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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한 광고 천재의 똥덩어리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

by all or review Jan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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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와의 전쟁>


광고 천재 이제석은 우리나라에서 특출난 사람이었다. 유명 광고 회사와 상업 광고의 러브콜을 제쳐두고 공익광고에 몸 담은 건 어언 10년.


그의 작품들은 이제 고전이 되었다.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전설이 되었다. 그가 전설이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압도적인 실력. 돈이 아니라 사람을 향하는 시선. 이제석은 왕좌에서 도통 내려올 생각이 없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했지만, 그 가시밭길마저 꽃길로 만든 사람. 다른 사람을 위해 그 꽃길을 넓힌 사람이 이제석이다.


물론 이제석은 달변가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결과물에 주목했다.


그래, 저거지. 저게 광고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려는 사람과 말리는 사람이요. 말리는 사람은 절대 하려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하기 위해서입니다. 뭐라도 합시다!"


그래, 저거지. 저게 명사지.


광고 천재, 이제석의 이야기를 당장 들어보자.


브런치 글 이미지 1


저는 광고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 셀럽과 달리, 일반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데요. 광고 분야가 생소한 분도 계실 것 같고요. 제가 주로 작업실에 처박혀서 1년에 1~2번 정도 강연을 합니다. 말 주변도 별로 없고요. 오늘 강연에선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거 하나, ‘이런 바보도 씩씩하게 살고 있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것 하나. 이렇게 해서 총 2개를 알아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 진지한 내용으로 꾸며봤습니다. 그러니까 편하게 들으시면 됩니다. 집중해서 안 들으셔도 됩니다(웃음).     


제 업이, 아이디어를 파는 직업이다 보니 24시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제목을 왜 ‘안 돼와의 전쟁’이라고 정했냐 하면요. 저도 좀 고민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제가 아직도 사회성이 좀 없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제가 항상 좌충우돌로 하려고 하면 자꾸 반대에 부딪히더라고요. 왜 자꾸 사람들이 뭘 하지를 말라고 할까. 뜯어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쭉 돌이켜보면서 ‘왜 나는 자꾸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까’ 싶었을 정도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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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딴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유치원 때는 춤추기가 너무 싫으니까 율동을 안 하려고 바닥에 드러누웠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왜 그러냐 할 정도였고, 어머니가 울면서 유치원을 나가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는 주로 했던 창작활동이 ‘국어’를 ‘굶어’로 바꿔 쓰고 막 이런 것들이었어요. 그때는 이걸 귀엽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없었어요. 바로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나오죠(웃음). 그땐 ‘왜 나를 구타하지?’ 싶었어요.     


선생님이 예뻐하실 리가 없죠. 많이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시간이 지루하면 딴짓을 하게 되잖아요. 주로 이런 낙서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지금 보면 왜 그렇게까지 때려야 했을까 싶었는데요. ‘국어’에서 ‘북어’ 뭐 이런 거요(웃음).     


뭘 보고 딴생각이 드는 건 죄가 아닙니다. 제 강의가 재미없어서 딴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 작업을 한 번 보신 분들은 조금 놀라기도 합니다.      

출처 : 뉴스1출처 : 뉴스1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죠. 제가 하는 직업은 90% 싸우는 일입니다. 인허가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요. 제가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제가 MZ세대입니다(웃음). 이런 거 하다가 제가 늙은 거예요. 한 번 웃기려고 국가상징물로 나름 장난을 치려다가 엄청 많이 싸웠습니다.      



어쨌든 그 시작은 저런 엉뚱한 상상력이나 발상에서 시작했습니다. 혹시 이 중에서 자녀분들 데리고 타신 분들이 계시면 ‘애가 뭘 하겠다고 하면 뭐라도 됩니다’라는 걸 제 삶으로 고증하겠습니다. 가장 불행한 건 뭘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죠. 저렇게 맞아가면서도 ‘굶어’를 쓰겠다면 해야죠.      


