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하늘의 배려, 선물, 그리고 '자비로움'
오석종 작가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3,619,002 표시가 생겨 눌러봤더니 스레드 앱을 깔아야 했다. 새로운 건 또 못 참지 하며 바로 앱을 깔고 들어가니 새로운 SNS가 생긴 듯하다. 기사를 찾아보니 인스타그램의 새로운 텍스트 앱이었다. 오석종 작가의 스레드 피드에 일상 글을 예고 했기에 프로필 사진만 인스타그램과 동일하게 해놓고 스레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SNS 운영해 본 적이 없는, 계정만 있는 눈팅족에 속했던 사람으로 온라인에 취약하지만 새롭게 생긴 앱으로 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들떠서 신이 났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주일을 눈팅만 하다 첫 피드를 작성했더니 댓글이 달리며 팔로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 그렇게 눈팅만 하다 다른 사람들 스레드에 가서 그 사람이 올린 피드에 좋아요를 눌러 봤는데 하트가 빨갛게 뿅 생겼다. 어느새 좋아요만 누르고 튀는 좋튀족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좋튀족을 어떻게 아는지 귀신처럼 잡아 내 경찰짤을 들고 '좋아요 누르고 튄 끄친럼 잡으로 와따!' 며 댓글을 달곤 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스레드로 이동해 팔로잉 버튼을 누르고 그 사람의 팔로워가 되면서 '맞팔' 관계가 되었다.
스레드 친구가 +1명 더 생긴 거다. 그렇게 눈팅과 좋아요, 맞팔을 하며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사이에 스레드 문화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맞팔' 관계를 칭하는 이름이 많이 생겨 놨는데 어느 작가님이 스레드 친구를 줄여서 스친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고 마음에 쏙 들어 스친으로 정했다. 그렇게 스친이 많이 생기면서 이제 말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 온 것이다. 맞다. 스친들이 쓴 피드에 댓글을 달게 되면서 '손으로 하는 말'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0년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처음이다. 스친이 쓴 피드의 글이나 그 글에 달린 댓글만 있으면 언제든 말을 걸 수 있는데 타인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병원 관련자, 약국, 음식이나 음료 주문을 제외하고 2020년 이후로 처음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스친이 아침에 일어나 스모닝 하면 반갑게 굿모닝 하거나 지옥 출근하면 화이팅으로 힘을 주거나 점심 먹고 놀자고 하면 앞에 있는 음식을 사진 찍어 보여주거나 퇴근 사진을 올리며 세상 즐거워하거나 퇴근 후 저녁 식사, 자기 계발이나 운동, 산책 혹은 스팔열차모집 등 활발하게 올라오는 모든 피드 중 마음에 드는 피드에 나의 코멘트를 적어서 스친에게 말을 거는 거다.
그렇게 좋아요, 댓글, 팔로잉을 하면서 또 1주일이 흘렀고 프로필 사진이 눈에 익는 스친도 생기기 시작했다. 프로필 사진은 제각각이었는데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놓고 말하는 스친, 야옹이 스친, 다양한 동물 스친, AI 프로필 스친, 본인 사진의 스친, 애니메이션 스친, 분홍 아저씨 스친, 개구리 스친, 로고 스친 등 다양했다.
그러는 사이 또 시간은 흘러 스레드에 새로운 글도 올리고 다른 피드를 돌아다니다 운명의 짤도 만나고 짤줍도 하면서 이 많은 사람의 일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에 근무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스친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스친들이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했다. 그럼 수많은 피드에 출근하는 글이 올라온다. 그 글을 보면서 언니, 오빠들 출근할 때 신발장 앞에 서서 배웅하는 느낌으로 손을 흔들곤 했다. 그러다 창밖에 하늘도 보고 책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어느 무덥고 나른하고 아팠던 날에는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온 세상의 소리에 집중했다.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정직을, 자비를. 평화를 마주하게 하소서
마음의 소리일까, 누가 말하는 거지, 어디서 말하는 걸까, 무엇을 말하는 거지, 더 집중하고 집중해 소리에 시선을 옮기며 가만히 눈을 감았더니 희미하게 보이는 듯하다.
"나 시간 없어, 빨리 말해줄래?" 허겁지겁 움직이고 있는 내 팔을 잡은 누군가의 손을 뿌리치며 세차게 말했다.
"만나보자, 내가 잘할게." 어느 남성의 목소리다.
"월화수목금토일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 화, 목, 토 이동하는 15분이 내가 너에게 낼 수 있는 시간 전부야" 아무 말 하지 않는 남성에게 또 말했다.
