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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우 Jul 11. 2024

이게 다 그 놈의 밥타령 때문이다

동생이 잘 안 풀리는 게 조상님들이 배가 고파서 그런거래

엄마는 불교신자다.

살다가 힘이 들 때나 자식들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점을 보러도 간다.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엄마가 내 수능날에 절에 백만 원 가까이를 내고

삼천배를 했던 일이나

점을 보고 와서 그게 마치 전적인 신의 계시인처럼

나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조심하고를 이야기할 때면

신기하긴 하면서도

이내 왜 그런 걸 믿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삶이라는 게 힘들고 팍팍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마음을 의지하며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엄마를 존중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또 아주 오랜만에 점을 봤나 보다


“동생이 잘 안 풀리는 게 조상님들이 배가 고파서 그걸 아빠의 아들인 네 동생이 영향을 받는 거래. 제사를 작년부터 안 지내고 있잖니.”


“아니 아빠가 막내아들이고 제사 안 지내기로 결정한 건 제일 큰 아빠인데 조상들은 그걸 왜 막내아들인 아빠한테 화풀이야??”


나는 그 점괘를 듣고 어이가 없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우리 아빠는 다섯 아들 중 막내다.

곱디곱던 우리 엄마는 위에 형님들을 넷이나 두며

시집살이가 아닌 형님 살이를 했다.

제사 때마다 엄마는 막내라는 이유로

그들 중 집이 제일 먼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제일 먼저 도착해서

제사음식을 만들었다.

어느 날은 아빠가 회사 일로 같이 갈 수가 없는데

형님이 왜 안 오냐고 호통을 쳐서

내 동생은 포대기로 업고 나는 손을 잡은 채로

버스를 타고 그 먼 길을 가서

도착하자마자 멀미로 토했다고 한다.

그렇게 힘겹게 큰 집에 도착했는데

형님은 수고했단 한 마디 없었다고 한다.


남의 집 귀한 막내딸로서

언니 오빠들에게 용돈을 받으며

사랑 듬뿍 받으며 곱디곱게 자랐던 우리 엄마는

남의 집 제사를 위해

그렇게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단 한 번도 늦게 참여하거나

음식을 하지 않겠다는 등의 반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성을 다해서 그 어떤 며느리보다 열심히

제사음식을 준비했다.

어릴 때 나는 그 모습이 이상했다.

아니,  아빠를 비롯 큰아버지들은

자기네 조상들의 제사 준비에 손하나 까딱 안 하며

다 차려진 제사상에 나타나서 절만하고

핏줄하나 안 섞인 귀한 남의 집 딸들은

며느리라는 이유로 제사음식을 하루종일 만들고 있는 풍경이.


제사가 끝나고 식사시간이 오면

크고 널찍한 판 위에 제일 크고 때깔 좋은 생선 과일 등을 올려놓고 안방에서 먹는 사람들은 큰아버지들이었고

작은방 또는 거실 한 켠에서

제일 때깔 좋은 음식을 내주고 남은 음식을 올려놓고 식사를 하는 쪽은 며느리들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하는 사람은 막내며느리, 우리 엄마였다.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거실에서 과일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는 큰엄마들 보고 소리쳤다

“왜 우리 엄마만 설거지해요??”

그때 당황했던 큰 엄마들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내 눈에도

그 모습은 너무나 불공평했다.


그렇게 한평생을

남의 집 조상들을 위해 정성껏 제사를 지내던 엄마였는데, 그렇게 평생 엄마 음식을 배불리 먹어놓고

감히 지금 우리 엄마 아들에게 분풀이를 한다고?

너무 열받았다.

분풀이를 할 거면 제일 제삿일 안 했던 다른 며느리집에 꼬장을 부릴 것이지 감히 우리 집에?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조상들이라는 작자의 심보가 나빠서 화가 났다.

그리고 평생 그렇게 진수성찬으로 제삿밥 먹었으면 됐지 다 늙어빠진 며느리들이 죽을 때까지 밥을 차려줘야 성에 풀리는 건가?

이 놈의 밥.

죽어서도 밥타령하는 한국인.

지긋지긋해 죽겠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전화가 왔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엄마가 보내 준 반찬 다 먹었텐데 뭐 먹고 사니”

엄마의 음식택배가 올 때마다 ptsd가 오는 나.

“또 그놈의 밥. 엄마 나 밥 알아서 잘 챙겨 먹고 있으니까 밥타령 좀 그만해. 전화 끊는다.”

툭.

엄마에게 또 모진 말을 하고 나서

기분이 울적해서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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