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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우 Jul 15. 2024

주말 4시 강남역에서 보자는 남자는 거르자

nnn번째 소개팅 후기

가성비남들이 흔히 잡는 소개팅 약속은

4시 카페다

여기서 장소까지 중간지점쯤 되는 강남역으로 잡으면 더욱 별로일 가능성이 높다. 주말에 정신없이 붐비는 강남역에서 정신없이 만나는 상황보단 너와 나의 딱 중간지점이어야 한다는 가성비가 더 장착이 됐다는 증거다.


단, 20대는 이해한다. 하지만 적어도 30대 초중반 이상이라면 주말의 강남역이 얼마나 체력적으로 힘든지 알 것이다. 더군다나 이쯤 되면 대부분 차가 있기 때문에 조금만 가도 훨씬 한적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주말 4시 강남역 카페에서 보자던 그의 연락에

자칭 소개팅n잡러쯤 되는 나는 벌써 촉이 오기 시작했지만 번듯한 직장에 큰 키를 보유하고 있기에 그냥 한번 나가보기로 한다. 그 남자만 만나고 오기엔 내 주말이 아까워질 것 같은 예감이 강력하게 들기 때문에 집에 묵혀둔 온누리상품권을 챙긴다. 이걸로 지하상가에서 예쁜 폰케이스를 사야겠다. 그리고 이번 소개팅은 카페 갔다가 나와서 또 밥 먹을 일은 왠지 없을 듯하니 교보문고 가서 책 한 권을 읽고 와야지.


아니나 다를까 만나기로 한 카페는 사람이 많다. 먼저 도착한 나는 2층으로 가본다. 테이블이 하나 비어있다. 얼른 자리를 잡는다. 곧 그가 도착했다는 톡이 온다. 그리고 바로 전화가 온다


-어디세요?

-아 저 2층에 자리 잡고 있어요

-네 그런데 여기 너무 복잡한 거 같은데 조용한 카페로 갈까요?


강남역에 조용한 카페가 있나..? 여기가 그나마 역에서 골목 뒤쪽이라 사람 없는 편일 텐데. 내가 자리 잡았다고도 했는데 딴 데 가자고 하자는 걸 보면 알고 있는 조용한 카페가 있나 보다


-네 그럼 내려갈게요


듣던 대로 그는 키가 굉장히 크고 외모도 뭐 괜찮았다. 나보다 연하인데 연상 같은 느낌이 살짝 있었으나 다 가질 순 없으니까.


조용한 카페를 찾아서 이리저리 계속 걷는다. 슬슬 다리가 아프다.  이 남자, 알고 있는 조용란 카페는 없는 것 같다.


-강남역 자주 오세요?

-네 그래도 자주 오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주말에 여기서 보자고 했다고? 심지어 조용한 카페를 모른 채 하염없이 걷는 중이다.


-저기 갈까요?


그가 손가락을 가리킨다

만화카페 벌툰.


-저긴 만화카펜데요? 대화를 못하지 않을까요?

-아 그런 거예요? 몰랐네요


점점 이 남자 좀 이상한 거 같다. 약간 평범하진 않은 느낌.


점점 기분이 좋지 않다. 계속 걷다가 눈앞에 할리스가 보인다. 결국 더 대로변에 있는, 역시나 사람이 많은 할리스카페에 들어왔다.



키오스크 앞에 섰다. 그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누른다. 그러면서 난 뭐 먹을 거 냔다. 카페 찾느라 기가 빨린 나는 달달한 딸기라떼를 먹을 거라고 답한다. 그러고 카드로 본인 아아를 일단 결제한다.

지잉- 영수증이 나온다. 그러고 나선 내 딸기라떼를 누른다. 결제화면이 나온다.

그때 갑자기


-어? 나 포장으로 시켰나, 매장으로 했나?


하며 갑자기 카운터 쪽으로 도망간다.

저 남자 갑자기 어디로 가는 거지?

난 너무 어이가 없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제 화면은 계속 켜져 있고,

내 카드로 내 거를 계산한다.




