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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네 Oct 24. 2024

1. 스물일곱 뇌출혈, 그날

나는 모르는 나의 기록


2018년 11월 27일.

 지방 소도시의 조그마한 3년 차 염색방은 오늘도 평화로웠다. 이 가게의 유일한 점원이자 사장님은 손님의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물들 때까지 기다리는 참이었다.
 평온한 일상을 깬 건 갑자기 울리는 사장님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모르는 번호였다.


 "어머니, 저는 따님 직장동료예요.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따님이 서 수술을 받아야 해요."
 수술? 어려서부터 감기도 잘 안 걸릴 정도로 건강한 아이였다. 어디가 다쳤나? 팔이라도 부러진 걸까?

 "뇌출혈을 일으켜서 급하게 병원으로 실려왔어요. 의식이 없어서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명이 필요한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죄송해요, 지금 머리 감으셔야겠어요.. 돈은 안 받을게요."


 혼자 염색방을 운영하시던 나의 어머니는 영업 중  회사 동료 전화를 받고 급하게 가게를 정리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염색 중이었던 손님을 마무리하고 황급히 나와, 마찬가지로 생업을 맡기고 나온 남편과 함께 딸이 실려갔다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마악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왔을까, 다시 전화가 왔다. 수술을 맡은 집도의였다.
 "어머니, 따님 동공이 열려서 도착하시길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대로가다간 생명을 장담할 수 없어요. 구두로 동의받고 수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엄마는 혼비백산이었다.

바로 수술하시라고,

다 일임할테니 제발 우리 딸 살려달라고.






 SAH(지주막하출혈), ICH(뇌내출혈), IVH(뇌실내출혈). 쉽게 말하자면 뇌 거의 전체가 터져 나온 피로 뒤덮인 거란다. 수술 전 찍은 뇌 CT 사진은 하얗게 피로 가득 차서 혈관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술 시작 후 4시간여, 집도의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가족들만 따로 부르기 위해서였다. '삶과 죽음을 15단계로 나눴을 때 1에서 3은 죽음이라고 보는데, 지금 4 정도의 상태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무너져 내렸다.






  다시 3시간이 흐르고 밤 12시경. '수술 중' 전등이 꺼졌다.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수술을 마쳤지만, 뇌압이 떨어지지 않아 두개골을 봉합하지 못하고 두피만 꿰맨 채 나와야 했다. 이틀 정도는 재우는데 깨어나는 건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이대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좌뇌에서 출혈이 크게 있었어서 깨어나도 언어구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일상생활을 못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도 집도의는 '오늘 만날 수 있는 행운은 다 만난 것 같다'라고, 외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경과를 기다리며 지켜보자고 말하며 떠나갔다.







 며칠 간의 기나긴 잠이 시작되었다.

 딸은 다음 주에 겨울휴가로 보라카이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첫 휴양지 여행이라며 한껏 들떠있었다. 호핑투어를 예약했다며 스노클링할 생각에 부풀어있었는데...

 의식이 없는 사이 새로 주문해 놓은 수영복이 도착했다.

젊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디자인.

 내 딸은 이걸 다시 입을 수 있을까.


 어머니는 수영복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만으로 스물다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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