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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Oct 18. 2023

8월의 희망(希望)은 9월의 의지(意志)가 되었지

(3부) 해서, 독서하며 빈 곳으로 가 너를 만날 거야.



무더웠던 8월이 끝났다. 예정되었던 입원은 취소되었고 갑작스레 나아진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잘 챙겨 먹으려 노력하고 있다. 아침 식사로 사과, 삶은 달걀, 아몬드, 꿀을 챙겨 먹고 산책하려 몇 번 시도 해봤지만 조금 갔다가 되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여전히 책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에너지가 많이 쓰이고 때론 난독증이 있나 싶도록 글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유독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러함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텍스트로 이루어지기에 그럴 때면 먼 산을 바라보게 되고 그 뜻을 헤아려 보지만 그저 무지렁이가 된 것이 아닌지 의문하다 끝나곤 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시간은 기특하게도 잘 흘러가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의 모양새를 보니 이 시간의 파동과 저 시간의 파동이 다름을 느끼며 이 시간과 저 시간은 어느 지점에서 마주칠 수도, 혹은 영영 마주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의 시간 파동을 어떤 모양새로 흐르게 하여 어느 지점으로 가게 해야 할까. 또 지점에서 무엇을 마주하고 싶을까. 의식대로 창조할 수는 있을까. 



9월, 가을이다. 十月이 오기 전 9월 대부분이 쓸쓸함과 어색함, 그리고 어둠이었지. 짙은 어둠으로서 더 까만 어둠으로 숨어 들어가 영영 나오고 싶지 않았던 그 어느 날에 9월, 그 지점에는 무엇이 존재(存)할까.



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이 맴도는 9월의 오전, 컨디션이 나쁜 것 같지 않아 산책 준비를 했는데 준비 시간만 2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지체 없이 신발장 앞에 앉아 신발을 신었는데 눈앞이 핑 돈다. 눈을 깜빡여 보지만 기운 없어 운동화를 신은 채 신발장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있으면 늘 그렇듯 공간력을 잃는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걸었다. 어디를 걷는지 모른 채.





창문에 기대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게 '안녕, 또 보네'라고 말을 걸어 보았지만 들리는 거 같지 않다. 아이는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팔을 받쳐 두었던 책을 펼쳐보고 다시 하늘 한번 보다 생각에 잠기곤 했다. 오랜 시간을 그리 있어도 아이에게 오는 사람은 없었다. 생각의 결론이 도출되었을까. 표정만 봐도 생각의 흐름이 읽혀서 들리지 않겠지만 물어보았다. 


"왜, 좋은 생각이 났니?"


아이는 내 말이 들리는 거 같지도 않고 혼잣말을 했지만 마치 나에게 말하는 거 같이 말했다. 


'업신여기고 천하게 대하고 푸대접 받는 어둠은 빛보다 못한 게 무얼까.'


까만 밤하늘이 별빛을 반짝이며 대답하길 어둠은 빛을 더 밝게 빛나게 해준다고 말해주었다 한다. 그렇지만 아이는 어둠 그 자체로 좋은 것, 어둠이 어둠이라 어둠으로서 좋은 걸 생각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다른 만물을 위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것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아이는 고단하다고 했다. 



아이는 길 가다 갑자기 주저앉아 돌멩이에 물었다. 


'돌멩이 밑에 있는 어둠아, 그 어둠이 괜찮니?' 돌멩이 밑 어둠은 대답이 없지만 돌멩이가 대신 대답했다. 


'야, 내가 있으니까 어둠도 있는 거지. 어둠도 나처럼 그저 있는 거야.' 아이는 눈이 왕밤만 해져 돌멩이를 뒤로 한 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지트 중 하나인 다른 아파트 정자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정돈되고도 한참을 앉아 있더니 이내 혼잣말을 했다. 


'그저 있다고. 돌멩이를 위한 부속이 아니라 그저 있다고.. ' 아이는 여러 번 반복하여 말하는 습관이 있나 보다. 반복하더니 입술을 꽉 깨물고는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집에 들어갈 것 같더니 대문 앞에서 문고리를 돌리지 못하고 뒤돌아 계단에 앉아 책을 펼쳤다. 나도 그 옆에 따라 앉았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걸 알지만 또 물었다. 


