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기 토크컨설팅 대표,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 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남쪽 끝, 제주도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이사장과 탐나라공화국을 만든 강우현 대표는 막힘없이 술술 본인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이 제주에서 만났을 때 뿜어내는 시너지는 가히 운명적이었다.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 박장대소하며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있었다. 감명을 받아 박수를 보낸 관객도 많았다.
바로 저 사람들이 우리가 사랑하는 제주를 지켜줬으니까 고마웠다. 다만, 우리가 사랑하는 제주가 앞으로도 지켜질지 의문이다. 서명숙과 강우현 없는 제주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최) 안녕하세요. 토크컨설팅 대표이자 오늘 대담의 사회를 맡은 최강기입니다. 제가 지오베 극장에 두 번째 서게 되는데요. 이전에는 새로운 문화예술계 신진들과 함께 했다면, 오늘은 난도가 높은 강의입니다.
수학을 잘하시나요?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지역을 넘어 제주도에 좌표를 찍는 분과 큰 선을 그어서 제주의 문화와 삶을 바꾼, ‘점과 선’의 만남입니다. 점과 선이 만나서 면을 만들고, 그 면이 공간을 만듭니다. 이 분들에게 궁금한 이야기를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분은 상상을 이루어내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한분은 내가 생각하는 걸 실천하는 분입니다. 이 분들의 이야기를 한 번 청해 듣겠습니다.
나라를 만드는 남자와 길을 걷는 여자, 큰 박수와 함성이 필요합니다! 어서 오세요!
여기에 앉으시고요. 참고로 저도 제주올레 이사장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요. 제주 올레에서 만나면 특별한 인사를 합니다. “꼬닥꼬닥 올레~”라고 하는데요. 이런 인사말로 함께 시작해 보겠습니다.
-(최) 자, 강우현 대표님은 나라를 많이 세우셨죠? 13개 나라를 세우셨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나라가 있나요?
= (강) 처음엔 내가 남이섬을 세웠어요. 동화 같은 나라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사람들이 우리도 막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지자체에서 말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서울 강남은 ‘아름다운 공화국’, 인천 서구 쓰레기 매립장은 ‘역발상 공화국’, 충남 서산 ‘해 뜨는 공화국’, 양평의 ‘쉬쉬 놀놀 공화국’, 수원 ‘생생공화국’, 그리고 마지막이 제주도 ‘탐나라 공화국’이에요.
이게 거의 대부분 공무원과 함께 만들었어요. 근데 거의 다 멸망했어요(웃음). 그나마 살아있는 게, 탐나라 공화국이에요(박수).
(최) 이게 지금 박수칠 일인가 싶은데요(웃음).
= (강) 제가 원하는 나라가 있었어요.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조롱하지 말고, 비웃지 말고, 냅둬라! 그런 나라가 있었으면 했어요.
남이섬은 제가 2001년에 아무것도 없을 때, 정말 망하기 직전에 만들었는데요. 월급은 100원만 받겠다고 했어요. 대신 1년 내로 2배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어요. 대신 추가 수입의 절반은 내가 갖겠다고도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27만 명에서 65만 명이 되어버렸네? 그래서 계속 남는 돈으로 재투자를 했어요. 그러다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저는 말 타는 사람이고, 말 타는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한 뒤에 그냥 떠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주도로 갔어요. 지금 10년이 넘었어요.
- (최)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대표님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 같아요. 아니 왜, 그런 창의적인 생각들 있잖아요.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 (강) 그게 무슨 아이디어예요. 그냥 하다 보니 된 거예요.
저는 먼저 ‘할 거냐, 말 거냐’를 먼저 정해야 해요. 하겠다? 그럼 돈이 없어도 돼요. 하겠다는 사람은 이유를 찾고, 안 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아요.
돈 없어? 그걸 꼭 돈으로 해야 하나? 아껴 쓰고, 재활용하고, 얻어 쓰고, 그리고 마지막에 돈을 쓰는 거예요.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방법이 나와요. 대신하는 데 있어서 원칙!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이미 있는 건 하면 안 돼요. 두 사람 이상이 어떤 아이디어에 찬성하는 것도 하면 안 돼요. 모두가 다 말려야 돼! 찬성하는 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거여~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요?’ 그런 걸 해야 해요. 이상한 것끼리 모아 놓으면 이상하지 않아요. ‘원래 저런 거야’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남들의 눈을 의식한다고? 어차피 그들은 행동은 안 하거든. 그러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 (최) 굉장히 쉬운데, 들을수록 어렵네요. 어쨌든 할 수 없는 일에 이유를 대지 말라는 거잖아요. 저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참~ 이유가 많아요. 13개 나라를 만드는 데, 보통 지역에 연고가 있다거나 연관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사람이 귀농을 하더라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해요. 대표님이 찾는 새로운 나라와 지역은 보통 어떻게 발견하세요?
