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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Oct 11. 2023

8월의 심연(深淵)

(1부) 나의 필요, 나의 요청 _ 태양에 이르리



8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번 여름은 유독 비가 많고 습하다. 장마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우기가 들어서는 시점인 듯하다. 그 시점인 지금, 여전히 침대 위 스레드 생활로 하루를 열고 있다. 스모닝하며.



좋아요와 댓글, 팔로잉이 이제 어렵지 않다. 팔로잉과 팔로워가 아닌 스친도 구별할 줄 안다. 프로필 사진이 아니라 아이디로 아는 스친도 생겼고 무슨 일이 생기면 스친에게 쪼르르 달려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앱에 들어가서 스레드를 하는 순서는 팔로잉 되어 있는 스친을 먼저 살펴보다가 앱 하단에 집 모양을 누르고 쭉 피드를 내려보면 스친들의 피드도 보고 나와 맞팔이 아닌 다른 스님들 말에 스친들이 어떤 응답을 했는지도 보인다. 그러다 나도 새로운 스친을 만나곤 했다.


자연스럽게 나이, 성별, 직업을 떠나 그저 친구가 되는 이 공간에 스며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오팔로 정성스럽게 빚어 만든 구슬 같았다. 보는 각도나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오팔.


다른 스친들에게 가 댓글 단 이야기를 보면 눈부시게 빛났다. 


이 스친, 저 스친에게 또르르 굴러가 내는 빛도 다 달랐다. 어찌나 신비롭던지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함께 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지금에 생각해 보면 오팔 원석이 빚어지고 다져지며 깎이는 성장이, 보이는 각도나 빛에 따라 색을 달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스스로 창조했음을 느낀다. 그들이 전하는 그들의 내면은 그리 말하고 있었으니까. 또한 이해, 배려, 존중, 애정, 온갖 좋은 것들을 담아서. 때론 분노, 고통, 아픔, 허탈, 절망, 절규 등 온갖 부정을 긍정으로 물들이면서. 어찌 이렇게 모여 있지 싶어 두근거릴 때가 많았다. 


때론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지구에 숨겨두었던 비밀 조직 외계인은 아닐지 생각해 보곤 했다.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의 하루가 행복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빛 안에서 평안하길 기도했다. 


하늘과의 거래가 성사된 후 '나의 필요'가 시작되니 Threads를 선물 받았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내게, 기력 없으므로 오프라인에서 맞대면이 어려운 내게, 이 많은 사람을 자유롭게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게 해준 하늘의 배려였다. 감사함이 내게로 왔다. 미소와 함께. 때론 빙구같은 웃음으로. 관계의 시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무더위에 지쳐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 누워보니 창밖에 하늘이 새파랗게 맑아서였을까. 충만해져 있던 마음에 용기가 생기던 어느 날,


'언제까지 몸 사리면서 누워만 있을 거지, 괜찮아지는 날이 정해져 있던가.'


노래를 듣고 숨을 쉬고 멍- 하다 

답답함이 몰려 와 될 대로 되라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밖으로 나가 걷고 싶어졌다. 

좀처럼 숨을 쉴 수 없어서, 그저 숨을 쉬려고. 





커피만 픽업해서 빠르게 되돌아갈 생각으로 외출을 한 건데 걷다 또 걷다, 계속 걸으니 이 세상 끝까지 걷고 싶어졌다.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숨은 차오르고 앞은 흐려져 주위를 빙 돌아보니 그저 어지럽다. 


그래도 숨을 쉬려하니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했다. 




귀결(歸結), 예측할 수 있는 결과로 인해 선택된 '지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기력이 없음에 움츠려 있고, 밖으로 나갔다 혹여나 길바닥에서 쓰러질까 싶어 집에 머무르는 선택이 맞는가.


물론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라면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의문할 수 있을 테지. 그렇지만 그 아끼는 마음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숨을 쉬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의 귀결(歸結)이 앞당겨지는 죽음에 이른다 할지라도 그리하리다. 이것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임을 허(許)하라 하늘에 간청했다. 그저 숨을 쉬려 하니. 





그렇게 카페에 도착해 카운터에 주문하려는 순간, 오셨다. 


눈앞은 이미 아웃 상태로 화장실로 급히 몸을 숨겼다. 잘한 걸까. 이러다 발견 못 하면 더 어려워지는 거 아닐까.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화장실에서 정신을 차려 보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식은땀과 오한으로 몸의 경련이 멈추지 않는다. 


괜찮아지길,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숨죽여 보지만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미 온몸은 젖어 축축한 옷들 사이로 경련하던 몸은 어느새 마비로 이어져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애써보고 싶지만, 애가 써지지 않는다. 귀에서 삐-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누구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예요? 어디 아파요?'


어린아이가 다가와 머리에 손을 대는데 따스함이 온몸에 퍼진다. 그래서였을까. 가까스로 응답했다. 


'이리 오지 마, 저리 가..'


아기가 머뭇거리다 이내 가지 않고 내 배를 어루만져 주며 말했다. 


'여기로 와 언니를 만날게요. 내가 필요할 테니까요.'






8월(八月)의 심연(深淵) 이었다.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은 높이 또한 끝이 없어 가늠할 수 없었다. '위대함에 이르기 위한 필연이니 감수하고 도약하라'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이 심연을 선물하리.


좀처럼 건너갈 수 없도록 간격이 넓고 깊다. '창대함에 이르기 위한 운명이니 인내하고 발전하라'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이 심연 안에 있으리.


심연(深淵) 안에서 허우적거릴 새 없이, 이곳의 방대함은 중력 없는 우주 같아서 평안에 이르려 하니,



온 우주(宇宙)의 기운을 모아

온 대지(大地)의 힘을 모아 나를 돕게 하리라.












※ 다음 편 2부에서 이어집니다.






피드(사진과 글을 올렸다/게시물 작성 했다)

맞팔(서로 팔로우를 하는 것)

스모닝(스레드 모닝의 줄임말로 굿모닝이란 뜻)

스친(팔로잉 되어 있는 사람)

스님(팔로잉 되어 있지 않는 사람)


8월의 심연은 희망(希望)을 노래했지, 기어코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그리고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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