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책'임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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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얼굴들>

2025년 3월 첫째 주

by all or review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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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 없는 판사의 일갈이 필요한 시대

빠꾸 없는 판사의 일갈이 필요한 시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얼굴을 마주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때까지 산부인과 의사, 장례 지도사의 얼굴이 스친다. 마치 '얼굴을 봐야만 하는 운명'처럼 타인의 얼굴이 우리의 시신경을 정신없이 채운다.


철학자들이 '얼굴'을 분석한 건 그래서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얼굴을 '검은 구멍이 숭숭 뚫린 흰 벽'(들뢰즈)로 단순하게 본 철학자도 있는가 하면, '고통에 응답해야 하는 윤리적 책임감의 신호'(레비나스)로 해석한 사람도 있었다.


각 주장의 시시비비를 떠나서, 이 책은 레비나스의 철학에 더 가깝다.


레비나스는 말했다. '우리의 존재 이유를 남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얼굴에 응답해야 하는 윤리적 책임이 있다'고 말이다. 언어와 논리가 아니라, 사람의 표정과 눈빛에서 철학의 제1원리를 도출하겠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사람들이 윤리를 완전히 잊은 시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후 점차 빛 바래던 '윤리와 도덕'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종 청소'와 '리틀 보이'가 휩쓸고 간 세계에 레비나스의 철학이 전면에 등장한 건 그리 놀랍지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 시대에 박주영 판사의 책 <법정의 얼굴들>이 등장하는 것 역시 그리 놀랍지 않다.



박주영의 단어 사용법


'대통령의 탄핵' 이슈로 모든 뉴스의 시선이 법정으로 꽂힌다.


(길진 않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언론이 법정을 쳐다보는 건 사실상 마지막 수순이다. 특정한 사건을 빠짐없이 분석한 후, '그래서 판결이 어떻게 될지'를 주목한다. 판결 이후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판결 자체가 흔들림 없는 결과로 남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더 이상 팔아먹을 소식이 없는 셈이다. 그럼 끝이다.


이걸 체감적으로 경험한 입장에서 박주영 판사의 한마디는 시작부터 뼈아팠다. 정말 끝이기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이 들렸다.


오랜 재판 끝에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사법절차가 생각보다 무력하다는 점이다. 판결로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후에도 법정에 선 사람들의 슬픔은 계속 차올랐고...


판사는 사건을 본다. 하나같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글자로 환원되어 판사의 눈앞에 당도한다.


판사의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은 처참하다. '살인', '강간', '폭행', '절도' 등등. 단어들은 나와 같은 일반인의 단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내가 들어보지 못한 윤수와 창호와 진희(아이들)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면 명백한 ‘살인’이다.


처음 생각해봤다.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은 과연 옳은가.


어른은 빠꾸가 없다


벌을 주는 '형사재판'에서 판사 자리는 일반석보다 한 단 높다. 판사는 (과장되지만) 법정을 우러러볼 수 있다. 박주영 판사는 자신이 본 풍경을 돌려 말하지 않는다. 

재판을 하면서 너무 많은 피해자를 봤다. 그동안 내 법정에는 온갖 이유로 살해된 사람들, 이유를 모르는 죽음들, 시신조차 수습 못한 유족들, 중력처럼 힘의 우열을 타고 약자를 향해 꾸물꾸물 흘러내리는 질기고 비열한 폭력들, 그 아래에서 맞고 강간당하고 학대받는 여자들과 아이들, 잊을 만하면 떨어지고 잘리고 끼이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평상시에 생각하던 내용과 똑같은 말이 책 속에 그대로 묻어나 있어서 너무 놀랐다. 자신이 생각한 것 역시 (요즘 표현대로라면) 빠꾸 없이 일갈한다.

결국 성범죄의 양형을 올리려면 법률이 없을 경우 입법하고,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강화한 것처럼 양형 기준을 상향해 특정 재판부만의 유별난 양형이 아닌 점을 공식화해야 한다. 넓은 양형 기준 내에서도 과감하게 무거운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관성적 해석이나 답습의 고리를 누군가는 선도적으로 끊어내야 하고, 그런 선례들이 쌓여야 한다. 법관들의 성인지감수성 제고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의 직선적인 면모는 단언컨대 '타인의 얼굴'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런 문장이 서슴없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의 실력이 퇴적됐기 때문이다. 깊이 공감하고, 오래 고민한 결과가 세상에 슬슬 기어 나온 거다. 이 문장들을 보고 확신했다.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보았듯, 세상이 힘들면 힘들수록 이런 범행은 급격히 증가한다. 최근 경제의 급속한 붕괴는 우리에게서 또 얼마나 많은 아이를 앗아갈까. 반복되는 이런 범행을 볼 때마다 청테이프가, 번개탄이, 졸피뎀이, 수면유도제가, 감기약이, 찢어진 약봉투가, 빨랫줄이, 둥글게 말아쥔 손아귀가, 열려진 옥상 문이, 갑작스러운 고급 햄 반찬이, 분에 넘치는 장난감이, 예상치 못한 선물이, 계획에 없던 가족여행이, 혼자 남겨진 인형이, 발에 묻은 그을음이, 부러진 손톱이 두렵다. 우리의 망각과 무덤덤함이 무섭고 또 무섭다. 어떤 이의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가닿을 수 없는 이상이 되는 현실은 얼마나 서글픈가.


한발 더 나가보자. 이 연장선에서 그는 어른이다. 수많은 사건과 얼굴들로 지혜의 경험치를 만땅으로 채운 어른이다. 

어른은 수많은 세월 겹겹이 쌓여온 퇴적인간이다. 그러나 퇴적층의 마지막 모습만으로 굳어버린 이는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은 포토샵의 레이어와 비슷하다. 투명 종이 여러 장에 그린 그림을 하나로 겹쳐놓은 상태다. 아래 깔린 그림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다. 밑그림처럼 속감정도 배어 나온다. 모든 감정이 겹쳐져 비로소 하나의 표정이 된다. 웃듯 울고, 울듯 웃는다. 기쁘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기쁘다. 우리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성숙한 조문자가 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좋은 어른은 좋은 판사의 선결조건이다. 그리고 좋은 판사의 선결 조건을 아는, 다시 말해 '좋은 어른이 뭔지 아는 사람'은 최소한 '좋아지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다. 좋은 어른은 좋은 판사를, 좋은 판사가 좋은 재판을, 좋은 재판이 좋은 판결을, 좋은 판결이 좋은 사회를 이끈다.

“좋은 재판은 어떤 재판입니까?” 어떤 기자가 물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답이 달라질 수 있는 질문이라 대답이 막혔다. 질문을 비틀어봤다. 좋은 재판에 필요한 단 한 가지를 들라면? 이건 쉬웠다. 바로 좋은 판사다. 나쁜 판사가 좋은 재판을 할 순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지금 시대에 박주영 판사의 <법정의 얼굴들>이 필요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까.



제목 : <법정의 얼굴들>

저자 : 박주영

출판 : 모로

발행 : 2024.11.05.

가격 : 18,000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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