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의 20대엔 어딜 가든 '소니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와 함께였다. 대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로 난생처음 돈이란 걸 번 후 가장 먼저 산 것이 바로 워크맨이었다. 늘 동경의 대상이기만 하던 것이 드디어 내 소유가 되던 순간 그 가슴 떨린 설렘은 20살짜리에겐 참으로 벅찼다. 이후 매일 집을 나서기 전 그날의 선곡을 위해 선반에 일렬로 세워둔 카세트테이프들을 한참 들여다보는 게 어느새 일상이 돼버렸다.
카세트테이프는 제 값을 주고 산 정품이라 하더라도 재생을 많이 하다 보면 테이프가 늘어나 음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당시 '유재하'와 '시인과 촌장'에 푹 빠져 여러 번 반복해 듣다 보니 음질에 문제가 생겨 결국 똑같은 걸 3번씩이나 사야 했다. 내 감성에 저격인 꾸밈없이 맑고 서정적인 멜로디들은 매번 들어도 질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시구절 같은 노랫말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어떨 땐 따뜻하고 잔잔하게 날 감싸 주기도 하고 어떨 땐 뭔지 모를 희망에 한껏 부풀게 하다가 또 어떨 땐 가슴이 아려와 눈물을 핑 돌게 만든다. 그중 평온한 풍경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좋아하는 노랫말이 있다.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시인과 촌장 <풍경>중에서-
모두의 풍경 속에 그려지는 '제자리'는 과연 어디쯤이고 내 풍경 속 '제자리'는 또 어딜까. 우습게도 20대의 나에겐 오래된 싸구려 이불 속이 '제자리'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잿빛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방 이불 속에 지친 몸을 누이면 오늘 하루도 제자리로 잘 찾아 돌아온 기분이었다. 30대에는 남편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평온함을 느꼈다. 40대 땐 큰애가 학교에서 돌아와야 그날 하루의 풍경이 완성되었다. 까만 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끝내고 늦은 간식 먹는 모습을 바라볼 때 비로소 다들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온 안도감을 가졌다. 그리고 50대인 지금은...
지난 한 달간은 정말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몸과 마음이 부산했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줄줄이 생기는 바람에 비교적 규칙적이던 나의 일상이 많이 무너졌다. 덕분에 오직 나 자신만의 소소한 기쁨을 위해 꾸준히 해오던 대부분의 것들은 순위에서 한참 밀려 등한시되었다. 한 달에 2편 정도는 꾸준히 쓰고자 했던 브런치의 글도 한 달 이상 손을 놓게 되었고 그림 그리기, 영어공부도 자꾸 미뤄졌다. 연초부터 1주일에 한 권씩 꾸준히 해오던 독서도 멈칫하게 되어 2주 연속 빌린 책을 손도 대지 않은 채 다시 그대로 도서관에 반납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잠잠하던 내 안의 게으름이 드디어 핑곗거리를 찾았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저 핑계로 돌리기엔 조금 억울한 부분도 있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양은 정해져 있고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그 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생기면 예전과 달리 모든 걸 해낼 수가 없어 몸이 알아서 신호를 보낸다. 글을 쓰려 노트북을 마주 보고 앉아도 책을 펼쳐보아도 영어 단어를 외워도 멍해지기만 할 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억지로 한다고 한들 모두 헛일이다. 그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순간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있다. 2주가량의 긴 첫 휴가를 받은 아이는 다시 군으로 복귀했고 처음 우리 집을 방문한 아이의 여자 친구에게도 무사히 손님 대접을 끝마쳤다. 비록 원치 않은 방향으로 정해졌지만 한동안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던 대입 입시 증원문제가 어쨌든 이젠 일단락 났기에 고3 딸아이의 대입 입시 방향도 확정 지었다. N수생들 때문에 걱정했던 6월 모의고사도 영어를 제외하면 평상시보다 성적이 조금씩 더 올라 한시름 덜었다. 지난달 있었던 건강 검진에서 결과가 썩 좋지 않아 한동안 속앓이를 했었는데 며칠 전 예약을 잡아 상담을 받아보니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멋모르고 괜히 앞에 나서는 바람에 벌어진 일도 다행히 잘 마무리지어 그간의 맘고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글을 쓰고 영어 책을 펼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별 도움은 안 되지만 지역구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그림 수업도 수강신청하여 억지로라도 붓을 다시 들게 했다. 뭐든 손을 떼는 건 쉬워도 다시 시작하는 건 수고가 좀 든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이 홀가분하고 평온한 기분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문득 50대인 나의 '제자리'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순간임을 깨닫는다.
지난날의 내 풍경엔 항상 가족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들이 고된 하루를 마무리 짓고 내 품으로 돌아와 내 안에서 편히 머무를 때 비로소 모든 게 제자리인 것 같은 평온함을 가졌다. 스스로에겐 수고했단 작은 위로도 건넬 줄 모른 채 쓰면 쓸수록 내 안의 에너지는 무한대로 생기는 줄 알던 멍청이였다. 하지만 이젠 나 자신에게 보다 집중하려 하는 이기주의가 되어가고 있다. 날 귀찮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오롯이 날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지금 내가 바라는 '제자리'다.
큰애가 들으면 노발대발하겠지만 아이가 다시 군에 복귀하자 그곳이 마치 아이의 제자리인 것 같았다. 집돌이 남편도 거실보단 비어 있는 큰애 방에, 집 안보단 밖에 있는 게 그의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딸아이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얼른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 제자리를 잘 찾아가길 바란다. 결코 가족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결혼 후 숙제처럼 주어졌던 풍경화는 이젠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다시 새로운 풍경화를 그릴 차례다. 앞의 그림을 열심히 그리느라 너무 많은 열정과 에너지를 쓴 탓에 남아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이제부터 아껴가며 나에게 보다 더 집중하고 싶은 게다.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오늘도 당당하게 나의 제자리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