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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Sep 07. 2023

너와 나의 거리감은 무엇으로 남으리

(2부)  쏘아보던 N의 눈빛도 영원(永遠)이 되었지



보통 여행 그룹에 새롭게 합류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항으로 데리러 가는데 N이 라스베가스에 도착했을 때는 노는 용무가 바쁘기도 했고 N이 라스베가스를 잘 알고 있어서 직접 호텔로 온다고 했기 때문에 이 호텔 저 호텔을 건너다니며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정말이지 라스베가스에서 살고 싶다. 네온사인을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는 타입인데 이상하게 라스베가스의 휘황찬란함은 마음에 쏙 든다. 그래서인지 그 어디에도 없던 하이텐션을 발견했다. 


셀카봉을 들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어디서 구매했는지 물어보다 못해 셀카봉을 따라 하나둘 모여 함께 이동하다 보니 그 인파가 상당했다. 매번 셀카봉만 들었다 하면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사람들이 따라붙어서 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놨고 그렇게 신나게 웃고 떠들고 춤추고 셀카봉으로 지구촌이 하나 되어 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N이 등장했다. 


호텔 로비로 N이 등장해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 그 많은 인파 사이에서도 N이 한눈에 보였던 이유는 키가 189cm이고 등치가 미국 스타일인 데다 얼굴은 조막만 해서 피부도 굉장히 하얀 탓이다.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는데 연락도 없었고 시계를 보니 도착 시간을 훌쩍 넘어 있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화났음'은 영원(永遠)이 되었다. 아마도 직감했을 테지, N과 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거라고. 그것 또한 선택이 아닌 필연임을 느끼고 있었다.





호텔 숙소를 예약할 때 각각의 것을 고려해 인원을 정해서 예약해 놨는데 라스베가스로 많은 여행 크루가 모이면서 친한 사람들끼리 호텔 방을 서로 바꾸고 옮기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결과 M과 내가 떨궈졌고 내가 예약한 방을 M과 같이 쓰게 되었기에 방에 모여 도란도란 있는데 그 방에 '화났음' N이 자연스럽게 합류하고 있었다. 


"누나, 같은 방 형이 바꿔 달라고 하는데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난 누나랑 같이 쓰는 게 훨씬 좋아!"

"괜찮아, 나도 마찬가진걸. 놀러 나갈 때 시간 맞추기 수월하고 좋다."

"M아! 옷장 봐! 옷장이 방이야! 여기서 옷도 갈아입고 잠도 잘 수 있겠어!"

"누나! 화장실이 엄청 넓어! 욕조에서 잘 수 있겠다!"

"M아! 침대가 둘 다 완전 넓어! 이리 와봐! 소파도 엄청 넓다! 우앙 왕 푹신해!"


M과 나의 오고 가는 대화에 절대 끼지 않고 1인 소파에 기대앉아서 눈 감고 있는 N을 의식하면서도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숙소는 왜 2인 1실이 아닌 도미토리 형식이며 여행 시 묵는 호텔에서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지, 없다가 생겨난 이 인원들은 뭔지, 앞으로 어느 숙소에 있다 LA로 넘어가는지, LA 숙소는 또 어떤 곳인지, 그에 비용은 어떻게 달라지는 건지, 생활비 형태의 추가 비용은 왜 내야 하는지, 그리고 좀 치사스러우나 이 호텔방 N빵인데 왜 가만히 있는지 등 그 밖에 물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묻지 않았고 알아서 말해줘야 할 것 같은 N은 뽀로통한 표정을 유지했다. 뭘 잘했다고 뾰로통한지 모르겠다. 



N이 한참을 앉아 있더니 일어나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N도 갈 곳이 없는 것이다. 


M과 나는 떠들 만큼 다 떠들고 나란히 앉아서 짐 정리하려는 N을 지켜보고 있었다. 캐리어를 여는데 미친놈인가, 책이 한가득하다. 여행 오는데 캐리어의 반이 책이다. 어쩜 나랑 똑같다. 책을 집어 들고서 의자에 앉으려 하길래 M과 난, 눈을 맞추고 말했다. 



"Let's go"



그렇다, 여행 오자마자 호텔 방에서 책을 읽으려는 N이 미쳤나 싶었다. 한국에서 봤던 모습과 좀 다른데 여행 자아가 따로 있는 걸까. 렛츠고를 외치는 M과 나를 N이 책을 내려놓고서 따라나섰다. 


라스베가스 여기저기를 미친 듯이 쏘다녔다. 머리가 이리저리 휙휙 돌아가는데 180도에서 360도 원을 그려가며 정신이 쏙 나갈 참이다. 그 와중에 '셀카봉 보는 사나이' 놀이도 N에게 보여주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1+1 티셔츠도 사 입고 호텔에서 하는 각종 이벤트도 구경하고 또 매일 호텔을 옮기며 뷔페를 즐겼다. 


그러면서 N도 나도 가끔 뒷말을 먹거나 다른 말을 하거나 하는, 그런 일이 있었지만, 하늘도 땅도 모르게 속삭여서 그런 일은 애초에 없던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라스베가스의 여행을 마치고 LA로 넘어갔다. 





LA에서 숙소로 쓰고 있는 아파트먼트의 로비는 갤러리 카페 같다. 문을 열고 나가면 커피빈과 스타벅스가 바로 앞에 있는데 커피만 픽업해서 로비나 햇볕이 따스할 땐 수영장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시간이 많았다. 로비에 앉아 책을 보고 있을 때 N이 다가와 말했다. 


"J야, LA에 거주하는 분인데 인터뷰 갈 거야. 같이 갈래?"


미친놈인가. LA까지 와서 일을 하려는 건지 그저 호기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과 연관 된 인터뷰를 잡았다며 같이 가자고 물어온다. 