중장년층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처럼 낙서하던 놈도 먹고 산다는 겁니다. 이 배를 타시면서도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겁니다. 이 배 타신 것도 용기이실 텐데요. 제가 최근 들어서 이걸 느꼈습니다.     


뭔가 우리가 대단한 목적성이나 이유, 계획을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닙니다. 대단하고 그럴싸한 명분이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 번 해보라는 거예요. 저와 다른 사람들 많죠?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얘는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거예요. 각자가 사는 방식이 다 다르고,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내가 했던 이 행동이 그다음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완벽히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여기서 ‘이 날 이때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어야 한다’ 생각했던 분 계세요?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계획이 없다는 겁니다. ‘살면서 이게 이익이겠지?’라고 생각해도 어차피 안 된다는 거예요.     


사실 저도 이 배도 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덜 끝낸 일도 있고요. 그래도 타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안 해본 것보다 해보는 게 나으니까요. 특히 어르신들은 늦둥이 보실 분들 빨리 보시고요(웃음).     


‘굶어’를 다시 떠올려보죠. 저만 이런 짓거리를 했던 게 아닙니다. 인류는 글도 배우기 전에 그림을 막 그렸습니다. 원시 미술을 떠올려보죠. 벽화에 그려진 동물의 굴곡이 실제와 비슷하죠. 인간 본연의 본능을 거세하지 마시고, 절대적으로 바라보자는 겁니다. 벽화 중의 일부는 어지간한 미대생보다 잘 그린 걸 수도 있습니다(웃음).     


내가 A를 보고 B 혹은 C를 생각하는 건 죄가 아닙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행위죠. 숭고한 인류가 최초부터 했던 바람직한 행동입니다. 따라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건 응원해줘야 할 일입니다. 하지 말라고 쥐어패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기술의 사례도 굉장히 많죠. 저항을 줄이거나 빛을 반사하는 것 등등 모두 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온 거죠. 이런 행위가 시작은 다소 미약하지만, 이런 걸 하던 애들이 커서 실리콘밸리에 갈 수도 있고, 저처럼 광고로 먹고 살 수도 있고요.     


어떤 행동을 통한 결정들은 내가 알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결과로 나비효과를 불러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뭐든 해보시라는 거예요.      


저는 이 광고 분야를 파려고 공부를 했던 사람인데요. 이런 게 재밌어서 미술 한다고 하니까, ‘느그 아버지 등골 빼먹는다’면서 미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거나 FM적인 길을 가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전공을 이 쪽으로 선택했죠. 제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기적인 인간이 됐습니다.      


돈 다 끌어모아서 제가 하고 싶은 걸 다했습니다. 후회 없이 남이 고생하든 말든 내 하고 싶은 거 하겠다 했습니다(웃음). 미술학원 가서 미팅도 하고요. 미대 가서 돈이 없으니까 간판 만드는 일을 좀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때 만든 간판이 지금이랑 비슷한 게 많습니다. 그걸로 학비와 용돈을 이어갔습니다.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도 했고요. 교생 미술 교사도 했고요. 우수한 성적으로 미술대학을 졸업했는데요. 이게 그때 당시 통지표인데요. A밖에 없습니다. 살면서 이런 통지표를 보실 일이 없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찍어두시는 게 좋습니다(웃음). 저렇게 하려면 특출나게 타고나야 합니다.     


미대는 교수님이 삘 받는 대로 성적을 주거든요. 이건 잘했어 왜냐면 그게 맞으니까. 이건 별로야, 왜? 그건 틀린 거니까. 뭐 이런 식입니다. A와 B의 구별이 주관적입니다. 제가 학점 4.47을 받아서 대학에서 금메달도 받았는데요. 제 이야기가 KBS 드라마로 제작되고, 책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재밌다는 거겠죠.      


하지만 취업이 안 돼서 상실한 모습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내가 잘났는데, 한국에서 취직이 안 되는 거예요(웃음).     


