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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Feb 26. 2024

동부로 가기 전의 밴쿠버 산책

그랜빌 아일랜드와 엽서

일분일초가 바쁘고 가득 찼던 일정의 로키산맥 투어를 마무리하고 하루 휴식을 취하고 퀘벡으로 넘어가고자 했다.


사실 밴쿠버에서 그랜빌아일랜드의 퍼블릭 마켓을 돌아본 일정이 있었다. 이 여행의 시점이 우리가 퀘벡으로 넘어가기 전인지, 캐나다 여행의 마지막에 있었던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다만, 친구 A가 여행 왔으니 현지에 맞게 그랜빌 마켓에서 캐나다(혹은 유럽, 미국) 사람들의 브런치를 먹어보겠다고 한 것을 보면, 로키산맥 패키지 후 동부로 넘어가기 전이 맞다고 본다.


아무튼 꼬여버린 시간 순서는 뒤로하자. 11월의 캐나다였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로키산맥 투어 후 다음날 아침 일찍, A는 숙소에서 좀 더 쉬기로 했고 나는 혼자서 밴쿠버 국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콜로세움 같은 원형의 외관이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박물관 같은 분위기였지만, 사방으로 보이는 도서들은 보면 멋진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에 들어가면 여타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온도와 습도에 조용한 분위기는 며칠간 쌓인 피로에 저절로 잠이 들게 만들었다. 역시 잠이 오는 것을 보면 도서관이 맞는구나! 싶다.

(출처: 픽사베이)


잠에 빠져버리기 전에, 나는 도서관을 나왔고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그랜빌 아일랜드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일까 확인도 할 겸 좀 더 걸어보았다. 다운타운에서 조금만 걸으니 거대한 그랜빌 다리가 나왔다. 다운타운에서의 인도에서 그랜빌 다리에 다다르니 다리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인도까지 횡단보도로 이어져있었다. 그랜빌에서 다운타운 쪽으로 매섭게 달려오는 차를 보고 저 차가 지나가면 횡단보도를 건너야지 하고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날 만큼 놀라웠던 것은 그 차량은 나를 보고서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었고 내가 먼저 지나가길 기다렸다. 사람보다 차가 먼저인 한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이어서 어리바리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어쩌다 매너가 좋은 운전자를 만났다고 하기엔 여행을 하면서 몇 번이나 같은 경험을 해 보았기에 캐나다의 전반적인 교통 문화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대해 보였던 다리에도 끝은 있었다. 생각보다 숙소에서 멀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그랜빌 마켓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일단은 돌아가서 A와 점심을 먹고자 했다. 역시나 걸어서 다시 다리를 건넜고, 숙소에 도착해서 나는 걸어서도 그랜빌 마켓까지 충분히 갈 수 있다는 것을 A에게 알렸다.


우리는 그랜빌 마켓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구경을 하자 하고 A는 첫 번째이나 나는 두 번째인 다리를 다시 건넜다. 처음보다는 작아 보였던 다리를 지나, 다리 아래로 내려가 그랜빌 마켓으로 입장을 했다. 거대한 마켓인 만큼 다양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각종 레스토랑과 야채, 과일 가게들, 카페, 다양한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출처: 픽사베이)


미션임파서블 4에서 톰크루즈가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장소가 이곳 그랜빌 마켓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그 장면의 사진을 보면서 해당 장소를 찾으러 다녔다. 각도와 배경을 맞춰보며 찾은 곳에서 톰 크루즈처럼 브런치를 먹으려고 했으나 너무 추웠기 때문에 안에서 먹기로 했다. 친구 A는 계란 반숙, 베이컨 몇 조각과 커피로 구성된 전형적인? 서구식 브런치를 먹었다. 베이컨을 반숙된 계란 노른자를 소스처럼 찍어 먹었다.


“그냥 짜.”


친구 A의 평은 그게 끝이었다. 맛은 있지만, 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아침부터 이렇게 짠 것을 먹었다가는 혈액이 막혀버릴 듯했다.


우리는 한국의 마트를 쇼핑하듯이 계속 빙빙 돌아다녔다. 한국처럼 시식코너가 없어서(있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아쉬웠다. 짠 브런치를 먹었으니 단 것을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젤라토 같은 꾸덕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친구 A는 이곳에서 랍스터를 쪄 주는 곳이 있다고 했고 그것을 찾아서 먹자고 했다.


그렇게 다시 빙빙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해 지친 우리는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꼭 무언가를 찾는 것을 포기하면, 그제야 나타나는 것은 국룰이듯이 돌아가는 길에 랍스터 그림이 있는 표지판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분명 랍스터를 쪄주는 곳이 맞을 것이었고, 공장 같은 곳 안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돈이 없는 우리는 제일 작은 랍스터를 샀고 30분 정도 걸린다는 말에, 다시 30분 동안 마켓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완성된 랍스터를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든든한 먹거리를 가지고 돌아가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기대를 하며 한 입 베어먹은 랍스터는 그저 비렸다. 고소하고, 부드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비렸다.


실망감 가득한 식사였지만, 한 번은 해볼 만한 시도였다.


비린 입맛을 씻어내는 데는 쓴 맛의 커피가 재격이기에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와 카페를 찾으러 다녔다. 마침 오전에 혼자 갔었던 콜로세움 같은 도서관을 들렸다가 다행히도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커피를 사며, 우리는 시애틀에서 샀었던 엽서를 친구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나는 내 글씨가 엉망이라는 이유로 별 말 적지 않고 엽서만 보내려고 했더니, A는 황당해하며 그래도 적는 게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기분 좋지 않겠냐 했다. 옳은 포인트였기에 최대한 예쁘게 글을 써보려 노력하며 몇 글자 끄적였다.


‘안녕… 여긴 밴쿠버에 카페에서 글 쓰는 중. 나는 글을 안 쓰려고 했는데 A가 쓰라해서 쓰고 있어. 잘 지내고 있고~ 가면 보자~’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참으로 건조하고 무심한 내용의 글은 수평을 벗어나 점점 위로 향했고, 예쁜 엽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두서없이 글을 쓰며, 손 글씨는 엉망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글을 써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내가 친구와 만났을 때, 다양한 얘기를 하지 못했던 것이 그대로 글을 쓸 때도 나타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해본 사람이 글도 깔끔하고, 읽기 좋게 잘 쓰는 건 맞는 것 같다. 글을 조리 있게 잘 쓰기 위해 대화도 많이 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 쓴 엽서를 가지고 도서관 근처에서 보았던 우편함에 넣었다. (우표는 미리 사 두었다) 엽서가 우리가 한국에서 여기까지 온 머나만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을 상상하니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 어디에 있든 ‘잘 지내는지’의 안부인사는 메신저로 몇 초면 도달할 거리를, 몇 일 혹은 몇 주에 걸쳐 도달할 엽서로 전하는 것은 그 시간만큼이나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진심을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감동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엽서를 몇 글자 쓰지도 않고 그냥 보내려고 했다니 반성하게 된다. 글을 안 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툴더라도 진심을 적어 보내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다음 날이면 진짜 동부로 넘어갈 시간이었다.


익숙해져 버린 밴쿠버를 떠날 생각에 아쉽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또다시 처음으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 달이라고 하는 여행이 하나의 여행이 아니라, 각 도시마다 새롭게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푸짐한 코스요리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다시 몇 시간의 비행을 해야겠지만 비행 끝엔 새로움으로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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