= (강) 그걸 내가 어떻게 찾아. 남들이 해달라고 하면 하는 거지(웃음).
(최) 아니, 그럼 제가 나라 하나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 (강) 저를 만나러 오면 바로 해줄게요! 즉석에서.
(최) 알 것 같아요. 근데 모르겠어요. 참... 강 선생님 강의가 이렇습니다. 강우현 선생님은 평소에 시간을 어떻게 쓰세요?
= (강) 글쎄...? 저는 건강관리를 잘 안 해요. 오래 살려고 애쓰지 않아요. 내가 80-100살을 살아도 깨어있는 시간이 많은 게 좋은 거여! 누가 맵고, 짜고, 시고, 술 담배하지 말라고 해요. 근데 그때까지가 멀쩡한거여~!
(최) 알겠습니다. 인생에서 어려우면 강우현 선생님을 만나시면 됩니다(웃음).
= (강) 사람들이 막 물어요. 이걸 10년 정도 했는데, 어떠냐고. 난 개여. 그러니까 애초에 개고이라는 걸 한 적이 없어요. 그냥 하는 거예요. 나 죽은 다음에 누가 이걸 이어할 거냐? 몰라요. 일단 그냥 던지는 거예요.
- (최) 자, 서명숙 선생님 차례인데요. 제주 올레를 만드신 이사장님이시죠. 강우현 대표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저 공화국은 오래갈까요?(웃음)
= (서) 그나마 살아남은 공화국이 될 거예요.
저는 사실 너무 감사해요. 저런 어마어마한 점을 찍어주셨으니까요. 제주도가 고향이고 핏줄인 저로써는 너무 감사한 일이고요.
저는 사실 어렸을 때 고향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저한테 제주도는 탈출을 꿈꾸는 곳이었어요. 제주도가 서울의 3배라서 그렇게 좁지도 않은데, 한 달 내내 걸어도 반도 못 걸을 정도예요. 올레길은 해안선 위주기 때문에 지금도 중산간은 손도 못 댔어요.
여튼 그렇게 넓은데도, 초중고 서귀포 내내 제주도를 벗어나자는 꿈을 꿨어요. ‘이 섬을 벗어나자!’ 특히 어딜 가나 다 알아보는 친척문화가 너무 싫었어요. 나는 나이고 싶은데, 그런 게 너무 싫어서 서울로 유학을 갔죠. 떠나는 순간 ‘나는 이제 제주도와 빠이빠이야!’ 했죠.
내가 제주도에 길을 내는 사람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살다 보니 자기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 (최) 그렇죠, 그렇죠. 혹시 여기서 올레길을 걸어보신 분 계신가요? 여기 올레길 완주하신 분도 많더라고요. 올레길을 만들게 된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거예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걷는 걸 좋아하시던 분은 아니잖아요.
= (서) 지금도 제 고등학교 때 체육선생님이 신기해하세요. 그때는 게임이나 인터넷이 없어서 책만 보면 엄청 탐하는 학생이었어요. 학교 가는 걸 까먹을 정도로요. 집밖으로 나가질 않았어요. 그렇지만 제주도는 좁다고 생각했고요. 파리, 런던 막 이런 곳을 꿈꿨는데요.
제가 서울로 올라가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어요. 25년 하고 나니까 완전히 (그.. 소위 말해) 멘탈이 털린 거예요. 지긋지긋해졌어요. 그렇게 기자를 하고 싶었는데요. 아유.. 새벽에도 막 회사 나가고 싶어 했던 사람이 이제는 뉴스만 터져도 지긋지긋한 거예요.
제가 오늘 새벽에 YTN 보면서 ‘내가 만약에 기자였더라면, 빨리 때려치우고 싶었을 거야’ 싶더라고요. 제가 오마이뉴스 국장일 때, ‘여기서 잘리면 산티아고 가겠다’는 마음이었는데요. 도통 잘리지 않았어요(웃음).