한국에서 별 볼일 없겠다 싶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갑니다. 제가 유학을 가려고 카세트테이프로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이걸 하도 많이 들으면, 재생했을 때, 영어 회화가 속도가 느리게 나옵니다. 집이 워낙에 못 살아서 테이프가 다 늘어진 거예요. 돈을 다 긁어모아서 미 8군 부대에서 강의도 했고요.      


결국 뉴욕에 있는 SVA에 갑니다. 알려지고 안 알려지고는 어차피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용이 좋아야 합니다. 그때는 이 학교가 유명한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뭐,, 계원 전문대 정도? 아주 유명하지 않았죠. 지금은 제가 나와서 유명해졌습니다(웃음). 가난했지만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양말이 없어서 정말 휴지로 둘둘 둘러매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때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니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제가 살던 곳이 쥐가 많았는데요. 쥐가 찍찍거리길래 귀엽기도 하고 대충 살 수 있겠다 싶었는데, 2마리가 새끼를 낳아서 8마리 까지 늘어나더라고요. 다 잡아 죽여야 했습니다. 빈대도 많았고요. 물리니까 붓기가 잘 안 빠져요.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고요. 배가 고파서 인도 사원 무료 급식소도 갔습니다. 밥 한 그릇 얻어먹으면 노래도 해야 해요. 동네 홈 리스가 다 오는 자리였어요. 더 있다간 죽을 것 같아서 나옵니다.     


돈도 없지만 제가 너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말도 안 통하는 곳에 가서 살았죠.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그 뒤로 운이 좋아서 상을 좀 많이 받게 됐어요.     


이때는 이런 무대에서 수상소감을 하라길래, 제가 ‘인턴 자리 하나를 구합니다’ 했더니 명함을 엄청 많이 받았어요. 취업도 어렵지 않게 했었던 것 같아요. 고작 상 받았다고요. 상받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찐따처럼 행사장에 있다가요. 상받은 후에는 마음이 풍요로워졌습니다. 20대 때 원하는 걸 다 가졌습니다. 취업, 수상, 관심 등등이요. 방송 3사에 제 이야기가 다 나왔어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 가졌던 설움은 지금 다 해결됐기 때문에 그 원한이 남아있지 않아요. 원하는 걸 다 했어요. 드라마도 찍고, 책도 팔고요. 그때 당시에 보시면, 명사 강의자 정재승/한비야랑 같이 있잖아요? 그때는 제 몸값이 비슷했어요. 저 때 강의 좀 열심히 할 걸 그랬습니다(웃음). 그땐 ‘이만하면 됐지’ 싶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냥 제 작업실에서 작업만 했습니다. 저분들은 지금 몸값이 10배가 됐고요(웃음).     


제가 뭐 다 가져봤는데,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더라고요. 잘 나가는 걸로 충분하지 않더라고요. 배가 고픈 건 채울 수 있지만, 눈이 고픈 건 못 참더라고요.      


저는 저 좋은 회사들을 때려치웠습니다. 저런 회사를 가면 복지 좋고, 밥도 막 뷔페상으로 차려주시고, 어디 가면 접대도 해주시고요. 그런데 그런 물질적 화려함보다 제 마음속 갈증은 내가 만들고 싶은 작업이 너무 많은데 자꾸 안 된다 압력에 있었습니다. 저는 막 안 된다고 하면 발작 버튼 눌린 것처럼 하고 싶어져요.    

 

그래서 제가 다 때려치고 창업을 합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만듭니다. 여담으로, 제가 고등학교 때 학원 가는 걸 보니까 강사 이름 보고 가는 애들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네임드 강사는 망하지 않겠구나’ 싶더라고요.      

출처: 연합뉴스출처: 연합뉴스

제가 20대에 전체 국제 광고 공모전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연소 최다 수상이었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는데 다 싫다고 했습니다.      


