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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Sep 01. 2023

너와 나의 시선은 무엇으로 남으리

(1부) N의 왕밤눈은 영원(永遠)이 되었지



6월 초여름을 지나고 있는 지금, 


보통 퇴원하면 링거 파워로 한동안은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유독 덥고 습해서 그런지 링거 파워가 통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산책하러 나갈 때 책을 챙기게 되면서 짐이 많아져 무겁고 힘이 더 빠진다. 


그러면 산책 다녀와서 쉬었다 나중에 짐 챙겨서 카페에 가면 되지 않겠냐 의문할 수 있겠지만 놉! 아니다. 


한번 외출하고 다음이란 있을 수 없기에 외출한 김에 쉬엄쉬엄 산책하다 커피도 마시고 쉬었다 배고프면 밥도 먹으면서 사심을 다 채워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 맞물려 병원, 집콕만하다 이번 산책을 시작하면서 카페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음식점에서 밥도 먹어보는 생활을 하기에 오랜만에 즐겨보는 문화생활(?)의 유혹을 이기고픈 마음이 하나도 없다.


예를 들면 '음~ 커피 냄새!' 하면 카페에 앉아 있고 '아! 고기 냄새!' 하면 음식점에 앉아 있는 이런 식의 산책을 하고 있다. 어느새 산책보다는 식도락 기행을 하는 듯하다. 옆구리에 책 한 권 끼고서.


그렇다. 야심 차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 계획도 세웠는데 집중이 될 만하면 글자가 이마를 딱 때려 정신이 화들짝 깨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책의 위치가 옆구리가 되었다. 야속하게도.


그날도 별다르지 않게 카페에 앉아서 한량의 모습으로 커피잔에 커피를 휙휙- 젓고 있을 때였다. 이런 기분을 예전에도 느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흐리다. 골똘히 생각하고 생각하며 느껴보니 어느새 그때로 돌아가 그 시절의 나를 만나고 있었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그 과정을 퍼즐 맞추듯 했는데 딱 한 조각을 찾을 수 없어 다 그려진 퍼즐 판을 들고 서성이던 그 언저리쯤의 시간으로. 


때는 30대 초반으로 맨땅에 헤딩하며 시작한 일은 그럭저럭 잘 되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열병 같은 걸 앓았던, 심장이 답답해서 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그런 날들이 미국 여행으로 이어지던 그 시간으로, 그때의 심장 답답한 열병은 독서로 답을 구할 수 없었음이 한몫하고 있었다. 





"조용히 해봐!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차에 사람 태운 거 처음이라고! 말했잖아!"


차 안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그렇다. 운전하면 기동력이 좋아져서 더더욱 큰 부(富)에 다가감에도 불구하고 운전하지 않고 버티다 이제 막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을 미뤄왔던 이유는 간단하다. 전깃불 나가듯 언제 어떻게 정신이 아웃되어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에 운전을 꺼린 탓이다. 


그렇지만 1~2년 사이 그런 일은 없었으며 대중교통비로 쓰인 비용이 이미 차 한 대 값을 훌쩍 넘긴 듯하고 체력적으로도 벅찬 데다 무엇보다 뚜벅이는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큰 다짐 후 운전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어쩔 수 없이 일행을 태우게 되었고 태우기 전 안전 수칙을 말했음에도 목숨을 안일하게 여기고 웃고 떠드는 이 모지리 N과 일행을 향해 소리친 것인데 미안해졌다. 곁눈질할 새도 없이 가장 위험한 조수석에 앉은 N에게 말했다. 


"앞에 책 있어, 그거 읽고 있어요... "


감정이 격양된 것은 처음이라 놀랬는지 눈을 왕밤만 하게 똥그랗게 뜨고 N이 나를 보다 책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맞다. 그날의 N의 눈빛도 영원(永遠)이 되었다. 그날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책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너 한 번 나 한 번 좋아하는 책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나날이었다. 


대체로 취향이 맞지 않아서 N이 추천해 주는 책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날이 더 많았다. 



N과 일하는 동안에는 카페를 컨텍하거나 미팅룸을 빌리거나 그도 아니면 아는 회의실에서 일하거나 그도 여의찮으면 길바닥 아무 곳에 자리 펴고 앉아 일하곤 했는데 그중에 미팅룸에 앉아 일하던 그날이었다.


"J야, 커피 그만 휘휙 젓고 그다음을 이야기해 줘야 일을 진행하지."


"N아, 일하고 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거 같아. 일은 잘되고 있는데 난 너무 ..좀 그래." 휘휙 젓고 있는 빨대에서 손을 떼고 N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그러자 N은 노트북을 타닥타닥하더니 미팅룸에 있는 빔프로젝터로 영화 한 편을 틀며 말했다.


"영화 볼래? Her라고 스칼렛 요한슨 나온 데."


"오, 보자. 나도 스칼렛 요한슨 좋아."


