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번째 마후문
누나,
누나라고 부르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
누나라고 부르는 그 아이가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많은 서사가 있었지만,
왜 떠오르는 것은 그것뿐일까?
분명 오랜 시간을 함께 웃고 울었는데 말이다.
그 아이와 함께한 4계절은 늘 다채로웠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을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속삭였다.
나에게, 우리에게
몇 해를 보내었지만,
그저 남은 것은 그 기억뿐이다.
어느 여름, 그 아이 아버지의 별장으로 놀러 갔다.
눈을 감고 따라오라고 한다.
눈은 감았으나,
걸음마다 설렘이 스며들었다.
초록의 푸른 풀숲의 한켠에 있는
벌거벗은 여인의 전신상.
눈을 뜨고 바라보았으나,
차마 깊게 볼 수 없었던 나의 마음.
나의 나이 21살.
그의 나이 20살.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학교도 달랐고 전공도 달랐다.
그 아이는 조소를 전공하였다.
그 아이는 무슨 마음으로 나를 빚었을까?
나는
어떤 이유로 그 아이를 놓지 못하고 함께했을까?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나의 기억에 물어본다.
떠오르지 않고 흘려보낸 추억에 나를 만나본다.
그래, 나도 한때는 그에게, 누군가에게 뮤즈였다.
하지만 내가 원한 삶은
내가 나의 뮤즈가 되는 삶이었다.
그 아이와의 이별은
내 생의 가장 솔직한 이별이었다.
지고지순했던
나의 온 마음으로 함께한 시절이었기에,
후회 없는 이별이었기에
남은 그리움은 나의 21살이다.
아직도 21살의 마음이 나에게 말한다.
"I am my own muse,
the subejct I know best."
Frida Kahlo
프리다 칼로 / '삶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