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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Dec 17. 2024

나와 자신 사이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스물다섯 번째 마후문

엄격하다.


나는 유독 나 자신에게 엄격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에게는 관대하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관계에서 트러블이 없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다 사랑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의견 차나 다툼 등의 

문제나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하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과의 관계는 오죽할까?


그래서 나는 타인을 대할 때에는 관대하며,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쉽게 말하면 장단점이 없는 사람이 없기에, 

그 사람의 장점만 보자는 주의였다.

상대방의 단점이 나에게 큰 화를 주거나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고의성 없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내가 피해를 입는 것도 

어느 정도는 수용하고 넘어간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잘 의심하지 않는다.

귀가 얇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상대방이 말하면 말하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말한 사람이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구태여 그 이면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설사 상대방이 어떤 의도를 담아서 돌려서 이야기하더라도 나는 액면 그래로만 받아들인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지?

도대체 그 사람의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

그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기에 그렇게 말하지?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까?


등등의 의문의 메시지를 나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만약 상대방이 정말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돌려서 말한 거라면,

내가 눈치가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한번 맺은 관계는 원만하게

오래도록 잘 유지된다.


타인에 대한 나의 이런 관대함과 긍정의 시선이 

서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관계에 대한 안전장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가 

요즈음 스스로에게 의문의 질문을 던진다.


'나는 정말 타인에게 관대한 것일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나의 진실한 모습일까?'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타인에 대한 태도는

관대함도 긍정적인 시선도 아닌 

지나치게 나 자신에게만 치우쳐있는 상태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 신경이 나에게로만 집중되어 있어서,

타인과의 관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상태 말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다른 이가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면 

말할 수 없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며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려니", 

혹은 "그럴 수도 있지"의 마음을 먹는 것이 어렵다.


이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마음이 약해서 일 수도 있다.


또한 실수가 용납되지가 않는다.

그렇기에 후회하며,

스스로를 비판하며 비난하였다.


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었어?

지금 이것이 너의 한계야?


그럴수록 나는 나에게 더 깊고 어둡게 몰입하여 

단련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더욱더 집중해야 했다.

스스로가 만족할 때가 말이다.


그리고 물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함이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성격일까?

그래서 완벽해지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추구하는 바가 높아서일까?


다시 되묻는다. 

너무 사랑하기에,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완벽해지고 싶어서, 스스로를 더 단련시킨다?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의 벽에서 고뇌는 

더 깊어졌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완벽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던 시간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그것은 바로 거리 두기.

나 자신과의 거리 두기이다.


아주 깊게 치우쳐있는

나를 향한 나의 생각,

의지, 원하는 것,

해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균형을 이루는 상태 말이다.



스물다섯 번째 마후문


"자신과의 관계에도 중용이 필요하다."

서하



도서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덕인 “중용"에 관해서

저자가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며,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세상에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시소가 있을까?


나의 시소의 

한쪽에는 아름다움, 우아함, 관대함을 싣고

맞은편에는 

성가심, 모호함, 긍정의 엄격함을 더하여


어떤 날은 칭찬하며,

또 다른 날은 비판하며,

어떤 날은 웃으며,

또 울며


나의 생각과 감정을 진실되게 마주하며 

나만의 균형을 찾아서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매일매일 새로이 나아가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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