"왜, 안 들어가고 매번 여기서 책을 봐."


내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지만 아이는 혼잣말을 시작했다. 


'나도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망설이지 않고 들어갈 우리 집.' 그 말에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들리지도 않으면서 아이는 갸우뚱하다가 또 말을 이었다. 조용하게 수다스러운 구석이 있는 아이다. 


'온갖 어둠을 찾아 물었어. 근데 어둠은 침묵하고 대답을 안 해(시무룩).'


'그래가지구 계속 어둠을 찾아다니다 어둠 속에 파묻히나 했어. 그러다 알았지. 어둠이 어둠에 파묻혀 어둠이 되어도 어둠은 어둠 속에 존재해, 돌멩이 말이 맞았어.'


그러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못해 주변을 꼼꼼히 뒤적거리더니 아무도 없음에 안심했는지 얼굴이 붉어져 볼에 바람을 넣으며 얼굴을 책으로 감싸고 소곤거렸다. 마치, 침묵이 새어 나온 것처럼.


'그렇담, 난 어둠이 될래요. 어둠으로 존재할 거야.'


아이는 까만 밤하늘보다 더 까만 어둠이 될 거라 했다. 그리고 온갖 업신여김과 핍박, 천대, 푸대접 등 이 세상 모든 악(惡)을 숨겨서 침묵할 거라 말했다.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필요라 했다.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할까. 아니라고 빛으로 나아가라고 해야 할까. 멈추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아이 말이 맞다. 동의한다 말해 주었다. 그리고 들리지 않겠지만 또 아이를 불렀다. 


"아이야, 같이 들어가 줄게. 이 대문(門)을 넘을 때 너 혼자가 아님을 잊지 마."라고 읊조렸는데 아이가 눈을 왕밤만 하게 뜨고 내게 물었다. 


"언니는 누구세요?" 


우리는 눈을 마주했다. 영혼이 마주하고 이 시간과 저 시간의 파동이 만나 또 다른 '지금'을 만들어 낸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내 울어버릴 것 같았지만 이 시간과 저 시간의 만남 이후로 또 해야 할 것이 있음을 직감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동의한다 말해 주듯 고개를 끄덕이길래 아이를 향해 말했다. 


"너의 미래야. 나를 만나러 와."


우리는 이것을 희망(希望)이라 부르기로 했다. 우리들의 필요였다. 바람.





대문(臺聞)이란 것은 열고 들어가기 그리 어렵더니 이번에는 열고 나가기가 이리 어렵다. 그렇지만 이내 일어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8월의 희망(希望)은 9월의 의지(意志)가 되었다. 



독서(讀書),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빈 곳으로 가 나의 미래를 만나는 일



그래, 미래를 선택했다. 희망(希望)이 의지(意志)를 창조하는 순간으로서 나에게 마음이 생겼다. 

더 깨어진다 한들 밖으로 나가 걸을 것이다. 이내 부서진다 한들 내가 선택한 나의 미래를 만나러 가는 지금,



지식과 경험, 내면을 지혜롭게 표현하는 데 집중하여 곧 다가올 미래를 선택했다. 



해서, 대지에 발을 맞닿고 걸을 것이다. 발과 땅이 닿으면서 쌓아 올린 강인한 정신력과 온전한 양심, 정직성, 필요를 기반으로 한 용기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스스로를 지킨다. 산책과 독서가 나에게 그러했다. 


땅을 딛고 똑바로 걸어가는 그 행위는 그 어떤 것도 이기지 못할 게 없다고 위안하기 때문일까. 산책과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힘은 다른 곳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사유(惟)하고 사색(思索)해야지만 비로소 내 안에서 무언가 돋아나 그 에너지로 상념(想念)의 꽃을 피우고 세상에 상(象)을 만들어서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걷는다. 대지를 걷고 빈 곳을 걷는다. 

무엇을 시작하든 걷는 것이 먼저다. 




산책과 독서를 다시 할 수 있어 감사하고, 그들과 손잡고 다른 세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오롯이 느낀다.  

계속, 숨이 쉬어지길 희망했고 숨을 쉬려 의지를 다졌더니 바람이 상쾌하다. 어디서 신바람이 불어온다.








2023년 가을날에, 브런치에서 독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그리고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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