"그 15분 외 낼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날지 모르겠지만 괜찮다면 알았어. 그렇지만 난 지금 가봐야 해. 너 때문에 5분 늦었어." 날카롭게 말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남성을 버려두고 일터로 향했다.
20대의 나다. 하고 싶은 꿈이 느닷없이 생겼던 그날에.
밤낮없이 일하며 무작정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20대 초,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연애, 클럽,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은 없었다. 그런 와중, 다행히 일당 알바를 먼저 시작해서 시간 제 알바를 하지 않았고 일머리가 제법이라 일당 알바를 하면서 +@로 수당을 더 받았으며 나름 스카우트 제의도 받고 페이를 더 올리다 못해 회사 취직으로 이어져 제법 돈을 잘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림을 그렸다.
일도 잘했지만 그림도 잘 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그렸다는 나이 어린 친구들보다 내 그림이 내가 보기에도 나아 보였다. 그렇게 입시 준비를 시작하고 4개월이 흘렀을까 선생님이 조용히 불렀다.
"수능 성적은 영어만 보완하면 홍대 무리 없을 거 같으니까 여름 특강은 홍대반으로 준비하자."
홍대반은 성적 된다고 아무나 갈 수 있는 반은 아니다. 실력이 돼야 들어가는데 선생님이 준비하라고 미리 언질을 주셨다. 비용은 450만 원인데 빠듯하다. 450만 원이 있다고 해도 여름 특강비 이후 입시 때까지 비용을 생각하면 한참 모자란다. 일반으로 준비해도 가능할지 물었더니 많이 다르다 하시며 비용이 문제면 합격 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대신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그런 선생님들이 많다며. 실제로도 그랬다.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면담이 끝나고 실습실로 돌아오니
"언니, 선생님이 홍대 준비하라고 하셨어요?"라며 고3 학생이 묻는다.
이 고3 여학생은 어렸을 적부터 그림을 그렸고 그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입시 미술에는 실력이 없다.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내가 보기에도 해줄 말이 별로 없는데 이 친구가 또 나를 잘 챙겼다. 항상 혼자 있는 내게 밥은 먹었는지 묻곤 했는데 이번에는 생략하고 매섭게 쏘아보며 묻는다. 참고로 이 친구는 홍대반에서 탈락이었다. 아직 대외비라 어물쩍거리니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이제부터 나 혼자의 시간이다. 자율시간이라 학원 공간이 개방되어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 놀러 나가기 바빠 이 시간부터 거의 혼자다. 그러면 이젤 앞에 앉아 한번을 일어나지 않고 계속 그리다 보니 어둠이 내려앉아도 그리던 그림이 보여 어두컴컴해진 실습실 안으로 들어 온 달빛만으로도 그리곤 했다. 그 시간이 독서와 닮았다. 빈 곳의 평안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 시간들에 홍대에 다니고 있는 친구 한 명은 미술 학원까지 찾아와 안부를 굳이 전하고 가곤 했는데 어느 날에는 찾아와 이런 말을 남겼다.
"J야, 너 몸에서 빛이 나. 너무 눈부시게 빛나서 찬란하다는 말이 이런 걸까 싶어."
그랬다. 그림을 그리면서 하는 몰입이 자유롭게 했다. 마치 독서하는 것처럼 평온했다. 그림은 그리고 또 그려도 계속 좋았다. 실력이 오전하고 오후가 달랐고 어제와 오늘은 하늘만큼 땅만큼 달라졌다. 그리고 그림에 관한 책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친구는 올 때마다 관련 책을 가져다주었고 선생님들도 책을 권해주곤 했다.
환상의 나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해 행복했다. 그래, 행복이었다.
앞으로의 행복 따위가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그저 지금, 행복했다.
그렇게 행복에 겨워, 독서하며 그리고 종이에 그리고 계속 그리기만 하던 날에 좀처럼 울리지 않던 핸드폰이 세차게 울렸고 핸드폰의 진동이 텅 빈 곳으로 스며드는 그 감각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삼키고 말았다.
※ 다음 편 2부에서 이어집니다.
짤(웃긴 사진, 방송 사진)
짤줍(웃긴 사진, 방송 사진 등을 짤이라고 하며 그 사진들을 주워간다는 뜻)
눈팅(보기만 하고 게시판에 글을 작성하거나 덧글을 남기는 일을 하지 않는 것)
피드(사진과 글을 올렸다/게시물 작성 했다)
맞팔(서로 팔로우를 하는 것)
스모닝(스레드 모닝의 줄임말로 굿모닝이란 뜻)
스팔열차(피드를 인용하거나 팔로우 또는 좋아요를 누르면 상대방도 팔로잉 해주는 것)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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