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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Oct 19. 2024

유레카, 아파트에서 찾은 해법

수다에 도망친 고독사

  오늘 같은 날,  혈액종양내과 의사 등 너머로 죽음의 공포가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날, 지운은 사람이 그리웠다. 아직은 의심과 추정이라지만 표적항암치료에 움츠리고 쪼그라들어 활동성이 사라진 준 알았던 암이, 항암 부작용으로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에 널브러진 지운의 골수를 타고 허리 척추뼈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고 하였다.  지운의 마음은 '암이 아닐 수도 있다잖아'라고 말해 줄 누군가의 뻔 한 위로가 그리운 날이었다.

 그래도 지운의 마음에 내성이 생긴 건지 암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고 가까이 다가 온 죽음을 더 부지런히 준비하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지운이 걱정하는 미래는 죽음 자체라기보다 사후세계였다. 죽음의 부담감을 타인에게 떠 넘기지 않을 길을 모색해야 한다. 집에서 혼자 갑자기 정신을 잃는 다면.... 일본의 경우처럼 1인 가구 사후처리 보험도 아직 없고,  사회보장제도로  돌봄 서비스를 신청할 자격도 미달인 50대 비혼 독거 암 환자를 속히 찾아 줄 사회적 간섭이 간절했다.


  안정적 일상생활과 지속적인 암 치료를 위해 지운은 얼마 전 연식이 있는 복도식 소형 아파트로 평수를 줄여 이사했다.  지하철 역서 가깝고, 암병원도 가깝고,  아파트단지 내 편의시설이 잘 돼 있고, 전망이 확 트여 좋았고, 9층이라는 층수에도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생수 같은 무게 나가는 물품을 부담 없이 배달시키니 좋았다. 그런데 이사 며칠 후부터 예상 밖의 난관에 부닥쳤다.

“902호, 집에 있었네. 답답하지 않아? 현관이 항상 닫혀 있어서 아침에 나갔다 저녁 늦게 들어오는 줄 알았더니 집에 있으면서 어쩜 문을 한번 안 열어?...  우린 또 여기 사는 사람들 무시해서 교류를 안 하려고 하나 별 생각을 다했지?... 아, 장애인에 암까지... 몸이 아프면 그럴수록 여기 아직 팔팔하고 경험 많은 늙은이들 써먹어야지. 서로 인사하고 마실도 다니고  이사와 모르는 거 있음 좀 묻기 도 하고, 우린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됐는데 너무 했어.”

 포장이사를 했으니 짐은 빠르게 정리됐고 아픈 지운을 위해서 걸레질해 주겠다며 나선 친구들이 마무리 청소까지 하고 돌아갔을 때, 그녀는 이사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한숨 돌렸다. 그러나 곧 성질 급한 지운은 바로 가까운 이웃에게 인사를 하겠다는 요량으로 카스텔라를 준비해 돌렸다. 대부분 좁은 평수를 만회하려는 의도인지 전기세 절약의 차원인지,  현관과  베다란다 문을 모두 열어 놓고 사는듯했다. 양쪽을 여니 맞바람 서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상당히 선선하고 쾌적했다. 게다가  현관문을 열어 놓으니, 지운이 벨 누르고 소개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절약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공유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알뜰한 생활하는 방식인 동시에,  적적해진 호기심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충족하는 무료한 노인들의 생활 공유방식이었다.  그러나 현관문 개방 요구는 지운에게는 사생활 침해의 범주였다. 그녀는 노인들 많은 소형아파트에서 문 좀 열고 살라는 성화를 잠재우는 심정으로 오고 가며 마주친 몇 번은 인사차 삼삼오오 모인 복도 수다에 끼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지운은 수다에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위층 젊은 남자가 심야에 흡연하는 문제나 저녁거리 고민까지는 괜찮았지만 “우리 아들이..., 우리 작은 딸이...., 손주가 이번에...”로 시작되는 자식 자랑과 “여기가 확실히 역세권이야. 건너편 해비치 아파트 18평짜리가 이번에 7, 8억까지 올랐대”라는 이야기로 주제가 실속 없이 다양해지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분양으로 들어와 사십 년 가까이 이곳에 살았다는 이웃 노인은 텃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이야기가 '문 열어 놓고 살라'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결혼 안 하고 혼자 산사는 말에 호기심 가득한 시선들. 지운은 후회와 이사할 때보다 더한 피로감을 느꼈다.

  지운은 직접 대응과 솔직함이 최선이라 여겨 강도 상해로 장애자가 되어 문 열고 사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고 알렸다. 인버터  에어컨을 켜면 요금이 얼마 안 나온다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 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오히려 열어 놓고 살아야 잠귀 밝은 자신들이 도와줄 수 있다고 장담하는 그들에게 지운이 보이기 싫은 항암치료의 고통을 늘어놓으며 번역을 주로 하는 글 쓰는 직업이라 자신을 집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으로 여겨 달라고, 방해하지 말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했다.  항암과 밥줄 호소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심지어 낮에 복도에서 만나 수다를 시작하려다가도 서로  시끄럽게 굴지 말자고 다짐을 하며  얼른 집으로 들어가며 지운의 주변이 시끄럽지 않게 배려를 했다.  

