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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 Jan 06. 2024

수영으로 배운 인생의 교훈

"이야~ 학생 수영 잘하네!"

"어쩜 그렇게 몸이 앞으로 쑥쑥 잘 나가?"


연배 지긋한 할머니께서 칭찬을 해주셨다. 살다 보니 이런 칭찬 듣는 날이 오는구나.


내가 수영을 처음 접했던 시기는 내 나이 스무 살에 해군에 입대하면서부터였다. 유난히 물을 무서워했었던 유년시절의 나는 튜브 없이는 절대 물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였는데 당연히 수영은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해군 훈련소에서 난생처음 수영장이라는 곳에 가보게 된다. 그리고 첫날 수영등급 평가에서 나는 5m를 채가지 못해 수영 불능을 상징하는 은색 수모를 쓰게 되면서 수영훈련은 매번 UDT 교관에게 얼차려 세례를 받는 체력 특훈시간이 되었다.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1km를 쉽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요즘 수영의 매력에 제대로 빠져있다. 나는 왜 수영을 좋아할까? 내가 수영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수영할 때만큼은 뇌를 온전히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운 수영장의 물이 나의 얼굴을 때리고 팔과 다리를 쉼 없이 저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복잡한 사고를 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수영을 할 때면 나의 사고회로를 완전히 멈추고 오직 물살을 가르는 본능에만 의지해서 눈앞에 보이는 25m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끝과 마주하면 그다음 25m를 향해 나아간다. 이렇게 40번을 반복하면 1km를 갈 수 있다.


이렇게 수영은 25m라는 짧은 거리의 누적이다. 우리의 삶도 작은 순간들이 모여 큰 의미를 이룬다. 요즘 나는 수영이라는 운동이 마치 우리가 사는 인생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1km에 해당하는 인생의 목표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한다던지, 좋은 직장에 간다던지, 부자가 된다던지 하는 성공의 목표들 말이다. 하지만 그 목표가 나의 능력에 비해 멀게만 있다면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애초에 이룰 수 없는 신기루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지금이 너무 힘들면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수영은 재미있는데 왜 사는 것은 힘들까? 이 물음에 대한 내 생각은 목표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 중에 처음부터 1km를 가야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히 처음에는 25m를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그리고 수영의 세계에서는 그런 초보자를 향해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모두들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1km를 가지를 못하지만 이 세상은 그 사람들을 패배자로 낙인찍는다. 그래서 모두들 패배자로 평가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지 1km를 가고자 막막한 목표에 부딪치며 좌절하고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나 따위가 어떻게 1km를 갈 수 있게냐는 자조 섞인 신세한탄이 아닐까 싶다. "나는 폐활량도 좋지 않고, 체력도 좋지 않고, 물에 잘 뜨지도 않는데"하는 자책으로 불행한 인생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면 우선 저기까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25m를 나아가는데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 뒤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벽에 도달하고 나서 생각해 보는 거다. 이렇게 심신을 가볍게 하면 신기하게도 25m를 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힘까지도 말이다.


그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한번의 스트로크에 힘을 빼야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수영을 오래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었다. 그래서 너무 열심히만 살려고 했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어디에 있냐면서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쳤다. 그리고 슬럼프에 빠지고는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꾸준함이었다. 그리고 꾸준함은 바로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 습관을 가지려면 그 대상을 행함으로써 즐거움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땠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그 즐거움을 없애버렸고 이내 슬럼프에 빠지고는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 인생은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충분히 열어두고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가려고 한다. 내 신년 계획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목표들로만 설정했다. 올해는 이것만 달성하더라도 충분하다 생각하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멋진 목표를 또 달성하면 된다. 또한 그 목표를 이루려는 필사의 노력보다는 오늘 주어지는 하루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일 년은 오늘 365일의 누적이니 말이다. 그저 매일 주어지는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올해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성취할 수 있지 않을까?


설사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는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나의 존재는 내가 목표를 달성했을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힘찬 움직임과 거칠게 내뱉는 숨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성공이 쾌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과 그것을 기억하는 추억, 그리고 온몸으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에서 존재한다. 비록 1km를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오늘 주어진 한걸음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그것을 그리워하면서 살면 된다. 그렇게 한 해 한해 거듭하면 나는 인생을 더 잘 사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수영으로 배운 인생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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