‘왜 너는 대기업 안 가냐’ 주위에서 저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왜 그 고액 연봉과 그 좋은 커리어를 버렸느냐’고 했는데요. 저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든 깃발 아래 전쟁을 승리해 왔기 때문에 아직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인생에서 아이디어가 싱싱할 때 꺼내놓은 작업들이 우리 회사 이름을 걸고 나가기 때문에 계속 연락이 와요. 지난 10년 치를 보고 계속 연락이 옵니다. 그때 조금 가난했더라도 고집스럽게 하는 걸 보니 정말 잘했다 싶더라고요. 모두 다 뜯어말렸지만, 내가 맞다고 생각한 걸 하니까 선택을 잘한 것 같아요.      

출처: 스카이데일리 네이버 포스트출처: 스카이데일리 네이버 포스트

제일 반대가 심했던 게, ‘왜 값비싼 광고를 안 하고 공익광고만 하겠다고 하냐’는 거였습니다.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걸 할 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지키고, 배고픈 사람들 밥도 주고요.      


이 분야를 계속 파면 공익광고의 지평을 열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주로 가난한 NGO들을 만났습니다. 계속 광고를 해서 10년간 적자를 보다가, 그 이후부터 돈이 조금씩 모이더라고요. 감히 말씀드리지만 저희만큼 세계에서 다채롭고 깊이 있고, 심오한 공익광고 포트폴리오 가진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요. 10점 과녁을 계속 때리면, 아예 뚫립니다. 공익광고 그 사람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10년 하면 입문, 20년은 중급, 30년부터 고급반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느 순간에는 ‘공익광고의 아버지가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계속하다 보니까 해외에서도 일이 들어오고요. 뭐 물론 예전에는 광고 만들어주고 피자 2판만 얻어먹은 적도 있습니다. 계속 부조를 했습니다. 방송, 강연 안 하고 계속 작업만 했습니다. 대학 강의 제의, 특강 제의, 아침 방송 다 거절했습니다. 지금보다 인지도는 더 높아졌을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사람이 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제 포트폴리오는 다 제 거예요. 남의 거 빌려다가 한 게 아니에요. 오롯이 내 거죠.    

 

작업실 처박혀 있었던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장애인 단체와 협업하기도 하고요. 광고쟁이로써 이쪽 분야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사실 사회 각계각층, 좌우할 거 없이 다 만나고 다닙니다. 아프리카도 가고요. 공익이라는 영역이 굉장히 애매하긴 한데요. 여러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공익적인 활동이면 적극적으로 합니다.     

출처 : 세이프타임즈출처 : 세이프타임즈

저는 광고에 글씨는 많이 안 넣습니다. 건설 노동자 중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이 많아요. 현장에 외국인도 많은데요. 안전 수칙이 뭐 길게 쭉 써져 있어요. 잘 안 보죠. 그래서 이걸 그림으로 다 쪼갰죠. 저희가 이런 식으로 광고를 만듭니다.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이요.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니까요.     


아직도 댓글에 욕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본인들 계파가 있는데, 제가 자꾸 이상한 걸 만드니까 ‘어디서 본 것 같다’, ‘표절 아니냐’, ‘저게 예술이지 광고냐’ 등등이요. 내가 뭔 광고를 해서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이런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왔더니 너무 광고가 많아요. ‘외국 나가도 간판 붙이면 서울이 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그래서 저희가 정보의 홍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광고가 참신하게 보일까 고민했어요. 그 나물에 그 밥 말고요.     

출처: 경찰청출처: 경찰청

저희 광고를 계속 보다 보면, ‘우리 딸도 만들겠다’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별로 한 게 없어요. 그냥 글자 몇 개 쓰는 거죠. 원래 명품도 보면 특이한 건 없습니다. 단순해야 오래가고 질리지 않는데요. 살짝만 기교를 부려야 합니다. 너무 심하면 질립니다. 대단한 서사나 카피라이팅이 없어도 우리가 보여줘야 할 것들을 보여주면 됩니다.      