  어느 목요일 밤에는 술에 떡 되어 9층에서 내린 남자가 옆집 노부부의 집으로 쑥 들어가 신발도 벗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난리가 벌어졌다. 그 남자는 10층에 혼자 사는 30대 후반의 회사원이었고 엘리베이터 층수를 잘못 눌러 벌어진 일이었다. 노부부는 이 사람이 지운 집인  902호로 들어갔음 어쩔 면 했냐며 지운의 심경을 이해한다는 말을 만날 때마다 인사처럼 했다. 날도 서늘해졌지만 문 닫고 사는 지운에게 느낀 반감이 사라져 버린 듯했다. 또 한 번은 자전거에서 내리다 넘어진 노인을 발견한 지운이 부축해 가까운 병원까지 다녀오며 전화번호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세월이 정을 만든 건지 이웃과 자연스럽게 지내게 된 지운이 지난봄부터 항암부작용으로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으로 더욱 두문불출하자 이웃 노인들이 죽을 끓여다 주기도 하고 안 보인다 싶으면 혹시 쓰러져 있는 거 아닌가 싶어 전화했다며 안부전화를 했다. 심지어 남편이 중풍으로 돌봄 서비스를 받는 904호 할머니는 직접 사회복지사를 찾아가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장애자가 된  902호를 나라가 돌볼 책임이 있다며 항의까지 했다.  이에 주민 센터 복지담당 주무관이 지운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방문까지 했다.

  지운은 노인들의 관심을 처음엔 성가셔했지만, 경우 있게 수위조절 가능한 이웃노인들의  주변에 대한 관심이 지운이 사로잡힌 고독사의 공포를 사라지게 할 방법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갑갑한 병원도 끔찍한데 호스피스 병동이건, 요양원이건  앞으로 다가올 병원에서 더 이상의 료가 의미 없을 때에 입원하여 생을 마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약간의 사회보장 제도의 도움을 이끌어내면, 공간에 갇혔다는 느낌 없이, 고통을 경감하는 진통제로 아픔을 잡고  집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지내며 삶을 마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이웃 노인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죽음을 경험해 본 노인들은  두려움보다 대처 방법을 찾을 줄 알았고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또한 젊고 정보습득에 빠른 지운의 약간의 도움도 크게 고마워하며 기뻐했다.

  

며칠 전 지운은 최종 검사 결과를 받았다. 암이 더 퍼지진 않았고 허리와 골반 뼈가 틀어져 제때 순환을 못하고 고인 림프액이 암으로 오인된듯하다는 결과를 들었다.  덕분에 이제는 좀 더 이성적이고 실천력 있는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지운은 행복한 생활과 죽음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죽음도 삶의 한 축으로  보며  착수하고 실천할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 속에는  아파트 단지 내 비상 연락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교육하는 일과 피상적 접근으로는 공포만 조성하는 고독사를 공론의 장에  펼쳐놓는 것이었다. 일본 사회학자의 주장처럼 고독사 대신 재택사로 혹은 다른 더 적절한 용어로 바꾸는 일을 제시해 보는 것은 죽음이 공포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란 인식으로 전환될 기초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고독사란 말은 일본의 1인가구 사후처리대행보험 업체가 보험사 이름과 운을 맞추느라 급조되어  사용하던 말이었다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고독사란 말을 그대로 직역해 쓰는지 과연 고독사란 말이 적절한 용어인지 제고하길 제안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법률 개정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꽤 거창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고독사를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었듯, 꽤 신경을 쓰고 노력도 하지만  죽음을 소득에 따라 사회계층으로 나눠 일반인의 삶에서 더 괴리시킨 측면이 존재한다. 게다가  2022년에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고독사를 정의하고 이에 따라 실태를 조사했지만, 2024년에는 보다 넓은 범위로 고독사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병상 등으로 임종하는 것'이라는 현행 법적 정의를 조사에 적용하고 있다. 고독사의 범위가 보다 확대되어 고독사의 비율이 갈팡질팡 하지만, 총체적으로 우리나라 인구 100명 당으로 따져볼 때 2022년 0.94명에서 2024년 1.04명이 고독사 했다. 이 비율이면 '일 아니고 남의 일'이라고, 말하기 껄끄럽고  꺼려지는 용어라고 무시하고 흘려듣고 말 숫자가 아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운의 계획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행과 실천의 단계를 밟을 때 뜻하지 않게 상속 전문 변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보이스피싱으로 오인해 끊으려를 그녀를 잡은 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국가기관에 묶였던 토지와 건물 보상금이 상속되었다는 전화였다. 어머니의 유산이 그녀에게 상속되었다는 것이다.




*Reference

우에노 지즈코, 이주희 번역,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 동양북스, 2022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보건복지부보도자료, 17/10/2024

https://www.mohw.go.kr/board.es?mid=a10503000000&bid=0027&list_no=1483372&act=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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