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후
여독 :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 다시 일상생활로 분주히 복귀하기 바빴다. 일상으로 돌아와 쉬었던 일을 하고 가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모처럼 주어진 쉬는 날, 카페에 앉아 여행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행 후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여행에서 처음 만났던 남자분에게서 카톡이 왔다.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동시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카톡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하자면, 패키지여행 마지막날 조별로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함께 찍었다. 마침내 핸드폰으로 찍게 되었고, 사진 공유를 위해 카톡아이디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용건은 이랬다. 함께 면세점에서 다니던 여행 마지막 날 우연히 영화 범죄도시 이야기를 꺼냈었고, 영화 티켓이 두 장 있는데 범죄도시를 안 봤으면 같이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마침 영화도 안 봤겠다, 여행 친구라도 생긴 것 마냥 기뻐서 만나서 여행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후 마주한 주말.
햇볕이 따사로운 6월, 여름의 초입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꽤 멀었다. 대중교통으로는 거의 두 시간, 차로는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였다. 중간 지점에서 보자고 했으나 선뜻 내가 있는 곳까지 와준다고 하여 마다하지 않았다.
여행 후 처음, 그것도 한국에서는 처음 만나는 것이기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만나는 그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내 기억에는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이었던 그였기에 제법 내 이상형에도 부합하였고, 예뻐 보이기 위해 화장에 공을 들이고 옷도 신경 써서 입은 것을 보면 나도 이성적인 호감이 꽤나 있었나 보다.
영화관에 먼저 도착한 나는 주차를 하고 올라온다는 그를 기다렸다. 영화시간에 늦어 뒤늦게 나타난 그의 첫 모습을 채 느끼기도 전에 우리는 헐레벌떡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은근히 퍼져오는 비누향의 포근한 향수의 향이 설렘을 안겨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 숫기가 적어 말이 없는 나에게 먼저 말 놓으라고 편하게 대해주려는 그의 노력이 보였다. 항상 막내의 삶을 살아서 그런지 리드하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었는데 먼저 이끌어주니 마음이 놓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바로 밑 상가에 있는 샤브샤브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첫 만남은 떨림과 설렘이 공존하고 있어 첫 만남 첫 식사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던 것 같다. 서로의 간단한 호구조사를 하며 그와의 첫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 만남이 이어졌다.
서로의 거주지를 벗어난 인천에서의 만남이었다. 첫 만남 때보다는 한결 편해진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탐색전이다. 그의 평소 옷 스타일, 매너, 내가 싫어할만한 행동을 하는지 등을 지켜봤다. 점심 식사 때였다. 갑자기 나에게 손을 내밀며 손에 땀이 좀 많다며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만져보니 생각보다 더 손이 흥건했다. 자연스러운 우리의 첫 스킨십이었다.
이후 여느 커플들과 다르지 않게 거리를 구경하고 쇼핑하며 카페에도 가고 시간이 뉘엿뉘엿 져서 저녁식사까지 함께했다. 왠지 모르게 헤어짐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시간은 멈춰주는 법이 없었다.
밤이 새까매지도록 인천에서 시간을 보낸 후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우리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곡이 울려 퍼졌다.
"i love you baby~"
어색하고도 긴장하게 만드는 분위기에 휩싸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차가 우리 집을 코 앞에 두고 한편에 멈춰 섰다.
"나랑 만나볼래?"
자연스러운 고백이 이어졌다.
유난히 달빛이 밝게 빛나는 간질간질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