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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자아의 속삭임

버릇없네...

by for healing Mar 10. 2025

  조직검사 결과는 3기였다.

2기까지는 수술로 거의 완치라고 볼 수 있지만 3기라면 방사선치료와 어쩌면 호르몬치료도 병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수술하고 오늘 선생님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의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물론 우리 가정의 어떤 계획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닥쳤고 그 일 때문에 많이 당황하고 걱정하긴 했지만 당사자인 남편을 비롯해서 온 가족이 신앙의 힘으로 또 가족 간의 사랑으로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잘 다독여가며 '이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매일매일 누구에게랄 것 없이  기도문 외듯 하며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찾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으로는 3기이면 방사선치료의 시작 시기는 6개월 후가 될지 어쩌면 5,6년 후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그 치료는 필수라고 한다. 잠시 멍해있다가 (요즘 들어 멍해질 일이 많다. 마치 무슨 lag 걸리는 것처럼...)

"수술로 깨끗이 제거가 됐는데 전이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럼.. 꼭 해야 하는 치료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그리고 방사선치료까지 마치고 나면 어느 정도 안심해도 되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우리의 애타는 속과는 달리  웃으면서

"어유~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으세요? 이제 막 뽑고 거동이 좀 편안해지셨으니까 회복에나 신경 많이 쓰세요~뭐든지 잘 드시고요. 3개월 후에 다시 오셔서 혈액검사하시고 그다음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2기이든 3기이든 치료는 의사인 제가 하는 거니까 걱정 마시고 일단은 잘 드시고 관리 잘하세요" 한다


 걱정이 왜 그리 많냐는 말에 딱히 더 질문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 인사성 바르게 꾸벅 인사하고 나오면서 남편에게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냐니, 자기 일 아니라고~너 같으면 걱정 안 되겠냐? 2기인 줄 알았는데 3기라고 그러지, 방사선치료해야 한다 그러지, 그걸로 치료가 끝날지 말지도 모른다 그러지~" 

누구에게인지모를 답답함과 막막한 두려움에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못다 한 말을 해댔다.


 잠시 숨 돌리고 진정한 후, 내가 이 정도니 남편은 더 심란하겠다 싶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3기라서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항암 안 하는 게 어디야? 그치?" 억지 미소로 위로했다.

남편도 맥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인양

"그러게, 2기쯤으로 생각했는데..." 한다.


 그러고 나자 또다시  난데없이 고개를 드는 불신앙과 못된 자아의 속삭임...

-얼마 전에 작은아이 문제가 막 해결되었는데  또?-

-암이라는 것도 기가 막혔는, 그냥 2기쯤으로 끝내주시지-

-왜 하필 또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자꾸  생기지?-

-방사선치료를 50회 가까이 어떻게 받지?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교회식구들이랑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버릇도 없고, 기억력도 참 안 좋다. 받은 것에 대한 감사도 참 빨리 잊는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참~~ 참을성이 많으시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도 느껴봤지만 부모가 10번 잘해주다가 한 개만 지들 맘에 안 들게 하면 입이 댓 발 나와서는 발을 구르며 문을 쾅 닫고 다니지 않던가!!!


하필 우리 가정이냐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왜 우리 가정이면 안된다는 거지? 우리 가정은  다른 가정에 비해 뭐가 특별한가?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안 된다는 무슨 조약이라도 있었나? 그나마 다른 전이가 없어 수술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지금까지 산 것도 다 '하나님 은혜'라고 눈물로 찬양하며 기도할 때는 언제고, 조금만 안 좋은 일만 생기면  자동반사적으로 나는 또 하나님께 눈을 흘긴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가 아니라

"주 뜻대로 마옵시고 나의 뜻대로 해주옵소서"의 못된 내가 된다.


  얼마 전, 어느 목사라는 사람이 대놓고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혼나!!!"라고 했었다.

그걸 TV로 보면서 기가 차고 어이없어하며

 '하나님은 저런 사람 벌 안 주시고 뭐 하시나?' 했던 생각이 났다.


  나는 그 사람과 뭐가 다른가?

우리 인생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허한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여전히 가라앉는 기분으로 남편과 나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결과를 궁금해하는 주변 분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한결같은 반응이다.

" 그러셨군요... 그래도 뭐... 다 잘 될 겁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딸들도 조금 실망한듯했지만 바로 긍정에너지를 발사한다.

"의사도 모를 수 있어, '나중에 다시 검사했는데 어? 괜찮은데요? 방사선까지 안 해도 되겠어요' 이럴 수도 있어. 그리고 또 방사선치료로 끝낼 수 있다면 항암 안 하는 게 어디야? 괜찮을 거야. 아빠 이제부터 진짜 잘 드시고 운동 많이 해서 체력 키워야 돼~더 열심히 기도해야지, 뭐~~"


 어쩌겠어? 답은 나왔는데...

'더 열심히 기도'

다시 착한 아이모드로 돌아와서 버릇없이 덤벼들던 나의 투정을 묵묵히 듣고 계신 그분 앞에 엎드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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