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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Oct 12. 2024

생명 알람

오감을 깨우다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몸을 세웠다. 그는 육체의 감각을 지배하는 제왕이 되어 타인의 감각까지 손아귀에 넣고야 말겠다는 듯 자신의 몸을 조준했다.  “더 이상 못 참겠어.”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자 정자들이 이불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불 위에 쏟아진 것들이 한 곳으로 고이며 정액의 호수를 만들었다. 황홀경에 빠진 남자가 자신의 몸에서 분출된 엄청난 정액 호수에 흡족한 듯 이블 속에 웅크린 여자를 자극하듯 말했다.

“애기, 애기들 봐봐..”

남자가 계속 나직하게 이어서 말한다.

“생명이 자랄 거야! 어서 받아들여. 생명력을  줘.”

"내겐  자궁이 없어, 내 속에선 아무것도 자랄 수 없어.” 여자에게 몸의 자극 고통이었다. 여자의 뼈, 근육, 신경까지 녹아내린다. 꿈틀대는 생명은 통증을 유발했다.  그러자 이불 위에 고인 정자들이 끈적끈적하게 엉겨 액체화되어 서러운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당신이 모든 걸 없애버려서, 우리를  거부해서,.. 우리는 안식처가 없어. 우리는 생명을 잃고 죽어가.”

 갈 곳을 잃고 허우적대는 정자들이 지운을 비난했다.

“나는 살고 싶었어. 자궁 속에 암을 키울 순 없잖아. ”

그것들은 비명처럼 쾌쾌하고 비릿한 냄새로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더러워, 냄새 나.  다 꺼져버려.” 여자가 자신에게 달라붙지 못하게 손사래를 쳤다.

“냄새나고 더럽다니.... 너는 생명을 모욕했어..”     


  빠이 삐리리 삐리리, 알람이 울린다. 현실이 지운을 깨웠다. 지운이 선잠에서 깨어날 때 온몸의 뼈가 산산 조각날 듯 아프고 기분이 나빴다. 삐릭 삐리리 삐리리, 알람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그녀가 꿈에서 빠져나와 알람을 끄려 했지만 감각이 덜 깨어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지운은 표적항암제를 복용할 아침과 저녁시간에 알람을 맞춰 놓았다. 저녁  시간이라고 알람이 계속 울린다. 지운은 늘 하던 것처럼 손으로 침대 머리맡을 더듬었지만 휴대폰을 가방에서 꺼내지 않은 기억이 났다. 띠리리. 띠리리. 그녀는 3분 후 자동 멈춤 혹은 10분 후 다시 울림 설정을 해놓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알람은 지치지지도 않고 울렸다. 배터리가 다할 때까지 울 기세다. ‘옆집에서 항의 들어올 텐데.’  지운은 있는 힘을 다해 상반신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 가방 안을 더듬거려 휴대폰을 꺼내 알람을 껐다.

 지운은 하루 내내 청각의 소음, 후각의 민감함, 림프절을 따라 괴롭히는 통증, 등등 육체의 감각 들이 자극을 받았고 감각은 상상력을 몰아쳐 자극하는 버거운 하루를 보냈다. 감각은 머릿속 관념의 세계를 자극해 현실로 끌어내 실현시킨다. 알람이 또 울린다. 혹시 몰라 두세 개씩 알람 설정을 해놓은 그녀가 알람을 끄며 설정을 지웠다.  자극받은 청각이 지운의 상상력을 끌어냈다.