그래서 그냥 산티아고를 갔어요. 800km를 갔는데도, 바다가 안 보여요.
전 어렸을 때 바다가 익숙했는데요. 내가 제주도 너무 가기 싫었는데, ‘해안 도로라도 돌아봐야겠다’ ‘바다나 실컷 봐야지!’ 했죠.
길을 만들 거다? 생각 전혀 못 했어요. 그런 건 뭐 환경단체가 하든지. 그렇게 생각하고 다만, 저는 그 여행을 바탕으로 제주도에 ‘길을 내야 한다’는 글을 썼죠. 길을 내면 넓게 쓸 수 있다. 여행지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영국 여자를 만나는 바람에 휙! 인생이 바뀌었어요. “너무 사람들이 정신없이 살고 미친 나라 같더라”라고 비판하더라고요. 그러고 밤에는 막 술 마시고요.
제가 정말 말 그대로 뼈가 아팠어요. 제가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살다가 탈진한 사람이니까. 고향 제주도에 돌아가서 ‘행복한 종합병원’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한 거죠. 그게 올레길의 시작이에요.
- (최) 절망의 끝에서 사람들을 치유하는 종합병원이 탄생한 것 같네요. 이제는 객석에서 질문을 좀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평상시에 뵙지 못한 부분을 알아서 반가웠습니다. 참여하신 공화국이나 길은 관여 정도가 어느 정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어떤 공화국이나 길이 필요할까요?
= (강) 저는 거창한 걸 못하고요. 그냥 내 영역에서만큼은 다 실천하자고 생각해요. 너무 멀리 얘기하지 말고, 자기가 주변 것을 다 체크하면 되죠. 머리로는 다 알아요. 근데 안 해요. 토론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말고, 일단 하자!
‘나는 이렇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하는 거죠. 그러면 전체적으로 좋아질 거예요. 말로 할 수 있는 건 당장 아무것도 없거든요.
탐나라공화국에 손님이 온다고 치죠. 물은 그냥 드립니다. 물 장사하다가 남는 쓰레기는 누가 치우냐고요. 우린 우리대로 실천하고 있죠. ‘그 뒤론 그냥 따라온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 (서) 걷는 사람만큼 기후위기에 잘 대처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일단 자동차를 안 타잖아요? 저도 자동차를 평생 가져본 적이 없어요. 배기가스 배출은 잘 안 해요.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 많아요. 서귀포는 ‘걸어서 15분 도시’에요. 어지간하면 30분이면 갈 수 있어요. 먼 거리를 갈 때는 버스를 타요.
제가 참여한 비중은 꽤 높아요. 스토리텔링을 기본적으로 구축해 놓고, 작업할 때는 초반에 어느 정도 기틀을 잡을 때까진 같이 하는 수밖에 없어요. 일단 돈도 없고요. 뭔가 보여줘야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자기가 하고 싶기도 하고요. ‘길 내라! 왜 안 해?’ 할 수는 없는 거죠.
(관객) 관련해서 추가 질문을 해본다면, 사실 남들의 도움이 없을 순 없잖아요? 어떠세요?
= (서) 제 동생은 조폭 두목이었어요. 아주 오랜 세월 동안요. 서귀포시가 다 알 정도로요. 그래서 굉장히 창피했고, 제주도 땅을 밟고 싶지도 않았고요.
제주도에 내려와서 길을 내야 하니까 일단 내려와야 했어요. 마침 제 동생이 조폭을 은퇴했더라고요. 저는 조폭이 은퇴가 가능한지 몰랐어요(웃음). 저는 칼 맞거나 죽어야 은퇴하는 줄 알았어요. 어느 순간 후배한테 물려주고 나왔더라고요. 얘가 에너지가 많고 아이디어가 많았어요. 선뜻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저한테 3개를 당부했어요. 첫째, 정치하지 마라. 이걸 핑계로 정치하지 마라. 둘째, 이걸로 돈 벌라고 하지 마라. 셋째 경조사 가지 마라. 그럴 시간에 일 하자. 다 수긍했어요.
=(강) 하다 보니까 한 거죠. 하다 보니까 또 하고 싶거든(웃음). 저는 자극을 주는 일을 하는 거지요. 정부가 일을 하도록 자극을 주는 거죠.
- (관객)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만들어 가는 주인공은 결국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아내와 창업도 생각하면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 없는 게 있나요?