이 세상엔 말이 너무 많아요.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주의인 거죠. 회사에서 인정받으시려면 입을 닫고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그게 처음엔 바보 같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짜는 결국 드러납니다. 지금 뭐 인정받고, 대단히 칭찬받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최근 10년간 작업만 죽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국내 최대 규모의 공익광고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광고 전략이 먹혔던 것 같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꼭 넣어야 할 것만 넣어서 본질에 가까운 것만 하는 거예요. 오죽하면 가발광고 사장님한테도 연락도 옵니다. 마찬가지로 대단히 평이하지만 말을 줄이고 위트를 넣고요.     


사람은 정보에 피로감을 많이 느낍니다. 예를 들어 디자인팀의 경우를 보면요. 아무리 우리가 걷어내고 덜어내고 단순하게 하자고 해도, 옷을 입는 사람이 못하겠다고 하면 끝이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하고 디자인팀을 다 해산시켰습니다. ‘소용이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대신 광고에 집중하되,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연예인, 화려한 카피문구, 방송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그냥 ‘산은 산이고 자연은 자연이다’ 마인드입니다. 최대한의 단순함과 미니멀리즘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본질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린보트 로고도 제가 만든 거 아세요? 모르시죠? 이 로고는 최열 이사장님하고 저하고 앉아서 1시간 만에 만든 거예요. 무료로 만들었습니다. 그 덕에 배도 타고 뭐 좋습니다(웃음).   

  

저희 전략 중 또 다른 건 뉴스에 나오게 하자는 겁니다. 공익 광고를 하니까 아군이 많습니다. 환경 문제는 언론사도 똑같이 공감하는 위기니까요.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저희 작업이 알려진 사례가 많고요. 그런 관심 덕분에 저희가 공익 활동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옛날로 치면 ‘병풍 제작자’ 같다는 생각을 해요. 뒷 그림을 그려서 메시지를 부각하는 거죠.     


저희가 사실 가장 잘하는 광고는 길거리 광고인데요. 이때만 해도 돈을 벌려면 TV 광고, SNS 광고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건 아니다’ 싶었죠.      


출처 : 적십자 출처 : 적십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광고는 옥외광고입니다. 3천 년 전에 스핑크스를 대상으로 한 옥외 광고가 있더라고요.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광고를 계속해야 되겠다’ 싶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요.  

    

저희는 다 먹다 버린 부속 고기 같은 데 집중해요. 왜냐하면 보통 광고판이 비싸거든요. 보통 상가 1층은 5천만 원~1억원 정도까지 정말 부르는 게 값입니다.      


근데 저희 광고주들이 가난하잖아요? 롯데리아 가면 쟁반깔개 아시죠? 그 광고는 한 달에 부르는 게 값입니다. 그 대신 저희는 부속 고기를 야금야금 뭉쳐서 소시지를 만들어서 팔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소규모 회사는 ‘없는 시장’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는 반전 캠페인도 하고 있고요. 누군가는 별로 가치가 없는 광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미국 한인타운에서 가장 돈 많이 버는 회사가 뼈다귀를 고아서 곰탕 만드는 집이래요. 매출 순이익이 제일 많이 나왔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뼈다귀는 쓰레기였거든요.      


그게 진짜 가치 재창출의 기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저희는 음지를 지향합니다. 남들이 버렸다고 생각하는 거, 그런 걸 키워서 고점이 되면 팝니다. 버려진 공간을 리폼해서 흉물로 두지 말고 뭐라도 하자고 생각합니다.      


왜 굳이 저런 짓을 할까 싶죠? ‘왜 굳이 철판을 일일이 다 자르냐’. 미친놈들도 아니고요. 저는 물건에도 영혼이 깃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정성과 품을 쏟아놓으면 그만큼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해외에서 대단한 규모의 작업들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해외 나가면 물가가 우리나라 보다 5-6배 비싸고 속도는 20배 느립니다. 일 한번 시키면 3일 있다가 연락 옵니다. 어떨 땐 1시간 일하다가 집에 갑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근성 이런 게 해외에서 먹히겠구나 싶어서 해외 시장을 공략합니다. 다 느리고 게으르고 멍청해요. 한국 사람처럼 치밀하고 영리한 사람이 없습니다. 현지팀을 짜면 시장을 다 먹을 수 있습니다. 정말 해외에 나가면 뭐라도 먹고 삽니다.   