  지운은 죽음을 알리는 빠르고 실현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소리를 떠올렸다. 알람이 꺼지지 않고 계속 울리면 옆집이든 윗집이든 짜증을 내며 찾아오고 아무 응답이 없다면 관리사무실에 전화로 민원을 넣을 것이다. 그러면 관리실 직원이 전화를 시도하다 경찰과 119를 동원할 것이다. 한나절 정도의 소음 공해가 고독사보다 훨씬 낫다. 간편한 고독사 방지 해결책에 마음이 뿌듯해진 지운은 비로소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시각이 바로소 감각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아침에 급하게 나가느라 어질러놓은 옷가지들과 눈물 콧물 풀어낸 휴지로 가득한 휴지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재빠르게 청소를 시작했다. 지운이 몸을 움직이고 나니 허기가 졌다. 밥을 해 먹기는 귀찮고 라면은 싫고 배달음식은 배달비도 아깝고 포장재로 쓰레기 분류를 해 내다 놔야 하니 싫었다. 차라리 나가서 먹고 들어오는 간편할 것 같았다. 그러면 오고 가며 걸으니 소화도 잘 것 같고 약 복용시간도 적당하며 나가는 길에 종량제 쓰레기를 치우면 일섬삼조다. 게으름은 최소의 동선으로 최다 일처리를 하도록 사람을 합리적으로 만든다. 일상의  생동감이 지운을 움직이게 자극했다. 카디건을 걸치고, 에코백에 지갑과 휴대폰을 넣고, 꾹꾹 눌러 담은 쓰레기 발로 툭치며  현관문을 열었다.      

 때마침 옆집 문도 열렸다. 문 앞에 놓인 택배가 문 뒤쪽으로 밀리자 “에구구” 소리를 내며 팔십 대 중반의 옆집 노인이 슬리퍼를 끌며 문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어, 이 밤에 어디 가게?”

“아직 초저녁인데요.”

지운이 택배 상자를 집어 건넸다.  그러면서 알람소리의 효과를 점검했다.

“아까 저희 집 알람 계속 울려서 시끄러우셨죠? 죄송해요.”

“응? 뭐라 했어? 내가 요즘 잘 안 들려. 더 크게 말해보오.”

지운이 허리를 숙이며 귀에 소리치듯 말했다.

“알람을 늦게 꺼서,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고요.”

노인은 생뚱맞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랬어? 몰라, 난 못 들었는데.”

“아 ……. 다행이네요. 네, 그럼.”

지운은 얼굴에 실망한 빛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웃은 옆집만 있는 건 아니까.   

   

저녁나절 잠깐 눈을 붙인 탓인지, 지운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나 옆집 손녀가 문을 두드리며 내지르는 고함소리에 잠이 깼다.

“할머니, 어후참, 할머니, 문 열어!” 자정이 넘은 고요한 시간에 이십 대 중반의 옆집 손녀의 고함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일어날 만큼 컸다. 그러나 모두 상황을 인지하고 참는 듯했다.

“아, 참. 왜 전화는 또 안 받아. 할머니 제발 좀.”

지운의 잠이 홀라당 달아났다. 짜증이 났지만 뭐라 싫은 소리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지운은 아예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쿵 쿵 쿵, 현관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 이제서 옆집 노인이 손녀의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아, 쫌, 안전바 좀 걸지 말래도 왜 자꾸 걸어. 그리고 전화는 왜 안 받아?”

짜증에 복받친 손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지운처럼 이웃들은 요란한 소음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게 예의인 것처럼. 인간은 감각의 자극을 정신 활동영역으로 넓히고 심지어 손해보지 않으려 민감하게 굴지만 인간은 마음이 약해 예외상황을 감수한다.

  

 지운의 몇 가지 죽음을 알리는 아이디어들이 허망하게 무산되었다. 고독사 방지는 암환자 개인이 처리할 수 범주가 아니다.   머라를 짜 내 실천할 연대가 필요한 일이다.  옆집 할머니처럼 안부 확인을 하러 찾아올 사람이 없다면 심장 박동이 위험하다고 담당자가 알아볼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범죄자 위치 추적에 이용되는 전자발찌 같은 것을 활용하면 어떨까. 이제 지운에게 자신의 부고 신속하게 낼 방법이 게임이 되었다. 그러나 혼자서 진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잠 안 오는 밤 지운은 밤새 구청 홈페이지에 알림 서비스에 대한 의견과 소감 더불어 제안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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