= (강) 지금 이 순간, 나로부터 나오는 게 한국에 없는 거예요. 지식은 배우는 걸 습득하는 거고, 그걸 쓰는 걸 지혜라고 해요. 내 방식으로 소화시켜서 써야 해요. 필요하면 나한테 오세요.
- (관객) 제가 제주도를 아주 오래전에 갔었는데, 자연 그대로의 멋진 모습을 감탄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걸 잊지 못해요. 하늘의 별밖에 없어요. 30년 후에 가보니, 조형물과 카페가 들어섰더라고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서) 제가 성격이 급한 편이라서, 앉아서 태연하게 대답을 잘 못해요. 일어서서 답할게요.
사실은 제주도가 민속촌은 아니거든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과거의 지점에 고스란히 머무를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 그 어느 지역도요.
특히 여행자들은 엄청 개발되거나 손을 많이 댄 곳만 가서 너무 변했다고 그러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지금도 제주도 구석구석을 보면 여전히 오롯이 남아있는 곳도 많거든요? 바닷가 마을과 중산간 마을도 그렇고요.
너무 일찍 기대를 접거나 버리지 마시고, 내가 조금 더 발품을 팔아 보세요. 올레길이 아닌 곳도 가보시고요. 올레길은 제주를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이어 놓은 거예요.
올레길은 하나의 축일뿐이에요. 차로 휙 돌아보고 예전과 다르다고 말씀만 하시지 말고, 아직도 괜찮은 곳 많아요. 서울의 3배라니까요? 저희 올레길이 27개 코스예요. 바닷가를 축으로 해서 산(오름)과 마을을 오가요.
몇 년 전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어요. 문화의 힘으로 오더라고요. K드라마에 나오니까, 와서 트레일 걷다가 하는 얘기가 ‘너무 아름답다’고 하는데요.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게 바로 추자올레예요. 추자도. 제주도 사람들 중에서 추자도 안 가본 경우가 많아요. 정말 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스 섬과 추자올레가 자매결연을 맺었어요. 사실은 그리스 섬보다 건물은 좀 덜 예쁠지 몰라요. 그렇지만 섬에 올라가는 배경이 각양각색이에요. 올라갈수록 점점 보이는 풍경이 다 달라요. 골라먹는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처럼요. 거기 한 번 가보세요.
(관객) 역발상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요. 저도 시도해 봤지만, 참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우리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요. 어렸을 땐 어떠셨는지, 앞으로 어떤 교육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강) 아 저도 일어나겠습니다(웃음). 자, 역발상이 대단한 게 아니에요. ‘뒤로 돌아 가!’ 하는 거예요. 되는 것만 생각해도 인생이 짧아요. 되는 것부터 해야죠. 시험 문제를 풀 때는 쉬운 문제부터 풀고, 그다음에 어려운 거 풀고요. 못 풀겠다? 연필 굴려야죠. 운칠기삼이다. 절반은 사람이 하고, 절반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이 하는 절반 중에 또 절반은 우리가 하고 나머지 절반은 손님이 해요. 그러면 내가 하는 건 1/4이에요.
내가 제주도 10년 살았어요. 이제 좀 누려야 하지 않냐고 물어봐요. 아니죠. 지나간 10년 어차피 세월은 지나갔으니까 잊어버려야 해요.
여러분들 애들 자꾸 교육시키려고 하지 말아요. 어른들이 교육시키려고 하면 안 돼요. 너나 잘해야지!(웃음) 지금은 어른들이 문제예요. 얘네들은 각자 서로 다른 걸 알고 싶어 해요. 우리도 다른 걸 알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젊은 분들은 제발 시키는 걸 하려고 하지 마세요. 제가 1991년에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큰 울타리에서 안전만 책임져주고, 그 안에서 놀게 내버려 두자는 거죠. 내가 생각했을 때 옳다고 생각하는 걸 강요하지 않아야죠. 졸지 말란 말이에요! 악수할 때 허리 숙이고 고개 숙이고, 그런 사람이 해외 나가면 얼마나 당황하겠어요. 그러니까.. 저를 따라 하세요. ‘안 되는 거 안 자 빼고, 못하는 거 못 자 빼고, 불가능에 불 자 빼자!’
