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골 샌님 Oct 24. 2024

중성인간

고양이는 고양이, 나는 나

  초록이 무성해진 나무들 사이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하다. 나무 위에서 일제히 높고 날카로운 새소리가 여자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고요한 아침 공기를 양껏 들이마시려 했던 여자는 짜증이 났다.  

“아침부터 짝짓기 하느라 난리네. 난리."

여자의 얼굴이 심술 난 시어미처럼 일그러졌다. 또 다른 소리.  “헥헥 헤헥" ”  헐떡이는 가쁜 숨소리가 낮은 곳에서 올라왔다. 개소리다. 개를 무서워하는 여자에게 아침의 평화는 끝이 났다. 주인을 앞서 달려오던 개 한 마리가 여자를 향해 돌진한다. 그녀의 세포들이 일제히 곤두섰다. 부스스하게 뻗친 머리를 묶은 남자가 개에 끌려 등성이를 올라왔다. 길게 늘어진 목줄과 연신 하품을 꺼억해대는 개 주인은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여자는 개 얼굴 가득 콧수염이 날리는  보고 슈나우저 종류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여자는 주인이 어서 다른 곳으로 개를 끌고 가주기를 바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잠이 덜 깬 건지 만사 귀찮아 보이는 개 주인은 개를 제지하지 않았다. 결국  개가 여자발밑에서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공포를 말로 토해냈다.

“저... 저리 가.” 개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위용을 자랑했다.

“커엉.” 개소리에 그제서 개 주인이 목줄을 당긴다. 그러나 개는 주인이 목줄을 당기자 오히려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얘, 얘 좀……. 이 개새끼 좀 어떻게 해요.” 여자가 소리쳤다. 개 주인이 목줄을 움켜 세게 당기자 개가 물러섰다.  

“물린 것도 아니고 욕까지 하고 그러세요.”

두려움이 가신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개한테 개새끼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입마개도 안 하고 ”

“허허…….” 콧방귀를 뀌며 개 주인이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의 신경전에 아랑곳없이 개는 새들이 지저귀는 큰 나무에 한쪽 다리를 받치고 오줌을 눴다.

 “저 개새끼들 때문에 아침부터 기운 다 빠졌네” 새들의 지저귐에 그녀의 소리가 묻혔다. 여자가 벤치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이른 오전이나 저녁시간 이후가 운동이나 산책하는 이들이 가장 많다. 여자는 다음부터는  애매한 시간대인 오후와 저녁 사이 시간에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개처럼 의무적으로 산책에 나설 필요는 없지만 인간에게도 산책은 삶의 질과 연관된다. 여자가 동네 뒷산을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뻣뻣한 다리 근육이 유연해지고 힘이 생겼다. 여자는 왼쪽 유방을 떼어내고 임파선을   담낭을, 그리고 얼마 전 자궁과 난소를 적출했다. 한 동안 속이 허전했다. 하지만 여자는 암에 잠식당해 생명을 위협하는 몸의 장기들이 적출될 때마다 생명이 연장된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월경의 고통이 사라지니 편했고,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같은 단어에서 해방되어 홀가분했다. 다만 항암치료와 호르몬억제 치료로  머리가 빠지고, 눈물이 마르고, 노화가 더 빨리 진행되었다. 자궁이 없어도 성관계가 가능하다 열심히 설명하던 간호사의 말이 무색하게 거세된 몸은 메마르고 건조해져,  건장하게 잘생긴 남자를 보면 샘솟듯 솟던 사랑의 열정도 메말랐다. 육욕이 사라지자 사랑하는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삶이 누릴 환희의 순간 하나를 놓쳐버린 느낌이었다.  여자는 후회가 잦아졌다. 허나 이루지 못한 과거는 미련해서 현재도 어제를 살게한다.

  여자는 여성성의 상징기관들이 삶에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급속한 외모의 변화를 겪으며 자신감이 사라졌다.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었다. 산책을 나서며 화장을 하는 대신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쓰고 치마대신 헐렁한 바지를 편하게 느끼며 여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여성미나 보이쉬한 매력도 찾아볼 수 없는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가 진짜 자신을 가려버린 허울처럼 느껴졌다.

  삶의 본능은 여자를 일깨우려 했다. 가난보다 지독하게 괴롭히는 암과 싸워 생존한 자신을 다독여라. 생명력이 활개를 펴고 세상을 누비고 활보하려 꿈틀댄다. 집안 공기에 좀이 쑤시는 몸의 세포들이 더 크게 숨 쉬자고 외쳤다. 여자가 집안에서 벗어나 불과 5분 만에 도달한 도심 속의 숲에서 흙을 밟고 초록이 무성한 쭉쭉 뻗은 나무와 관목들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무 사이에 걸린 태양이 여자의 시야를 넓혔다. 시야가 넓어지니 앞길이 훤히 보였다. 숲길을 걸어 내려오며 여자의 몸에 생기가 가득해졌다. 방전된 몸에 식욕이 다시 생겼다.

 여자는 둘레길 입구를 나서자 그동안 그저 이정표쯤으로 여기며 지나쳤던 해산물 전문 식당 앞에 멈췄다. 내놓은 입간판에 ‘일 인분 가능’이라는 문구가 그녀를 식당 안으로 이끌었다. 식당 안의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5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자가 1인 해물탕을 주문하고 기다리며 식당 안을 둘러보다 계산대 옆 테이블 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식당 안의 고양이가 달갑지 않아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고양이는 앞발을 들었다 내렸다 버둥거렸다. 여자는 그제서 고양이 목에 넥카라가 끼워져 있다는 걸 알아챘다.

“길고양인데 쫓아내도 또 오고 하도 시끄럽게 울어대서 영업에 방해도 되고 어쩌나 했더니 어떤 손님이 동물  단체에 신고해 중성화 수술 시키라고 알려주더라고요. 남편이 붙잡아서 데려다  중성화수술 시켰어요.”

“아, 좋은 일 하셨네요.” 여자가 주인의 말에 호응했다.  

“수술받고 힘들 테니까 가게 안에 잠깐 뒀어요. 양해해 주세요.” 주인의 공손한 말투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얼굴이 작고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웅크린 눈이 큰 고양이 얼굴을 보고 암컷 일거라고 생각 했다.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고양이에게 거부감은 자취를 감췄다. 동네사람들은 중성화 수술로 한밤 중 사람 애기처럼 울어대는 발정 난 고양이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여기저기 출몰하는 고양이 개체수가 줄며 공격당하던 새들도 생존 위협에서 조금은 벗어날 것이다. 이렇게 번식을 못하는 고양이는 인간과 공존한다. ‘짝 찾느라 울지 말고 조용하게 잘 살아라, 자유롭게. 이제 새끼를 낳고 키우는 육아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거야, 넌.’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을 지긋이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고개를 돌리며 작게 갸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만족스럽게 식사를 끝내고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섰다. 그녀는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모두 다 고양이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