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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둥 그리고 여름과 휴가

행복탐구 보고서

by 까칠한 펜촉

나는 행복의 기본요소를 '일, 사랑, 건강' 이 세 가지를 꼽는다.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아야 한다면 주저 없이 '사랑'을 선택한다. 그리고, '사랑'이란 개념을 형성하는 여러 가지(애정, 우정, 연대, 관계 등)에서 가족애(家族愛)는 거의 유일하게 대가 없이 받는 행복의 기본기이면서 동시에 가장 다채롭고 또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변화가 무쌍한(애정, 우정, 연대로 이어지는 시계열적 변화와 부모, 자식, 형제, 부부간의 다양한 애정과 관계 등) 복합적인 사랑의 총화(總和)가 아닐까 생각한다. 때문에 가족애는 행복의 기본기로 시작해서 우리 삶을 지탱하는 행복의 기둥으로 남게 된다.


즉, 가족은 우리 삶의 행복의 원천이자 그 목적 자체라는 말이다.




어릴 적(유아~청소년)의 여름은 2025년의 여름만큼은 덥지 않았다. 이 만큼 덥거나 이 보다 더 더운 날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랜 시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더위가 꿋꿋하지는 않았던 듯싶다. 최소한 저녁 시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동네 곳곳에 마련된 평상 위에 모인 이들에게 달콤한 수박과 함께 여름 저녁나절의 상쾌함을 선사했었다.


이 시절의 장마는 날짜를 잘 지키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기상예보가 모두 맞지는 않지만 적어도 장마 기간이라는 것은 매우 명확한 선이 있어서 그즈음이 되면 많은 비가 내리고 장마 후에는 2~3주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장마 기간에 비가 내리는 날에는 우산 두세 개를 챙겨서 배수구 쪽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있는 곳에 우산끼리 어깨를 맞닿듯 펴놓고 산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 서너 개를 주워와 물줄기를 막아 작은 개울을 만들어 놀았다. 당시 동네에 자동차라고는 아버지 택시 밖에 없었기에 길 한편에서 평상을 설치에 놓거나 돗자리를 깔거나 나처럼 우산집을 만들어 놓아도 차에 치일 일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우산집을 만들어 놀고 있으면 동생이나 동네 친구들이 저마다 하나, 둘씩 우산을 가져와 연결하여 길게 늘어선 텐트촌 같은 형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게 장마 때 우리가 노는 한 가지 놀이였다. 가끔은 집에서 고구마나 감자 혹은 옥수수를 쪄와서 이 우산텐트 안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


이런 장마기가 지나면 혹서기가 찾아오고 혹서기가 왔다는 것은 이제 여름휴가를 떠나야 할 때라는 의미였다. 그 당시 우리는 매년 아버지 친목회와 단체 여름휴가를 갔었다.

적게는 10 가족 많게는 20 가족 정도, 모두 같은 차종(대우 로열슈퍼살롱: 당대 최고급 차종 중 하나)에 12xx 번호를 받은 형제 친목회 일원들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때는 해변에 텐트를 치고 숙식을 했기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새벽녘에 출발하는 건 필수선택이었다. 형제 친목회 일원들은 새벽녘에 만나 함께 출발하여 도착하고 넓은 평지를 마치 영지삼아 이동식 군락을 형성했다. 매년 한 번씩, 여름휴가에만 만나는 다양한 가족과 또래들은 여행 첫날만 어색할 뿐 이내 모두 지기(知己)처럼 어울려 놀았다.


젊을 때 한가닥 운동을 했던 아버지는 빨간색 수영팬티만 입고 불룩 나온 배만큼이나 넓은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해변을 거닐거나 바다 수영도 거침없이 곧잘 하셨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를 한 엄마는 그때는 웃음도 조심히 하고 수줍음이 많은 몸가짐이었다.


이런 여름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내내 이어졌다가 친목회의 중추노릇을 하던 몇몇 분들이 일찍 작고하시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친목회를 떠나거나 등 여러 이유로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더 이상의 가족 모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엄마, 아버지의 젊은 날의 모습은 대부분 이 당시 여름휴가를 떠올릴 때 선명하다. 지금은 완전히 쪼그랑 노인들이 되었지만 이 당시 여름휴가 때 우리 아버지는 짧은 수영복 하나만 걸치고 건강미 넘치는 몸매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의 젊은 중년이었고, 아버지 친구분들의 짓궂은 농담에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던 엄마도 젊음의 향기가 아직 몸에 배어있었다. 여름휴가 때 도드라지는 게 한 가지 더 있다면 우리 형제간의 우애인데 아무래도 많은 가족들이 모이고, 낯선 또래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완전한 한 편이라고는 우리 형제뿐이고 간간히 가볍게 다른 또래들과 투닥거리는 상황이 연출되면 우선은 형제들이 뭉치고 비교적 다른 가족보다 가까운 다른 형제들이 연대를 이뤘었다.




어제 일이라고 가정하고 그림일기를 써보라면 분명하고 선명하게 쓸 수 있는 엊그제 같은 일들이 벌써 40여 년 지났다. 나는 지금 그 당시의 아버지보다 거의 10살이 더 많은 나이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가족 여행의 주역은 오롯이 나다.


요즘(2025년)의 여름은 나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다르다.