"비트코인에 우호적이고 거래처 알고 있으면 생각해 볼게." 


맞다. 여행 오기 3개월 전 도미노피자를 비트코인으로 사 먹은 미국 청년의 기사를 봤고 그 순간 황금이 내 품에 안기는 듯한 직감은 보통의 것이 아니기에 비트코인의 거래처를 수소문했지만, 다단계 아니면 사이트가 허술해 사고파는 사이트가 없어지면 돈도 증발해 버리는 상황으로 무턱대고 거래하기에 리스크가 컸다. 해서 미국은 상황이 좀 나은가 싶어 여행하는 중간중간 시장 조사를 겸하고 있었는데 난항이었다.


"응, 그 외 여러 가지 루트를 인터뷰할 수 있을 거 같아." N이 대답했다. 



인터뷰는 꽤 성공적이었다. 

한국에서 알 수 없는 정보가 많았고 내 예상대로 안전하고 합법적인 방식도 있었다. 


카페에 N과 나란히 앉아 각자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내 머리에서 굴러가는 소리와 N의 왕밤눈이 굴러가는 소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의 조화는 상당히 아름다웠다. 너와 나, 각자 꾸는 상상의 나래지만 그 무대는 같은 미국이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내가 N에게 말했다. 


"저번 드라이브 갔을 때 그 주택가 마음에 쏙 들었는데 얼마라 했지?"


"충분해, 그 집을 사고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던 그 언덕에 세컨하우스도 지을 수 있어. 거기서 명상하면 기분 째지겠다."


"맨날맨날 수영장에 풍덩풍덩하면서 지내면 완전 좋겠지." 라며 N에 말했다.


뜻밖에 N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던 오후였다. 


그렇지만 N도 나도 나란히 앞만 보고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너와 나의 공허(空虛)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마도 N의 인생 책이라던 책의 내용과 N이 가고 있는 방향성은 극 반대 방향이기 때문일 테지.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기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노을로 물든 하늘까지 마주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투자가 그러하듯 리스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비트코인에 투자할 목적으로 준비해 두었던 현금 5,000만 원과 회사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서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로비에서 회사 직원에게 전화했는데 


결과적으로 미국에 있는 동안 그 5,000만 원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카드값으로 나갈 4,000만 원까지 약 1억 원이 증발했다. 황금의 시대를 맞을 수 있는 적기를 놓치는 순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저 나의 돈만 사라졌지, 공금을 포함해 그 외 것은 괜찮다는 거다.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범죄자보다 신불자가 나을 테니.


"한국 들어가면 처리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여행 3개월 무조건 채우고 갈 거야." 





통화를 끊고 심장이 오그라들거나 뛰거나 그러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찌하겠는가. 이미 그러한걸. 

망한 자의 여유인가.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은 없다. 


전화를 끊고 쿵쾅거리는 심장이 온몸을 지배하자 쿵쾅쿵쾅이 다리로 이어져 다다닥 다다닥 다다닥 걸어 수영장 문을 박차고 물로 뛰어들려고 했는데 어멋, 미끄러졌다. 배치기는 면하려고 허공에서 파닥파닥하는 와중에 벤치에 기대앉아 책을 읽던 N이 놀라서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 찰나 N의 눈빛도 영원(永遠)이 되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소리가 수영장에 울려 퍼졌고 그 덕에 창문을 드르륵 열고 '뭐야!' 하며 내다보는 사람 마저 있었으며 폭탄이 하늘에서 떨어진 듯 큰 물보라를 일으키고 난 물을 먹었다. 


꼬르륵, 꼬르륵. 그래. 가라앉자. 

접싯물에 코 박고 죽을 판인데 의도적이지 않은 이 죽음도 나쁘지 않겠다. 사고사(死).


그렇지만 물속에서 버둥버둥을 끝내고 정신을 차리며 눈만 빼서 N 쪽을 보니 하얀 피부 결이 붉어져서는 마네킹처럼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는데 모양새가 화가 난 걸까. 


눈만 빼서 N 쪽으로 이동해 점점 가까워지니 화가 난 듯하다.  


물보라가 얼마나 컸던지 N도 다 젖었고 들고 있던 책도 젖어 있었다. N은 책이 더럽혀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래서인지 온몸이 붉어져 쳐다보고 있는 N에 말했다. 


"미안해, 책 젖어서 어쩌지.. "


대답도 없이, 숨도 안 쉬는 것 같이, 들숨 날숨도 없이 쏘아보는 듯한 눈에 기가 눌려 또 N에 말했다. 


"N, 있잖아... 저번에 말했던 은행 어디 있는지 찾았는데 내일 같이 가줄까..?" 


그렇다. N이 찾고 있던 은행의 행방을 알고 있었지만 함구하고 있었고 그 은행 옆에는 알라딘과 CGV가 있다는 것도 나 혼자 몰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산책하다 발견했는데 미국에서 한국어로 영화도 보고 한국 서점도 있고 너무 신이 났었다. 그렇게 구경하다 N이 말하는 자신의 인생 책을 알라딘에서 구매해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그냥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있노라 전하는 것은 이것뿐이라 생각했다. 타지에서 동행의 의미는 굉장히 다정하다는 것을 내포하니까. 나로서는 그러하다. 


"알았어.. " N이 대답하더니 벌떡 일어나 수영장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


.

.

.



'아, 뭐야. 화 많이 났나.. 흐엉,배아펑..' 생각하며 

꼬르륵꼬르륵 수영장 바닥으로 내려가 숨 참기를 했다. 









※ 다음 편 3부에서 이어집니다. 





다양한 커피, 멋을 품은 카페, 계속 다니고  싶다.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그리고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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