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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Oct 13. 2023

8월의 희망(希望)

(2부) 관계의 예와 선, 희망에 닿아 필요하였네.



카페 화장실 사건이 있던 날, 집에 돌아와 휴식을 충분히 취한 후 하늘에 편지를 썼다. 



Dear. My sky


부른다면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걸 가뿐히 내려놓고 따르겠으나 그대와의 거래로 시작된 이야기의 끝맺음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의 제 타임라인은 적어 놓았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몇 차례 잘 참아 드렸으나 앞으로 또 급작스레 거래를 잊으신 듯하면 저 또한 참지 않을 것이니 주의하십시오. 또한 그대가 전지전능한 신인 듯 군다면 나의 펜은 칼날이 될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거래를 깨는 자, 악(惡)의 끝을 보기로 한 약속을 다시 한번 상기하셔야 할 겁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제게는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악(惡)이 내재되어 있으니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하나 잘 자는 잠에, 그리고 먹는 음식을 좀 더 살피겠노라 약속합니다. 노파심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가 정한 선(線)이니 '길바닥 수치심'을 겪게 하시면 우리에게 다음이란 없다는 걸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길바닥 수치심을 겪지 않게 되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 이것이면 됩니다. 길바닥에서 쓰러지면 사람들 놀랍니다. 그런 일은 타인에게 민폐이니 합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필요'에 다가서고 있는 듯하다 귀띔해 드립니다. 뭐, 아시겠지만. 이만 줄입니다. 

그대의 충만한 빛이자 사랑으로부터. 






더위 때문일까, 기력이 없는 거지 무기력하지 않기에 그 사이에 오는 갈등이 상당했다. 일어나 걷고자 하는 의지를 기력 없음이 어렵지 않게 이기는 중이니까. 그렇다. 그러는 와중 갈등하는 마음이 우스워지도록 증세는 더더욱 여러 번 진행되었고 그러다 심화되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스레드 앱으로 스친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증세가 나타났고 점점 심해져 과호흡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앓다 호흡이 안정되고 증세가 나아져 주위를 둘러보면 집안 꼴이 엉망이었다. 그 엉망인 꼴을 보면서 감사했다. 집에서 혼자 감당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마음 편하게 아플 수 있어서 고맙고 감사했다. 그렇지만 과호흡이 마비로 이어지기에 결국 병원을 다시 찾아 몇 차례 검진하게 되었다.  



모든 관계를 정리한 지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럴 마음조차 없었으니.

적어도 스레드에 첫 게시글을 적기까지는 그랬다. 우습다. 한평생 관계하지 않았던 내가, 정말이지 '필요'를 선택하니 이뤄진 일이었다. 


오팔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정말 사람들이긴 할까 싶게 어느새 애정했다. 한데 이것을 '관계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는 중이다. 곰곰이, 골똘히 생각하니 그저 마음 한 덩이 홀로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그 마음 한 덩이로 할 수 있는 선(線)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보는 중이다. 

예(禮)를 다하는 선(線)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로서는 최선이 그대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살면서 그다지 해보지 않았던 영역에서 고민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하고 또 했다. 그 누구도 모르게. 



몇 차례 검진 후 입원 준비를 하러 가는 길이다. 햇살은 여전히 강렬하고 무덥다. 이번 여름은 그저 무덥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이번 여름이 힘겨운가 보다. 


생각해 보면 봄날에 산책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컨디션이 좋았던 거 같다. 그 봄날, 여름이 오면 입을 원피스와 구두를 샀었다. 단 한 번을 못 입고 여름이 끝나려나 했는데 외출이다. 등이 훤히 파인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캐리어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면 1층 베이커리 빵집 앞에서 빵 한번 쳐다봐 주는 루틴을 잊지 않았다. '맛있겠다' 하며 뒤돌아 가는 순간 바닥으로 쓰러졌고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웅성웅성 어지럽다. 



아, 새 옷인데 .... 

길바닥이 아니라 병원 바닥이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하늘은 가까스로 약속을 지킨 건가.





'언니, 일어나 봐.'


뭐지, 어린아이가 다가와 나의 팔을 잡는다. 이 아이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는데 마치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듯 이상하다. 