 

저는 남들 다 몰리는 데 가지 말고, 우리 젊은이들이 ‘남들 안 몰리는 데 갔으면 좋겠다’ 싶어요. 우리나라가 과거에 인적 자원으로 성공했는데요. 치킨집 사장이 대학원 출신인 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드세요? 자기 분야로 치고 나갔어야 하는데, 공부는 시켜놓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못 가르친 거예요.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 닭을 튀기냐고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 보내서 더 배우게 하고 경력을 쌓았어야 하는데, 인적 자원이 과잉 공급돼서 경쟁이 치열한 거예요. 그나마 다른 나라는 적절합니다. 우리는 고학력자 비중이 너무 커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꾸 뭘 하면서 도전해야 한다는 거예요. 오랑캐가 되어야 해요. 없는 시장을 만들고 없는 시장에 가서 거기를 정벌하러 가야 합니다. 우리끼리 뜯어먹고 싸우다니요. 그러면 안 됩니다. 

    

다들 말리지만요, ‘왜 대표가 앞장서서 저런 난리를 치냐’라는 질문을 듣습니다. ‘위험하고 더럽고 힘들고 험한 일을 왜 그렇게 많이 하느냐’는 말을 듣습니다. 정말 다 말립니다.      


그런데 그런 걸 해봐야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전쟁을 해봐야 장군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나가서 싸워서 이겨도 보고, 져봐야 전쟁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고학력자 리더 중에 실무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시험을 잘 치든 좋은 경로로 디렉터 자리에 가면 일을 잘 시켜야 하는데요. 일은 모르니까 그냥 야단만 치고 재촉만 하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가이드를 안 준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다쳐가면서 배웠더니 뜻밖의 일이 생겨요.   

   

제 몸속의 DNA 중 공학이 있었어요. 철을 다루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건 단위가 크거든요. 대신 목숨 걸고 하는 거예요. 저걸 해보니까 이제는 일반 광고 회사에서 넘볼 수 없는 아주 위험하고 어려운 시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조형물인데, 광고대도 되고, 음수대도 되는 것들이죠. 아트, 계획, 시공까지 다 해줍니다.

   

광고를 배웠지만 광고쟁이들의 패러다임이 남아 있었더라면 그냥 One of Them이 됐겠죠. 어떻게 했냐 하면, 그냥 하다 보니까 되는 거예요.      


결과를 하나씩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면 큰 그림이 됩니다. 여기저기 해놓고 엮으면 큰 그림이 됩니다. 해보면 뭐든 다 공부가 됩니다. 저는 막 페라리를 뜯고 난리를 칩니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이런 겁니다. 제일 허름하고 제일 쓸모없어 보이는 자투리 공간에 투자해서 싹 고치고, 그걸 써먹는 걸로 많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가장 비싼 동네에 가지 않습니다. 저희는 항상 무덤 옆, 자살했던 분들 계셨던 곳, 불났던 집을 보고요(웃음). 거기를 싹 리뉴얼해서 손님도 부르고요. 그럴싸하게 하는 거죠.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미친놈이다. 하지 마라’, 어머니가 ‘제발 하지 마라’라고 합니다. 저는 반대로 ‘말리지 마라’(웃음). 결론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한다는 겁니다.      


제가 제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요. 한 10년 정도 투자를 하고, 계속 비용이나 에너지나 시간을 투자하는 거죠. 조금 하다가 때려치우고 나무가 자라지 못합니다.      


남들 투자하지 않는 데 해야 하는 거죠. 남들이 몰린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정말 중요한 보물들은 땅 속 밑에 있거나 오지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보물은 해양 아래에 있습니다.      


‘쟤 뭐야? 천재라고? 저 새끼 돌았나?’ 싶으시겠죠. 그런데 정말 귀인은 어디 숨어있습니다. 피 투성이가 될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 좀비처럼 찾다 보면 나옵니다. 감나무 밑에서 기다리면 안 됩니다. 배 탔으니까 귀한 자리를 내서 강연도 듣고 하는 거 아닙니까.     