Her를 보면서 '스칼렛 요한슨 언제 나오지, 이제 나올 것 같은데, 나올 때 됐지, 이러다 끝나는 건 아니지, 어!, 어허 끝나가는데, 뭐야 요한슨...' 이 말만 하다 끝난 이 영화에 N은 생뚱맞게 덧붙였다.


"내가 군대에서 읽은 책이 한 권 있는데 그 책이 내 인생 책이 되었어. 한번 읽어 봐. 정말 좋아!" 흘리듯이 하는 그 말을 정말 흘리고 말았다. 나는. 그랬다. 그렇지만 그날의 영화는 남았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무엇을 알아들어야 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 상태로 남았다. 그 무엇이 그 무엇도 아닌 그날에는 그 무엇이 아니어야 했던 이유가 있던 거다. 알아채면 절대 안 되기에 마치 무슨 장치를 해둔 것처럼 서로의 눈과 귀, 입에 투명한 가림막이 처져 있는 것처럼 어둡고 어두웠다. 



"J야, 난 다 끝냈는데 많이 남았어?"


"다 했어. 와! 끝내준다. 내가 했지만 정말 예술이야. 이렇게 뭐 하나 나쁠 게 없는 지금인데... 왜..난..음"


끝말을 먹고서는 하던 일을 마치고 미국 일정을 점검했다. N은 나와 달리 미국 여행 준비를 오랫동안 해와서 계획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니다. 뭐지 싶어 노트북에 코 박고 있는 N에게 말했다.


"N, 1주일 늦게 와도 나 괜찮은 거 맞지? 사람들 다 믿을 만한 거지? 다른 건 모르겠고 1인 1실 하고 싶지만 없으니까 2인 1실이어도 괜찮은 건데 2인 1실 맞지?"


N은 알찬 구성은 아니지만 언뜻 보면 알찬 구성같이 보이는 어지러운 계획표를 살피며 나의 말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 N도 그랬다. 어찌 보면 그 무엇이 무엇이 되어버려 계획이 다 어긋나버리고 말 것들을 각자 알아서 흘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N에게도, 서로가 흘리고 있는 그 무엇이, 무엇이 되지 못하도록.


그날의 너와 나의 시선은 그러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열병에 책도 답을 주지 않으니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날에, 5월의 봄날은 한낮의 여름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으로 잠도 쉬이 오지 않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책을 펼쳤다 다시 눕기를 반복하다 잠을 못 이루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다 잠시 눈을 감았는데 그렇다. 그날 메시지가 꿈으로 왔다. 미국 여행을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미 미국에 있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꿈을 꾼 이후로 확신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음을. 






꿈에,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큰 홀로 들어서니 어느 건물 안인 듯하다. 넓고 넓어서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서는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었다. 많은 상점과 게임기들 음식점들이 즐비했고 조명은 색색 별로 쨍하지 않은 운치 있는 조명 아래 사람들이 밝고 생기 있었다. 


저마다 즐거운 한때인지 하하 호호, 소곤소곤, 웅성거림이 낮은 메아리치듯 멀어졌다 가까워지곤 했다.


어찌나 색감이 이쁜지 그 색감에 매료되어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갔는데 넓은 라운지를 지나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처럼 알록달록한 디저트 가게를 지났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 카페 라운지로 들어섰는데 실내인지 실외인지 모르게 온 세상이 숲으로 뒤덮였다. 


언뜻 보이는 하늘은 높고 높았고 지구에서 본 적 없는 색감이었다. 그러다 건물 내부인지 외부인지 가늠할 수 없는 투명한 결계가 쳐지다 사라지다 했으며 숲 사이로 테이블과 의자가 생겨났고, 없었는데 있는 마법처럼 커피가 담긴 잔이 생겨났으며 공간이 접혔다 펼쳐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곳으로 어느새 이동해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햇살도 없었는데 또 생겨나 나를 비췄고 그 감각은 따스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대로 모든 걸 만들었다 또 모든 걸 사라지게 하는 마법 같은 공간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때로는 몸의 형체를 만들다가 그 형체마저도 없어졌다 자유자재, 그 자유 자체였다. 그곳의 자유는 정도(正道) 안에서의 평안과 닮아 있었다. 평온함. 나의 빈 곳이리라. 그 숲에서 나무 한 그루와 깊은 교감을 했다. 거대함이 하늘 같았고 아늑함은 땅과 같았다. 



'미안해요, 그저 되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꿈에서 깨어 눈을 감고 한참을 있었다. 기립성 저혈압이 있는데 기립하지 않았음에도 저혈압이 온 듯 몽롱한 기운이라 그리 있으니, N이 다가와 말했다. 


"이제 가야지, 일어나."


그래, 가야지. 

맞다, 그곳이 어디든 찾으러 떠나야만 했다.











※ 다음 편 2부에서 이어집니다.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커피와 함께 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칼세이건, 코스모스 인용... )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그리고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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