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빈곤과 오병이어의 기적: 상징인가 실재 사건인가

by 광장에서 성경읽기

성경의 기적 이야기를 해석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기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상징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사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권의 책 모두에 기록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떡 다섯 덩이와 두 마리의 물고기가 오천명을 먹인 사건. 오병이어. 五餠二魚. Five Loaves and Two Fish.


마가복음서와 마태복음서는 기적 이야기 비중이 꽤 있어서 오병이어의 기적 그 자체가 아주 단연 도드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1장 1절부터 해석적인 선언으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서도 오병이어를 기록했다. 요한복음서는 1장은 신학적-해석적 진술을, 2장에서는 다른 그 어떤 복음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가나의 혼인 잔치를, 그리고 3장과 4장 역시도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일대일 대화를 아주 장문으로 기록한 책이 아니던가. 그런 요한복음에 오병이어 기적사건이 있다.


오병이어 사건이 문자 그대로의 기적이라면 우리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기적이 가능하다면 왜 그때 한번뿐인가. 여러 번의 기적으로 편하게 먹을 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굶주림의 문제를 우리는 여태까지도 해결 못하였다. 멀리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 한국 사회에도 아직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이, 시선을 낮은 곳으로 돌리면 적지 않다. 필자 역시도 21세기 들어 먹을 것이 없어 하루 김밥 1줄로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 쌀조차 살 돈이 없었을 때 누가 정부미(정부에서 보급해 주는)를 주었는데 그 정부미 쌀 포대 안에 수백 마리의 쌀벌레가 들어있어 쌀과 쌀벌레를 일일이 분리하던 적도 있었다. 일 년 동안 치킨 한 마리를 먹지 못해 저녁마다 치킨집에서 나는 냄새로 괴로워하기도 했다. 배고픔은 실로 참담한 것이다. 그러데, 오병이어의 기적이 가능하다면, 주님께서는 이 땅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던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러한 능력이 있는 분이 계신데 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이 배고픔의 문제로 고통을 받는가.


오천명(을 훌쩍 넘는)이 오병이어로 배가 불렀다. 그리고 열 두 바구니가 남았다고 했다.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가 도대체 몇 배로 불어나면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가. 이 어마어마한 기적은 왜 오늘날 빈곤의 현장, 배고픔의 현장에서 재현되지 않는가.


그것은 어쩌면 오병이어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그 오병이어는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도시락을 내어 놓은 것이었다. 그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 작은 양의 도시락을 내어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자기의 도시락이 거기 모인 수만의 사람들을 먹일 수 없는 것은 알았을 것이다. 다만 그는 자기가 그 작은 것이, 앞에 당도한 그 큰 문제 해결에 아주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도시락에, 예수께서는 축사하셨다. 그 축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축사 이후에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빈곤의 문제 해결에 정부나 대기업의 대대적인 물자 지원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큰 사회적 프로젝트에 오병이어의 마음이 요청된다. 지원을 결정하는 관계자들의 마음에, 그 지원을 중간에서 중재하는 중재자들의 마음에, 그 물품들을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공급하는 실천가들의 마음에,,, 오병이어의 마음이 필요하다. 각각의 구체적인 모든 현장에서 오병이어의 마음이 없으면 배고픔의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 것이다. 곳간에 100 가마니의 쌀이 있어도 그 곳간 문을 열기로 마음먹는 마음, 그것을 필요한 곳들에 수고스럽게 분배하는 마음, 그리고 전달받은 현장에서 일일이 수혜자들에게 전해주려는 마음,,,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곳간에 100 가마니 쌀은 그대로 있을 뿐이다. 기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잠재태이나, 곳간 안에서는 기적 가능성이 없는 현재태일뿐이다.


오병이어가 어떻게 5천 명(을 훌쩍 넘는다)을 먹이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이지만, 한 어린아이의 오병이어를 시작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먹었다는 그 사건만큼은 팩트인 것 같다. 4복음서 기자 전부가 유일하게 기록한 기적, 요한복음서 기자까지도 상당한 분량으로 전달하고 있는 기적이다. 단순한 떡과 물고기의 개수가 늘어나는 기적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작은 희생을 요구하는 도덕적 목적을 가진 기록도 아닐 것이다. 복음은 마술적이거나 도덕적 요구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팩트는, 일단 오병이어를 시작으로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리고 기록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끝까지 편집에서 빼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공동체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기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적이라는 불꽃이 일어날 수 있는 불씨가 오병이어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뭐 단순 먹는 문제뿐이겠는가. 관심, 격려, 용기,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절망에 빠진 이에게 보인 관심이 그를 살게 할 수 있고, 어떤 격려는 소망 잃은 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이 바뀌는 것만큼 큰 기적이 어딨겠는가. 우리나라처럼 한이 많은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는 이러한 사건의 역사적 실례가 적지 않을 것도 같다. 이러한 실례를 알고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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