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의 지운에게 사람들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혼자 살아서 외롭지 않으냐”라고 끊임없이 묻는다. 그녀가 “가끔 쓸쓸해요”라고 질문자의 의도에 2%만 동조해도 십중팔구 성생활까지 언급하며 “본능에 충실하게 짝을 이루어 사는 것”이 순리라는 시답잖은 충고를 한다. 마흔 중반을 넘기며 지운은 오지랖을 차단할 확고한 답을 한다. “늘 혼자였기에 외로움을 모른다.” 물론 “둘이 살면 늘 행복하니?”라고 반문하여 말문을 막아도 되지만 괜히 날 선 답변으로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어차피 누가 뭐라 해도 홀로 사는 내가 만족스럽고 편하면 그만이다.
이제는 선택이든, 세태에 떠밀려서든 비혼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인생에서 포기하는 것이 많아지며 삼포 세대, N포세대의 결과물처럼 비혼을 보는 시각이 큰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저출산의 심각성을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탓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출산율이 결혼해서 둘이 살면 높아질까? 딩크 부부가 아기를 안 낳는 이유는 뭘까? 비혼으로 출산한 아이를 사생아라 낙인찍고, 저출산의 시대라며 한탄하는 이유는 뭘까? 시대의 변화를 일반상식이 못 따라가 비상식이 되었다는 것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증거 있냐고? 증거가 차고 넘친다. 가구별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를 측정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2인 가구’가 가장 외로움을 많이 탄다. 1인가구의 생활만족도가 2인 이상 가구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자,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시라. 비혼은 외롭지 않다. 가정형편이나 경제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비혼이 되었다 하더라도 결혼과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 ‘나’가 중심에 선 삶의 만족도는 당연히 높다. 이 만족감의 저변에는 비혼에게 고독이 인생반려자 이상의 역할을 한다.
‘외로움’과 ’ 고독‘은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게 풀이하고 있지만 결이 다르다. 고구려의 유리왕은 ‘황조가’를 지어 아내 치희의 분노를 달래지 못하여 혼자 고구려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 암수 서로 정답구나. / 외로워라 이 내 몸은 / 뉘와 함께 돌아갈꼬.”
짝을 잃고 홀로 되어 의지할 곳 없는 쓸쓸한 심경을 유리왕은 외로움이라고 하였다.
반면 고독은 인간이 삶의 의미를 자신의 의지로 밝혀내고자 할 때 통로 역할을 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 고독을 '누리는 것 '이라 표현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그의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스스로의 정신과 고독을 누렸으며, 그렇게 보낸 10년 동안 조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내 그의 심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유리왕의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된, 수동적 느낌이면, 차라투스트라에게 ‘고독은 누리는’ 것으로 능동적 의지가 된다. 고독은 스스로 어지러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오롯이 ‘나’에 몰입하여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의 단절과 고립 속에 방치된 죽음을 ‘고독사’ 라 부른다. 고립사가 마땅할 죽음에 ‘고독’을 붙이니 쓸쓸하고 비참하고 처절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지운이 지난 수개월 암치료의 고통 속에서 ‘사고하는 나’를 잃어버리며 고독사에 천착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고독사 대신 재택사로 단어를 바꿔 사용하자는 학자의 의견이 타당해 보이는 것이다. 고독이란 ‘고립되고 단절된 상태’란 인식보다 ‘나 자신을 느끼는 상태’를 스스로 누리는 것이다. 화가 고흐도 편지에서 고독의 편안함 속에 자신의 위한 창조활동이 더욱 왕성해진다고 썼듯이 지운에게 ‘고독사’ 같은 삶의 공포가 아닌 고독은 세태에 휩쓸리지 않는 ' 나'의 본체를 찾는 통로로 활용하는 작업이 시급했다. 고독사 아니 고립사의 공포에 삶이 잠식당할 순 없다. 지운의 간절함에 대한 신의 응답일까?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고난을 감당하는 삶의 열정이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지운은 홀로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혼자 외롭고 서러운 느낌보다 혼자라 다행이고 편하다는 감정이 강했다. 그리고 몸도 정신도 자유롭다는 홀가분함이 다가올 미래의 마지막까지 이렇게 혼자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고 실천하려 노력 중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 혼자만의 성 ‘고. 사. 리. 성’에 터를 잡고 정착했다. 고. 사. 리. 성은 ‘고독 속에, 삶에 대한 사랑 속에, 세상의 모든 편견과 억압에서 벗어나는 해방, 리버레이션(해방, liberation’)의 공간이며 고독사, 고립사의 폐헤와 공포에서 해방되어 홀로 살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 건물 자체도 무력과 탈취에 해방되어 돌아온 역사가 있는 곳이다.