소개팅을 하면서 뭐 얻어먹을 생각도 없다.

그런데 남자가 대접하길 원하는 경우는 그렇게

하라고 한다. 이는 첨에 약속 잡을 때부터 알 수 있다.




<소개팅약속 유형>

1. 밥시간에 식당을 예약하는 남자

본인이 식사대접을 할 생각이 있다. 이럴 경우 커피는 내가 꼭 낸다


2. 밥 먹을지 카페 갈지 물어보는 남자

이 경우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상대방이 밥이 부담스러울까 봐 선택지를 주는 것

 -밥 사기 돈 아깝거나 본인이 부담스러운데 먼저 카페 가자고 하기 민망하니까 여자한테 물어보는 경우.

어떤 경우던 간에 이런 상황에선 난 카페를 가자고 한다. 그리고 먼저 가서 내 거를 시켜놓는다. 그런데 미리 도착 못하고 제시간에 왔을 경우는 내가 내려고 해도 100이면 100 남자가 커피정도는 샀었다.


3. 첨부터 카페에서 보자고 하는 남자

카페에서 보고 맘에 들면 저녁까지 먹고 아니면 빠이 하자는 생각들이다. 어찌 됐건 카페에서 만날 때의 내 패턴은 같다. 미리 가서 내 거를 미리 주문한다. 혹시 미리 도착하지 못해서 또는 남자도 빨리 도착해서 내 것을 미리 주문 못했을 경우 보통의 남자는 내 것과 본인 것을 같이 결제를 한다. 소개팅에서 별의별 이상한 남자를 많이 만나봤지만 적어도  커피 한 잔 정도도 사기 싫어서 도망가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2층에 자리 잡아놓은 여자를 굳이 나오라고 해서(2층은 올라와보지도 않고) 하염없이 걷게 하며 만화카페 같은 씹 소리까지 하다가 결국 대로변 사람 많은 프랜차이즈카페에 오게 했으면 몇 천 원짜리 음료정돈 본인이 사야 하지 않나 싶다. 아니 사고 싶지 않더라도 키오스크에서 그런 상황이 되었다면 그 몇 천 원 때문에 도망가는 게 너무 모양 빠지지 않은가. 친구한테도 이렇게 안 할 거 같은데 말이다.


그와 할리스 카페를 들어온 순간부터 난 이미 집에 가고 싶었다.

그의 옆에서 딸기 라떼를 마신다.

너무 맛있어서 위로가 된다.

얼른 마시고 교보문고에 가고 싶다.

그런데 이 자식 왜 이렇게 천천히 마시는 거야

그는 아아를 조금씩 마시며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잔뜩 한다.

회사에서 부장님과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 있게 될 때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난 초점 없이 대답을 해준다.

그 와중에 자꾸 안 씻은 남자 냄새가 난다. 퀴퀴한 홀아비냄새. 나보다 어린데 흰머리는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운동화는 구멍이 나 있다.


그는 한참 떠들다가 갑자기 커피 마시니 배가 아파서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단다.

그러곤 십 분 넘게 안 온다.

....?

큰 볼일을 보시나 보다..

화장실에서 오래 볼 일을 보고 있는 그를 기다리며 시계를 체크한다.

아싸! 만난 지 드디어 한 시간이 되었다.

카페에서 만날 경우 소개팅 국룰, '적어도 한 시간은 대화하자'의 룰을 지켰다.


그가 화장실에서 돌아온다.

소개팅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이제 이 자리를 뜨자고 할 때의 멘트,

-이제 일어날까요?

를 말한다.

1시간이니 그래도 예의를 많이 차렸다. 만난 지 10분 만에 집에 가고 싶었는데 말이다.


강남역 대로변을 걸으며 화장품가게 옷가게들을 구경한다. 오랜만에 오니 새롭다. 교보문고에 가서 책도 읽는다.  

내 주말이 아깝지 않도록

강남역에서 더 열심히 놀다 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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