우선, 여름날의 열기는 예열 없이 바로 30도로 시작해서 36~38도에 이르고 저녁 시간에도 푹푹 찐다. 열대야와 열대야가 아닌 날을 구분하기도 이젠 어렵다. 장마라는 단어는 있지만 벌써 몇 년 전부터 장마 기간이란 게 상당히 애매하게 됐다. 어떤 해에는 장마 기간 동안에 마른하늘만 쨍쨍이다가 장마가 끝난 어떤 날부터 집중 호우란 게 시작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양상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를 수도 있을 거 같다. 나와 아내가 남친, 여친으로 연애를 하던 시절이다. 장마 기간 내내 주중에는 맑은 날씨가 이어지다가 주말에만 비가 왔던 2005년의 여름이 그러했다. 작은 우산을 맞쳐드느라 한쪽 어깨가 늘 젖었던 것이나 우산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나를 탓하며 애정 어린 질타를 했던 젊은 시절의 아름다웠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난 여름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대학생 시절 여름 특강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갔을 때, 타는 듯한 불볕이 교정을 태울 듯 내려쬐는 그 순간에도 그 작열하는 열기가 좋아 교문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열기를 맞기도 했다. 그런데, 서서히 나이가 들어 몸의 쾌활함도 적어지고 물놀이 외에도 즐길 것이 많다는 걸 경험하고는 예전만큼 여름을 기꺼워하진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름휴가는 늘 즐겁고 기다려진다. 휴가 일정과 일수가 정해져 있던 실무자 시절도 그렇고, 비교적 휴가 일정에서 자유로운 요즘도 그건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좋은 건 사랑하는 내 아이들, 내 아내와 긴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참 감사하고도 다행인 것 중 하나는 양가 부모님의 건강한 생존이다. 아직은 손주들을 만나면 용돈을 쥐어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기에 그와 관련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있고 깨알 같은 에피소드로 기록되기도 한다.

아래는 우리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지었던 동시다.


제목: 할아버지와 지갑
할아버지가 지갑을 만지실 때
내 마음은 두근두근
할아버지 3만 원, 아싸 3만 원


용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까지는 서로의 마음과 사랑을 여러 가지 형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그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듯 우리 아이들은 양가 조부모와 삼촌들 그리고 우리(나와 아내)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 엄마에 대한 애정과 믿음, 신뢰가 남다르다. 19살(딸), 13살(아들)이 됐음에도 엄마에게 안기고 뽀뽀하고 애교를 떨고... 우리(나와 아내)와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보다는 한층 살갑고 끈끈해진 면이다.


이런 일상이 내게는 큰 힘이 된다. 나는 아내와는 여전히 연애 시절처럼 투닥거리고 장난치고 실없는 농담을 하고 아이들과는 격 없이 친구처럼 지낸다. 타고난 건지 우리 아이들은 가족애가 남다를 뿐 아니라, 사회, 도덕, 윤리적으로도 매우 바른 아이들이다. 규범과 규칙을 지나치리 만큼 꼼꼼하기 지키고 자신들만의 룰(Rule)이 있어 이를 넘지 않도록 스스로 단속한다. 여느 아이들처럼 디지털 기기에 빠지지도 않고 아이돌이나 배우에 대한 덕질도 없으며 가치관의 우선을 가족으로 삼는 것은 부모로서도 감사한 일이다.


이래서 인지 나는 집돌이다.


금요일에는 약속을 잡지 않고, 시간이 날 때는 무조건 집으로 먼저 귀가한다.

아내와 친하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때론, 아이들이 커서(큰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예전만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은 함께하려는 노력을 자기 방식 데로 하기에 섭섭하진 않다.


오늘로 2025년의 여름휴가를 마무리한다.

이번 휴가에는 광주에 가서 기아 타이거즈 홈경기 응원을 했다. 우리는 3대째 타이거즈 찐 팬이다.

작년에 막내아들이 타이거즈 팬이 되면서 이젠 유니폼, 모자, 응원도구 등을 챙겨 경기장에 함께 나선다. 그리고, 시즌 중에는 아내까지 함께 TV로 경기를 보면서 타이거즈를 응원한다.


이번 휴가는 늘 하던 물놀이를 하지 않았다. 겨울에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기에 경비를 최대한 줄이기로 했기에.


이번 여름이 지나고 2026년이 되면,

큰 아이는 대학생(20살), 작은 아이는 중학생(14살)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작은 아이는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사춘기로 접어들 테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작은 아이의 사춘기가 비교적 늦게 온다는 것이다. 엄마, 누나에게 사랑스럽고 애교 많은 아이, 더 어릴 때에 비해 아빠를 대하는 태도도 다정하게 바뀐 이 아이가 사춘기로 질풍과 노도의 시기를 곧 겪을 것이기에 우리는 지금의 시간을 좀 더 사랑스럽게 그리고 밀도 있게 지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한 계절이 끝나고, 한 해가 언젠간 저물 테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좀 더 짙은 색의 중년이 될 것이고.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니 그건 막을 수가 없을 것.

그럼에도 이렇게 여름휴가라는 행복한 이벤트를 마무리 함에도.

내 행복의 기둥인 가족이 이렇게 굳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어쩌면 내 행복의 기둥을 더욱 두텁게 가꾸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 까칠한 펜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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