얼마 전에 금 값이 최고조일 때 사람들이 금을 사러 오더래요. 금값이 오를 대로 올라서 종로에서 손님들을 보면 다들 의아하더라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남들 안 하는 짓 해야 한다는 거죠. 다 하려는 것에 줄 서면 뭐다? 평생 남 뒤에서 해야 하는 거예요.      


선견지명이라는 건, 이렇게 보다가 ‘쟤는 좀 괜찮네? 평가 절하돼 있어.’ 그런 곳에 투자하는 겁니다. 남들 다 줄 서는 데 가지 말라는 거예요. 줄을 섰다는 건 이미 끝난 거예요. 투기 세력이 올리면 사람들이 다 줄 서 있으니까요.      


오늘 이 시간부로 ‘안 돼!’를 ‘다 돼!’로 바꾸세요. 세상에 버릴 경험은 없습니다.      


그 한마디를 드립니다. 손해를 봤다면 제가 A/S 해드리겠습니다. 뭐 저희 회사에 취직시켜 드리든지요(웃음). 배 내리시면 제일 먼저 오늘 하고 싶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내리시자마자 바로 하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나중에 연결 연결, 튀기고 튀겨서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일단 뭐가 재밌어 보이면 일단 해보시라는 거고요.      


바람이 한 번 확 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게 있으면 (애들 괜히 기죽이지 마시고) 해보게 내버려두라는 거예요. 그건 신이 주시는, 내 몸속에서 꿈틀대는 욕구입니다. 실패하더라도 그 뒤에 다른 보상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려는 사람과 말리는 사람이요. 말리는 사람은 절대 하려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하기 위해서입니다. 뭐라도 합시다. 감사합니다.     



QnA


출처 : 인사이트출처 : 인사이트

- 아이디어의 원천은 인풋 아닌가요? 아이디어에 원천이 뭔가요?

= 먹지 않고 싸는 사람이 없듯이, 인풋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난독증이 있어서 직접 경험하고 그래야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배를 타면 심심하고, 멍 때리다 보면 소화가 좀 되더라고요. 저도 몇 개 소화된 고민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많이 경험하시고, 이런 적막한 공간에서 멍 때리시면서 소화하시면 반드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 ‘안 돼 알레르기’가 있으신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모든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안 돼’를 말씀하시는지요?

= 그러니까.. ‘왜 이런 놈이 세상에 득이 되는 일을 하냐’는 거죠(웃음).. 좋은 일도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 또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죠. 제가 어려서 모유를 끊을 때 젖병을 집어던졌대요. 장롱에 막 머리도 박았대요.      


자기 욕구가 강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이런 길을 선택한 이유는 누가 하라고 했냐, 아니에요. 내가 좋아하고 끌리는 건 이유가 없는 거예요. N극과 S극이 끌리는 걸 대단한 설명으로 얘기하는 건,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왜 저럴까 그런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많은 경험을 하라고 해주셨는데, 쉽지 않아요. 어떤 어른은 책을 읽으라고 많이 하셨는데요?

= 쉽지 않은 건 손해 보기 싫어서 그래요. 내가 그 얘기를 깜빡하고 안 할 뻔했네. 법륜 스님이 그 얘기를 하거든요. 모험이라는 건 손해 보는 것까지 감수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책은 ‘누가 먹고 산 똥’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먹고 싸야 합니다. 왜 남이 싸놓은 똥을 먹으려고 그러나요. 저는 차라리 도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책을 쓰세요. 내 강연도 마찬가지예요. 뛰어노는 게 더 나아요.     


저는 살면서 책을 1권 썼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내가 경험한 똥을 보고 좋아한다는 거예요. 교보문고 가면 책다운 책을 보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도서관 가야 합니다. 저는 그걸 읽을 시간에 차라리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웃음), 배도 타고, 배에서 떨어져도 보고(웃음) 그런 게 책 100권 읽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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