- (관객)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고민이 다 다를 텐데요. 대표님들에게 지금 나에게 풀어야 하는 숙제가 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 (서) 사실은 제가 어렸을 때 식료품집 딸로 태어났어요. 그때는 엄청나게 큰 시장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31년 만에 사람이 사라졌어요. 17시면 다 문을 닫고, 공실율 27%를 찍었어요.
그런데 그 시장이 올레 코스에 딱 들어가니까 막 잘 나갔어요. 흑돼지 돈가스 이런 아이디어 상품도 막 팔아요. 2013-14년 전국 1517개 시장 중에 1위였어요. 공실율 30% 찍을 만한 시장이 이렇게 바뀐 거예요. 아 여기선 박수치셔도 돼요(웃음).
문제가 있어요. 올레 시장이 사람을 빨아들이니까 주변 상가가 공동화현상이 벌어져요. 시장의 건물주들이 월세를 너무 올리는 거예요. 1년 단위로 막 올리니까요. 참 관광이 갖는 빛과 그늘인 것 같아요.
대평리는 정말 예쁘고 조용했던 마을인데요. 엄청난 대형 콘도 카페가 들어서서 지날 때마다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어요.
올레길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해외 하고도 일을 많이 하고요. 그러니까 사람을 써야 하죠. 지금은 정말 제대로 공부한 친구들이 와서 일을 돕고 스태프로 하고 있는데요. 일하는 것만큼 수익사업이 없으니까 그게 문제예요.
저희 회사가 공무원 같은 게 아니라서 이직률이 좀 높아요. 너무 좋은 일이니까 너무 행복해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3-5년만 되면 지쳐버려요. 이 월급 갖고 가정을 이어가기도 어렵고 고민이 많죠. 처음엔 제 조폭 동생만 데리고 했는데.. 이렇게 근근이 가고 있습니다.
(관객) 본인의 활동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세요?
= (강) 별로 없어요. 민원 하나도 없어요. 애당초 문제가 없게 원천봉쇄를 해버린 겁니다. 끝입니다.
(관객) 만약에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어떻게 하세요?
= (강)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어요. 답이 없다? 그럼 그건 애초에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문제를 내는 사람의 입장이 돼 보세요. 그럼 답이 보여요.
(관객) 혹시 본인의 앞으로의 꿈이 뭔가요?
= (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고향에 Jeep차를 타고 다니는 게 꿈이었어요.
제가 산티아고 갔는데, 육로로 국경을 넘었거든요. 아빠는 두만강으로 국경을 썰매 타고 왔다 갔다 해봤다고 하셨는데요. 그 국경을 보고 바로 반성했어요. ‘아버지 죄송합니다’하고요. 차는 안 탈 거니까 그것보다는 지금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걸어가는 게’ 꿈이에요.
저는 여한이 없어요. 기자로서 꿈을 펼쳐봤고, 지금은 길 내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요. 못 이룬 건 어쩔 수 없지만, 제가 노력할 수 있는 건 건강을 조금 지켜서 그런 날이 왔을 때, 걸어서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길 내는 사람이 쪽팔리게 차 타고 갈 순 없잖아요. 육로 코스 시작점에 ‘피스 올레길’이라는 이름도 미리 정해놨어요.
- (최) 저희가 이제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서요. 각자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마디 해주세요.
= (강) 우리는 너무 사랑을 주려고 해요. 제주도도 마찬가지예요. 사랑하는 방식은 다 다르잖아요? 국민학교 때, 병아리를 왜 죽여요? 만져서 죽이는 거예요. 반대로 내 방식으로 손대는 사람이 적어져야 해요.
저는 이미 죽었다 치고 비석을 세워놨어요. 그러면 나 자신에 대해서 이미 정리가 돼요. 아프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플 수도 있고, 그러다가 또 나아요.
본인이 아는 병으로 죽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뭐 다르게 다 죽더라고요?(웃음) 삶에 대해 조금 더 의연해져야겠다 싶더라고요. 내일 죽을 듯이 정리하고, 다시 나는 나무를 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서) 일본, 몽골에도 올레 컨설팅을 했는데요. 여러분이 사세보에 가면 그 길을 걷게 됩니다. 함께 하고 싶으시면 함께 찾아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강) 아, 제가 사실은 제가 여기서 빙고를 해서 500달러에 걸렸어요. 재수가 참 좋은 사람이죠? 선미가 제일 조용하더라고요. 매일 저녁 8시에 9시 사이에 늘 뒤에 있을 테니까요. 오시면 함께 이야기해 보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