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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책'임 21화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2025년 3월 셋째 주

by all or review
32463129802.20230906071157.jpg 문학과지성사

노벨상 작가가 말아주는 '인생 해설서'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의 베스트 작품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꼽는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흰 눈>, <여수의 사랑>, <바람이 분다, 가라> 등 수많은 작품을 제치고 시집이 단연코 1순위라니.


그런 의문이 드는 사람에게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을 보여주곤 한다. 그리고 무슨 느낌이냐고 물어본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자.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이 시에서 한강 작가는 '흘러가는 것을 포착'해냈다. 다만 무엇이 흘러가는지는 모른다. 안 쓰여있으니까. 그게 구름인지, 연기인지, 시간인지, 꿈인지, 사랑인지, 마음인지 모른다.


다만 그 부유물을 포착한 뒤에 보인 행동은 예상 밖이다.


밥을 먹는다. 굳이 반복해서 '밥을 먹는다'라고 두 번 표현한다.


이건 '기약 없이 흐르는 것'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 거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 바로 단단히 묶여 있는 '일상'을 선택한 셈이다. 매일/매끼 밥을 먹는 것처럼 고정된 일상 말이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이건 수동적인 무력함이 아니니까. '저 멀리 떠나가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밥을 먹는 것일 뿐이야'라는 절망 섞인 자조가 아니다.


화자는 분명히 '밥을 먹어야지!'라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능동적인 자기 암시다.


어떤 시련이 주어져도, 힘들고 아픈 상황이 있더라도,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을 이렇게 능동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한강표 인생 조언]을 넌지시 던지고 있는 거다!


물론 (나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염없이 부유하는 것들 앞에서 잠시간 방황한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돈다.


예컨대 사랑이 떠나가거나,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버리거나, 나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해버린다면 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동조하고 같이 휘말려버린다.


그러니까 '휘둘리지 말라'는 조언이다. 굳게 닻을 내리고, 단단하게 돛을 붙잡으라는 충고다.


이게 과한 해석은 아니다.


이 작품에 있는 또 다른 시 '서시'를 보면 해석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아래 시를 읽고, 한번 더 생각해 보자.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면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앞선 시와 연관시켜 해석해 보자. 운명은 흐른다.


'흐르는 운명'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묻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저기요,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요?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거 좀 적당히 합시다. 네? 잘 아시는 분이 자꾸 이렇게 엇나가시네~"라고 할지 모르겠다.


한강 작가는 막상 운명이 눈앞에 닥친다면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조용히 끌어안을 것'이라고 한다. 이건 운명을 깊게 체화한다는 의미다. 피하지 않고, 지난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운명은 나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의 운명이 아닌 바로 내 운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후회했고, 애쓰고, 집착했는지 모두 빠짐없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명을 조용히 오랫동안 끌어안는다는 건 '능동적인 납득'이다. '운명이 다가오니까 어쩔 줄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내겠다'는 수동적인 납득이 아니다.


"가끔 당신을 느낀 적~ 될까."라는 의문형의 물음에 자문자답하며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라고 답하고 있으니 포옹 역시 주체적인 의사표시다.


이 지점에서 짚어야 하는 대목은 제목이다. 이 시의 제목은 '서시'다. '서시'는 시집 맨 처음에 쓰는 시를 뜻한다(물론 실제론 131pg에 있다). 즉, 모든 시의 최전선에 있다는 뜻이겠다.


한강 작가 작품 전체에 흐르는 맥락 또한 연장선에서 생각해 보자. <소년이 온다>처럼 광주를 온전히 감내해 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슬픔, <채식주의자>처럼 가부장적인 관계에 저항하기 위해 끌어안아야 했던 본능,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경하가 마주한 새 돌봄 등.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느끼는 생각들을 여과 없이 풀어낸 작품들이 한강 문학 아니던가.


그러므로 이 시집이야말로, 한강 작품을 일이관지(一以貫之)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엔)이거보다 더 쉽게 이 시집을 해설할 순 없다.


이제 아래 있는 시를 마음껏 느껴보도록 하자. 이 장면을 두번 세번 읽으면서 감동을 체화해보자.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제목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저자 : 한강

출판 : 문학과지성사

발행 : 2013.11.15.

기타 : 시/에세이부문 14위(교보문고/3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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