대화가 되지 않았다. 옵션별 차이에 대해서 분명히 질문을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답변이 아니라 '그걸로 주문할까?'였다. 다시 천천히 발음을 굴려가며 질문을 했지만, 알아듣지 못했는지, 계속 어떻게 주문을 도와줄까만 되물어왔다. 의사소통의 문제였을까 하는 근거 없는 의심을 뒤로하고 그냥 아무거나 주문했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막 설명을 하더니 빠르게 제품을 포장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엔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마주 오는 한 여성이 우리를 흘낏 보다니 우리를 향해 갑자기 '왁'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분명히 공격적인 언행이었다. 황당한 마음에 순간 그 언행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릴 향해 어떤 혐오의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인종차별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생각보다 화가 나진 않는다. 글쎄 인종차별이라는 것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당연히 잘못된 것이니까. 뭐랄까... 나에게는 1+1은 3이 아닌 것처럼 '그냥' 잘못된 것이라는 개념이다 보니, 당연히 잘못된 언행에는 크게 감정적이지 않게 된다. 상대방이 왜 그런 인종차별을 하는 걸까? 하는 이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나에게 당연히 잘못된 언행을 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그 기준이 너무 주관적이라 어떤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하는 단점이 되고는 해서, 나 스스로도 지각하고 최대한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할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려 하고 타인의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물론 아직도 잘 안되긴 하지만, 그 여성분의 행동은 이해할 필요가 없는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우리의 여행으로 돌아와, 치킨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조그마한 마트에 들러 아침에 먹을 게 있나 살펴보았다. 나는 커다란 바케트 빵을 샀다. 쏠쏠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만화책에서만 보던 크기의 바케트빵을 해외에서 사보는, 괜히 분위기에 휩쓸려 산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 빵이 이 추운 날씨에 흉기로 써도 될 만큼 딱딱해진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참 잘 샀다며 혼자 뿌듯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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