'언니, 오늘은 내 몸만 한 장 본 물건이 가득 담긴 봉지를 끌고 왔는데 앞에는 그녀가 먼저 걸어가고 있었지만 한 번을 뒤돌아보지 않았어. 심지어 봉지가 쓸려 물건을 주워 담고 오는데도.'  아이가 쏟아내듯 이야기하길래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힘들 뿐이지 마음이 없는 건 아닐 테니까 괜찮아.' 여전히 책을 읽으면서 말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더 어두운 그림자로 형체가 보이는 듯하다 흐려지고 이내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는 혼자다. 왜 혼자인지 물어볼까. 


'난 친구가 없어. 안에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말하고 밖에서는 다양하게 놀리고 괴롭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셈이지.' 내 말이 들렸나. 스레드 영향으로 어쩔티비라고 할 뻔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근데 같은 언닌데 매번 볼 때마다 다 달라.'  무슨 말일까 모르겠다.


'언니, 왜 다 잊은 것처럼 그래.' 응? 어리둥절하다. 무슨 말인지, 무엇을 잊은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언니가 나를 매번 찾아왔잖아. 책을 읽을 때면.' 아이는 의아한 말만 한다.



그렇게 아이와 시간 겹겹이를 걷고 또 걸었다. 


아니, 어쩌면 책을 읽듯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아이가 이끄는 곳으로 넘어가 아이를 읽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혼자 다니는 아지트를 구석구석 알려주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학교가 끝난 후 학교 정문 앞에 파는 떡볶이 할아버지와 후문에서 파는 뽑기 할머니의 옆자리라든지 공원 의자의 한구석이라든지 놀이터 그네라든지 집에서 좀 떨어진 아파트의 정자라든지 아니면 집 앞 계단이라든지, 높이도 높고 넓이도 꽤 넓은 책장 앞이라든지 하는 그런 곳인데 아이만의 장소에서 아이는 책을 읽었다. 내가 옆에 있는데도 항상 책을 읽으며 이야기했다.


한번은 뽑기 할머니의 옆에 앉아 책을 읽었는데 할머니가 친구랑 놀지 왜 맨날 여기서 책만 보느냐 물으니


'할무니는 할무니 괴롭히고 놀리는 사람이랑 친구 할 수 있어요?' 라 했다. 할무니는 대답하지 않고 뽑기 빵을 손에 쥐여주지만, 이 아이는 공짜는 싫다며 동전을 돈통에 넣었다. 



아이는, 대체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오랜 시간을 이야기했고 무엇으로 살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니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어 홍당무가 된 채 책에 얼굴을 처박고 말했다. 


'톨스토이처럼 작가가 되고 싶어요.'

'톨스토이처럼 글을 쓰지만 스티븐 호킹처럼 우주를 말할 거예요.' 



그러다 아이는 이상하게 점점 커지지 않고 점점 더 어려지고 어려졌다. 그러면서 아이는 어느새 내가 옆에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혼잣말을 했다. 


더 작아진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와 오랜 시간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집 앞 계단에 앉아 책을 읽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들어가지 않길래 아이를 불렀다.


'아이야.' 한참을 불렀지만 정말 들리지 않는 듯하다.  


아이는 집 대문을 한번 쳐다보고 숨을 한번 몰아쉬었다. 그걸로 부족했는지 하늘을 한번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아이는 한참을 읽었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고했지만 이제 병원에 오랫동안 누워 있어 봐야 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퇴원할 수 있으면 퇴원하겠다 말했더니 그럼 퇴원했다 안 좋으면 바로 입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집으로 되돌아왔는데


돌아오자마자 다시 입원할 짐가방을 꾸렸다. 



입원 전날, 8월의 심연(深淵) 속 고독은 어느새 희망(希望)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관계의 예와 선을 생각해 보니. 앞으로 그 예와 선의 확장은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니. 

그렇게 관계의 예와 선은 희망에 가닿았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 보니 쓸데없이 독립적이고 지나치게 강인하다. 



그럼에 지금, 여기는


'고독(孤獨)이 고독(孤獨)인지 모르니 천하태평(天下泰平) 이로구나'까지 가는 길목 그 어디쯤인가.

그렇담, 내 그리 한번 계속 가보리다.



하며 웃었더니 심화된 증세가 갑자기 사라진 듯 다음날 입원은 하지 않게 되었다. 








※ 다음 편 3부에서 이어집니다. 





8월(八月) 고독은 고독인 줄 모르고 건너가는 힘이 있었어.  그대들 덕분에.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그리고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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