고. 사. 리. 성에는 마녀 대신 고독을 사랑하며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비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성에는 저주받은 라푼젤 대신 심장 박동소리가 사라지는 위험을 바로 알리는 알람 체계가 존재한다. 지운은 고사리 성에서 심장이 요동치지 않을 때까지, 두근두근 심장박동을 느끼며 짜릿한 인생을 즐기고, 가장 별 볼일 없던 그녀가 별이 많이 보이는 집에서 고독을 누리며 살 것이다.
신에게 돈 좀 벌게 해 달라 그렇게 기도해도 여유 돈이란 건 언감생심, 병원비 빌리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기며 절약하며 살아온 지운이 조물주 위에 존재한다는 건물주가 되었다. 자가 주택이나 재산증식은 부모덕 조상 덕이 있어야 가능하다더니, 서울 수도보안 사령부가 있던 땅과 건물을 상속받았다. 전쟁의 와중에 국가에서 군사시설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강탈하듯 빼앗은 지 70여 년 만이다. 지운의 외조부는 전쟁에서 아들을 잃었고 땅까지 국가 시설물 존재이유로 묶여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마음고생하다 심장병을 얻어 병석에 누웠다. 그러다 지운이 열 살 무렵 세상을 하직했다. 군사시설이 이전을 하며 토지보상금이 자손들에게 분배되었고, 사령부 장교사택은 외조부가 돌아가시기 전 따로 유언장과 명의이전을 한 증서가 아직도 수도사령부에 보관되어 남아 있었는데 건물주가 지운 어머니였다. 외조부는 서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병원비를 대고 병간호까지 도맡아 하며 고생한, 그 와중에 사위의 사업부도로 애들 데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지운의 어머니를 위해 살아생전 명의를 돌려놓으셨다. 70년 만에 돌려받은 건물은 원래 일제강점기 말기에 상업고등학교 교사사택이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들어선 군부대에서 개조하여 장교 사택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라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강점기 교사들을 위한 공동서재와 군부대에서 깊숙이 판 방공호 같은 시대의 부산물을 포함하는 건축물이어서 서울시와 몇몇 기업에서 지운에게 시에 팔 것을 종용하였다. 지운은 주변의 땅은 다른 자손들이 그런 것처럼 보상금을 받고 넘겼으나 건물은 욕심이 났다. 잘 관리하여 50년 후 국가에 귀속시키겠다는 약속으로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운이 살며 관리하기로 하였다.
3층 벽돌 건물 내부를 리모델링해 모두 10 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주거지로 변모하였다. 지운은 각종 세금 혜택과 내부 리모델링 비용을 서울시와 주택공사에서 제공받기로 하고 저소득 비혼들의 안식처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2년마다 계약 갱신하랴, 전월세 집을 이리저리 알아보던 압박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죽을 때까지 문제없이 원하기만 한다면 거주를 보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꼭 지켜져야 할 조건이 있는데 입주신청자격은 만 40세에서 65세 미만의 비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나이 대는 사회보장에서 배제되기에 지운의 주장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또한 서울시 주거과 직원과 주택관리공단 관계자들의 폭소를 유발하고, 강렬한 반발도 일으켰지만 신원조회 동의와 면접 통과가 필수 사항이었다. 지운은 성별 관계없이 혼자 사는 비혼들에게 주거지 안전 보장과 쾌적한 환경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래야 삶의 질이 균등해지고 생활 효능감을 높인다고 믿었기에 이 부분을 결코 양보할 수 없었다.
세부 규칙 적어도 3일에 한 번은 공용 거실에 출석체크를 하고 휴대폰 단체방에 이모티콘 만으로라도 안부를 남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문제가 되는 쓰레기 집 방지를 위해 건물 외부나 공용 공간에 사적 물품의 적재를 금지하였다. 건물의 내외적 훼손과 쓰레기 분리배출의 의무조항을 두기로 했다. 공동체와 전혀 다른 일반주거지이나 입주민이 고독한 삶을 사랑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거주지였다.
이렇게 시작된 비혼 전용 주거지, 더 캐슬 고. 사. 리. (The Castle, GoSaLI)로 건물 건물 표지석이 완성된 날 입주민 모집을 시작했다.
인용문헌
니체, 프레드리히, 두행숙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부북스, 2011) 11쪽.
우에노 지즈코, 이주희 역,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동양북스, 2022, pp3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